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천행(四川行) 38
“모두들 괜찮은가?”
“..........”
쿠파는 눈을 감았다. 처참했다.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 없었다. 삼천
의 장창병은 거의 반가량만 남아 있었고 철갑병은 제대로 다시 보니 사백
여명 정도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천여 명의 궁병이 있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는 오이랏트를 바라보았다. 이미 화시는 멈추었다. 어차피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다시 공격한다면 피해가 너무 컸다. 그가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을 때였다. 갑자기 그의 눈이 커졌다.
놀란 것은 경세진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오이랏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의 난전 수준이었다. 엄청난 동요였다.
그는 안력을 집중했다. 근 칠십 여장 너머에 흰옷을 입은 인형들과 색색의 장포를 걸친 사람들이 오이랏트의 궁수들과 한데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순간 그의 눈에 아는 사람의 얼굴이 들어왔다.
“홍어르신?.....개방?....!!!”
백염주선 홍관주였다. 분명히 말과 사람을 동시에 공중으로 날려버리는 장력은 홍관주의 장력 외에는 없었다. 그의 용화권이 저렇게 휘말려 하늘로 올려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 하얀 인영들은 개방의 사람들일 것이었다. 그럼 저 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은......역시 낮 익은 사람들이 보였다.
“팔황일검(八徨一劍) 가자성(可孜性)!....오오....점창도 왔는가!”
경세진인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오이랏트가 있는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차앗”
“파파파파팡”
엄청난 장력과 함께 한명의 기마궁수가 자신의 말과 함께 이장 밖으로 튕겨나갔다. 흰 수염에 흰머리....대춧빛 얼굴...백염주선 홍관주였다.
“한 놈도 남기지 마라! 이놈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놈들이다. 모조리 날려버렷!”
그의 입가에서 일갈이 터져 나왔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삼천의 개방도들이 더욱 신형을 빨리 놀리게 했다. 홍관주는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시간이 걸렸던 것이었다.
불가능 같았지만 개방의 육결제자 이상 소집령은 성공했다. 거의 모든 제자들이 모였다. 말만 그랬지 진짜로 오라는 말은 아니었던 것이었다.
사실은 단 한명만 필요했다. 그는 거기서 그 한사람만 붙잡고 반만 죽여 놨다.
현 개방의 방주 타구제세 유복진이 바로 그였다.
“아악...사부님,,사부님 잠깐만 아악, 아이고...”
“조용히 해라 응? 성질나는데 칭얼대다 더 맞는다.
“으악,,,컥, 에구구...아이고 사부님..아욱”
말은 해학적이었다. 허나 그 모습과 효과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팡,파팡, 퍼퍼벙, 빠각!....”
거의 어디 한군데 부러지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구타였다. 자그마치 한 시진 이상 그 음향은 지속되었다.
“이것들이...... 절루 안가!”
얼굴 여기저기에 시퍼런 멍이 든 유복진은 엉뚱한데다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오이랏트의 사람을 보는 족족, 타구봉으로 반 죽음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물론 꼭 그래서 만은 아니었다. 기회를 기다리기 위해 이들의 뒤에서 진을 치다 이들이 하는 꼴을 봤기 때문이었다. 치사하고도 치졸한 인간들이었다.
홍관주는 고개를 돌려 상황을 살폈다. 어느새 주위는 정리 되고 있었다.
저쪽에 점창의 가자성이 검기를 냅다 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둬도 무방할 듯 싶었다. 섬전검 유직도 있었다. 그의 눈이 전장을 살폈다.
문득 어느 한군데가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중 한사람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당현! 아니 저놈이 웬일이래? 여길 다 오구...”
얼굴 가득 웃음을 만드는 그였다. 사천에 오면 꼭 찾는 후배였다. 무사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 친구였다. 그는 신형을 날렸다.
“홋홋....누굴 상대로 싸우나 볼까?”
느긋한 마음으로 전장을 누비는 그였다. 그의 신형이 하얀 빛줄기가 되어 실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공주를 아미파에 넘기고 온 무정은 오이랏트의 본진으로 들어가려하다가 개방의 개입을 보았다. 그의 눈에 분전하고 있는 하얀 머리의 노인이 보였다. 홍관주였다. 무정의 입에 흐릿한 미소가 걸렸다. 비록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약속이나 마찬가지였다. 늦게 온다는 그 말.... 그는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무정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조금씩 진정이 되어가는 전장이었다.
“음!....”
무정의 왼쪽에서 미약한 살기가 느껴졌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오십 여장 정도에서 두 명의 이상한 노인이 난투를 벌이고 있었다. 살기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뒤에 있는 마차에서 미약하게나마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까지 이렇게 전해 질 정도면 엄청난 살기였다. 그는 땅을 박찼다.
당현은 이를 악물었다. 상당했다. 오 년 전 이자가 색랍사에 있었다면 자칫 낭패를 볼 뻔 했을 것이었다. 그만큼 그의 무공을 대단했다.
그가 이곳에 도착한 것은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 전이었다. 저 마차에서 나오는 기운이 몹씨나 불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그 앞을 막고 있는 한 노인이었다. 흰색의 옷을 입고 몇 살인지 짐작도 못할만한 나이........
