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9 .05.
맞벌이 부부가 기르는 미취학 아이 열에 여섯이 조부모 손에 자란다. '황혼 육아' 비율이 2009년 34%에서 2015년 64%로 올랐다. "언제까지 '할머니 인프라'에 기댈 거냐"는 말이 나온다. 멀리 갈 것 없다. 필자 를 포함, 여기자 상당수가 '할머니 인프라'로 아이를 키워왔고, 지금도 키우고 있다.
▶ 왜 꼭 엄마 아니면 할머니인가. '양육 본능'을 연구하던 미국 과학자들은 '옥시토신' 호르몬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 덕에 임신을 유지하고, 젖을 돌게 하고, 양육 본능을 만든다. 아내가 배고픈 남편을 챙겨 먹이는 일도 비슷하다. 딸이 20~30대 출산 적령기 때 그 딸의 엄마가 폐경을 시작하는 '인생 시계'를 의미 있게 본 과학자도 있다. 폐경하는 포유류는 들쇠고래·범고래·인간뿐이다. 미국 인류학자는 '할머니 이론'으로 설명했다. 노산(老産) 위험보다는 자식이 자식을 낳도록 이끌고 보살피는 게 종족 번식에 낫기에 그리 진화해왔다고 했다.
▶ 염소·기린·사슴·얼룩말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서고 하루 안에 걸어 다닌다. 인간은 1년 가까이 걸린다. 인간은 '지능 발달'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 더 오래 '양육'받도록 진화했다. 양육 책임은 번식의 대가다. 지금껏 인류 공동체가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적은 없다. 이스라엘 '키부츠'도 공동 육아를 공식 폐지했다. 손주 안아주다 손목건초염·손목터널증후군에 시달려도, "방아깨비를 키우지 외손주를 키우냐" "손주 키운 공은 없다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할머니만큼 아이를 지극정성 돌봐줄 '타인'은 없다.
▶ 그러나 '할머니 인프라'는 지속 가능 모델이 아니다. 지금 '할머니 예비군'인 5060 여성은 7080여성과 또 다르다. 연전에 조부모 500명에게 물었더니 '그만 봐도 된다면 (손주 보기를) 그만두고 싶다'는 답이 73.8%나 됐다. '딸에게 결혼하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다'는 5060도 흔하다. 그들이 손주 키우다 앓아눕는 '손주병'을 감내할 가능성은 점점 적어진다.
▶ 호주는 '조부모 아이 돌봄수당'을 준다. 시간당 1000원도 안 되지만 '손주는 정(情)으로 봐준다'는 생각을 깼다. 일본도 3대가 살 집을 신축·개조하면 나라가 보조금을 준다. 자식도 부모의 시간과 노력을 다른 걸로 벌충해줘야 한다. '성 교육'은 하면서 '애 키우기 교육'은 왜 안 하나. 할머니 아닌 다른 '양육 인프라'도 만들어야 한다. 못하면 저출산 해답도 못 찾는다.
박은주 논설위원·디지털편집국 사회부장 zeeny@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