2020. 07. 12.
요즘 문재인 대통령이나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참 머쓱할 것이다. "사는 집 아니면 팔라"면서 국민들에게 엄포를 놓았으나, 정작 청와대 참모나 국토부 관리들의 '아파트 투기'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고위참모 41명 중 12명(29%), 국토부 고위 공직자(산하 공기업 및 기관장을 포함) 32명 중 11명(34%)이 다주택자였다. 이들도 나름 사연이 있겠지만 현 정부 정책에서는 '다주택자=투기꾼'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청와대와 국토부는 매일 보는 직원들조차 설득하지 못하면서 생면부지의 국민들에게 정부 정책을 따르라고 윽박지른 셈이다.
지난 10일 정부는 부동산 대책을 또 내놓았다. 22번째 대책이다. 이번 대책은 '징벌적 과세'로 요약될 만큼 두 채 이상 주택 소유자들의 종부세와 양도소득세를 대폭 인상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3년간 다주택자를 서울 아파트 가격상승의 주범으로 몰아 부쳐왔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에는 다주택자는 투기꾼이기에 세금으로 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다주택자들을 향한 종부세 인상은 종국에는 세입자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세입자가 애먼 피해를 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상품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공급을 늘리거나 대체수요를 만든다. 공급론자들은 재개발과 재건축을 늘리고, 그린벨트도 풀어서 아파트를 짓자고 이야기한다. 그동안 이러한 공급정책의 효과는 3~4년 유효하다가 새로운 수요 앞에 사라지곤 했다. 반대편에서는 세금인상을 통해서 수요를 억제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근원적 수요를 차단하지 않은 채 억제를 강요한다면 욕망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22번째라는 숫자가 보여주듯 현 정부의 수요억제 정책은 별로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정책 남발은 부동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시장의 내성을 키워왔다. 이를 반영하듯, 2018년 4월 40만명였던 네이버의 한 부동산카페의 회원수는 2년여 만에 113만명을 넘어섰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새로운 정책이 나오면 잠시 숨고르기를 하다가 빈틈을 타서 오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현 정부 출범 이후 3년만에 51.7%나 올랐다. 정부 대책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22번째 정책은 세수확충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에는 그리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부동산 자체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교육과 산업구조와 맞물려 있다. 지역의 젊은이들이 대학을 위해, 직장을 찾아 끊임없이 서울로 올라오면서 아무리 주택공급이 늘어나도 곧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렇기에 서울의 부동산 안정을 위한 손쉬운 해법은 젊은이들이 서울로 오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게 힘들다면 교육과 직장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들의 지역 이주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은퇴기를 맞은 베이비붐 세대의 지역 이주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도와야 한다. 흔히들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사람들을 베이비붐 세대라고 부른다. 일부에선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까지 모두 베이비부머라고 부른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이미 직장을 떠났거나 곧 직장을 떠나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서울 거주의 베이비 부머들은 선뜻 서울 밖으로 이주를 결심하지 못한다. 지역 병원 등의 의료시설 부족을 하소연하기도 하고, 문화시설이 서울과 너무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살고 있는 서울집을 팔면 양도소득세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한다.
정부 차원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탈(脫)서울행을 적극 도울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에게 서울의 주거환경을 물려주고, 지역으로 편히 옮겨갈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을 하는 것이다. 가령, 비수도권으로 이주하는 60세 이상 국민들의 주택 양도세율을 낮춰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 지역의 중소도시로 이주하는 경우, 토지 및 주택 취득세를 면제해주는 것도 좋다. 이와 함께 대형병원을 비롯한 의료복지시설과 다양한 체육·문화시설을 지역에 건립 및 확충해 이들의 노후 삶을 도와야 한다. 서울의 다주택자들에게 중과하여 걷게 되는 세금을 베이비 부머들의 지역 이주를 위해 사용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러면 지역경제 활성화도 도모할 수 있다. 이것이 서울도 살고, 지역도 사는 상생의 부동산 정책 아닐까.
홍성철 /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