말로만 듣던 색랍사주임이 분명했다.
천년마활불 다래가였다.
다래가는 몸을 빼는 중이었다. 그는 한 팔이 없는 타란을 시켜 마차를 몰며 전장에서 멀어지는 중이었다. 아유타는 어디 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아쉬울 것도 없었다. 뻔한 일이었다. 내뺀 것이었다.
그러나 마차는 더 이상 진군하지 못했다. 그의 뒤쪽에서 당현이 오고 있었다. 그것도 혼자........
그는 살기를 내뿜으며 마차를 돌려 세웠다. 그리곤 마차 앞으로 뛰어 나와 버티고 선 것이었다.
“오호호호.... 당현! 니놈이 간덩이가 부었구나 감히 나에게 혼자 덤비려 하다니....... 오 년 전의 빛을 갚아주마!”
다래가는 말과 함께 백랍신공을 끌어 올렸다. 그의 자그마한 체구 주위로 밝은 백광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현은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의 손에 동전이 만져졌다. 그는 다섯 개의 철전을 꺼냈다.
“오 년 전, 네놈이 있었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말과 함께 동전을 손가락사이에 하나씩 끼웠다. 왼손에 두개 오른손에 세 개의 동전이 끼어졌다. 그의 두 손이 교차 되서 양어깨근처로 올라갔다. 누군가를 조심스레 안듯이 부드러운 동작이었다. 그의 눈이 반개했다.
거리는 약 오장이 좀 넘었다. 그는 사거리를 재고 있었다.
“건방진놈!. 오늘 네놈은 내손에 갈기갈기 찢길 것이다!”
피를 토하는 일갈과 함께 다래가의 양손이 품속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권표투력(卷飄投力)!”
당현의 입에서 낭랑한 소리가 들리면서 그의 양손이 앞으로 길게 뻗었다.
다섯 개의 동전이 엄청난 회전을 하면서 앞으로 빛살처럼 쏘아져 나왔다.
“휘리리리리리링”
공기를 휘감는 소리와 함께 실처럼 길게 잔상을 남기며 떠난 동전은 어느
덧 다래가의 이장앞에 이르렀다. 다래가는 비웃음을 흘리며 품에서 손을
빼 내었다.
“따다다다당”
다래가의 눈이 커졌다. 그의 일장 반 앞에서 갑자기 동전이 서로 충돌하
더니 사방으로 비산하는 것이었다. 그 동전들은 일장의 반경을 가지면서
크게 휘어져 원호를 그리면서 다래가의 주요 대혈을 노렸다.
다리 쪽에 둘, 가슴에 둘, 그리고 머리 쪽에 하나였다. 그는 눈을 좁히며 공중으로 도약했다.
“파불혈천조(破佛血天嘲)!”
흡사 여자인 듯 여린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다래가의 신형이 공중으로 반장 정도 떠올랐다. 그의 두 무릎이 가슴에 밀착되고 머리가 숙여졌다. 그 반동으로 몸이 제자리에서 앞쪽으로 회전하며 다래가의 두 손이 쭉 폈다가 다시 오므려졌다.
“따당”
금속끼리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두개의 동전이 튕겨 나갔다. 다리 쪽의 동전은 목표를 잃고 땅에 깊숙이 박혔다. 머리 쪽의 동전은......... 다래가의 두 손 사이에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두 손의 손가락에 낀 일척의 긴 철조 사이에 잡혀있었다.
다래가가 옆의 동전을 쳐내고 두 손을 얼굴앞으로 교차시켜 잡아낸 것이었다.
“키기기기기긱!....”
양손의 철조 사이에 껴진 동전은 아직도 옅은 불꽃을 토해내며 회전하고 있었다. 대단한 회전력이었다. 은은한 기운도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내공도 실린 일격이었다. 만일 격중 했다면 몸이 두 쪽 날만한 힘이었다.
“호오......과연 당현.....허나 지금 날 무시하는 것이냐! 이따위 동전에 내가 죽을 성 싶었나!”
등줄기를 흐르는 땀을 식히며 호통 치는 다래가였다. 당현의 눈썹 끝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는 자칭 무도(武道)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고고한 생각으로 세상을 사는 이들에게는 비웃음이라는 것은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지금도 성공한 다래가였다.
“건방진 놈! 입만 살아 있는 놈이구나!”
머리끝까지 화가 난 당현은 내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얻은 심득을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암영과의 중원유랑은 그저 놀러 다니기 위함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우우우우우웅,,,,,,,,”
공기의 파동이 당현의 주위에 넓게 퍼졌다. 당현의 발아래 이리저리 고인
흙탕물에 떨어지는 빗줄기의 파동이 아닌 밖에서 안으로 동심원이 끊임없
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른발을 앞에 놓고 비스듬히 선 자세에서 그의 우수
가 어깨높이로 왼쪽으로 쭉 뻗었다. 그 손의 장심에는 청광이 은은히 어리
기 시작했다.
“무릇 무도란 그 끝은 하니 이니.....”
