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아침 식사
시인 이경
아침에 한 차례 비가 왔다
뇌성이 푸른 산봉우리들을 데리고 더 먼 곳으로 달아났다
못난이 감자 새끼들이 흙속에서 오그르르 한곳으로 모인다
아침 비는 신들을 태운 말발굽 소리가 옥수수밭을
가로지르는 소리를 거느렸다
왈칵 어지러운 깨꽃 향기를 앞세웠다
햇빛조차도 아직 금빛 반짝임이 시작되기 전이다
모든 빛깔이, 말이, 생각이 시작되기 전
신들은 약속 장소로 모여 앉았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흰 새가 한 바퀴 선회하는 걸음으로
빠르게 아주 빠르게 호박벌의 날갯짓처럼 바쁘게
한 꽃과 꽃 사이를 입 맞추며
비릿비릿하고 아찔한 신들의 아침 식사는 거행되었다
꼴깍꼴깍 신의 목젖 소리가 어린 벼들이 자라는 논을
넘고 넘었다
만삭의 옥수수 배흘림기둥 속에서
갓 태어난 신의 붉은 수염이
깔깔깔 희고 가지러한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시집 『오늘이라는 시간의 꽃 한송이』(2014. 10. 시학) 중에서
- 이경 시인은 1993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소와 뻐꾹새 소리와 엄지발가락』『흰소, 고삐를 놓아라』『푸른 독』『오늘이라는 시간의 꽃 한송이』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