조용한 당현의 목소리가 울려 나갔다. 그 음성에 실린 내공이 엄청났다.
은근히 칠 장 밖으로 물러선 다래가의 귀에 똑똑히 들릴 정도였다.
“그 시작이 어떠하든, 그 배움이 어떠하든......”
그의 손이 머리위로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쭈욱 편 채로 커다란 원을
그리려는 것 같았다.
“나의 무예가 가는 길도 그 끝을 향하게 될지어다.....”
당현의 손이 어느덧 오른쪽 끝에 도달했다. 순간 주위의 공기가 그 손으
로 빨려 들고 있었다.
“한 조각 철편에 의지한 강호 협행의 안에서.....”
그의 손이 아래로 내려왔다. 다래가는 눈을 크게 뜨면서 뒷걸음치기 시작
했다. 당현의 주위 반경, 이장 정도에 있는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그 방향
이 꺾기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이젠 앞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빗방울들
이 .......... 그의 손동작에 따라 올라 오고 있었다.
“어느덧 어렴 풋이 나마 그 끝을 느꼈노라.....”
당현의 손이 멈춰 섰다. 하늘을 향한 그의 손바닥 위에는 작은 물방울들
이 멈춰져 있었다. 그러다 서로 뭉치기 시작했다. 약 일촌의 구형 물방울
이 생겨났다.
“이에 그 극을 세상에 보여주리라.......”
당현의 중지가 뒤로 휘었다. 엄지 손가락이 그 중지위에 마치 무언가 튕기
려는 듯 얹혀 있었다.
“쿵..”
다래가의 신형이 뒤로 물러서다 마차에 부딪혔다. 더 이상 후진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실태를 깨닫고 앞으로 뛰어 나갔다.
“내 손안의 힘으로써 천하의 적을 섬멸할 것이다.! 이수내력 멸천하적(以手內力 滅天下敵)!!!”
당현의 벽력같은 외침이 줄기줄기 터져 나갔다. 그의 오른손 중지가 튕겨졌다. 일촌크기의 빗물로 이루어진 구가 엄청난 속도로 튀어 나갔다.
“스스스....구구구.....콰콰콰..”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처음엔 소리도 없었다. 헌데 조금씩 그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구체가 튕겨져 나가면서 주위의 물방을을 빨아들이며 점점 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래가의 앞, 오장에 이르렀을 때는 거의 일척의 크기로 커져 있었다.
“허억....”
다래가는 신형을 멈추었다. 그는 앞발에 힘을 주며 뒤로 그대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퍼어어어엉!”
커다란 소리와 함께 구체가 터져나가며 수천 개의 작은 물방울로 변했다.
그리고는 각기 다른 반경을 지니며 원호를 그리며 다래가에게 폭사되기 시작했다. 반경이 일촌이 이르는 것부터 사장에 이르기 까지 엄청난 빠르기로 폭사 되었다.
“쩌저저저정.”
놀랍게도 물방울끼리 부딪히는 데도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내력이 실린 물방울 이었던 것이었다. 맞으면 끝장이었다. 그는 전속으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다래가의 입술이 피가 날 정도로 이빨사이에 물렸다.
뒤로 물러서면서 그는 발악적으로 소리쳤다.
“백환방천격(白環防天擊)!”
다래가의 손이 앞으로 주욱 뻗었다. 그의 철조에서 수많은 흰색 고리가 쏘아져 나갔다.
“따다다다당......”
금속의 울림이 전해지며 물방울의 공격이 현저히 줄었다. 허나 아직도 수
백 개의 물방울이 날아오고 있었다. 문득 어느새 뒤에 있던 마차 바로 앞
까지 온 그는 두 눈을 악독하게 떴다.
“콰앙”
마차의 앞부분이 부서져 나갔다. 그 안에는 십여 명의 동녀들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아악”
“아악...”
어린 여아들의 비명이 끊임없이 울렸다. 그의 철조가 그녀들의 가슴을 꿰어 한명 한명 물방울을 향해 던지고 있었다.
“파가가각....”
“파가각...”
여인들의 몸이 형체도 없이 찢겨져 나가고 있었다. 다래가는 마지막 여아의 몸을 잡아 자신의 앞으로 돌려 공중으로 살짝 띄웠다. 그리곤 그녀의 머리채를 휘감아 돌렸다.
“위이이잉”
“파가가가가각.....”
그의 앞에서 빠른 속도로 돌던 소녀는 온몸이 산산이 찢겨져 나갔다. 다래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막은 것이었다. 허나 몇 개의 물방울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와 있었다. 온몸이 욱신거리는 느낌이었다.
당현은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무공이......최후의 심득이라고 여겼던 무공
이....한낱 무공도 모르는 어린 소녀들을 산산이 찢어놓은 것이었다. 그의 눈이 치떠지기 시작했다.
“이....이......이놈!.... 죽더라도 네놈만은 갈기갈기 찢어 놓으리라!!”
폭갈과 함께 당현의 신형이 폭사 되었다. 그리고는 접전이었다. 한 치의 양보 없는 접전이 시작되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