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원의 五讀悟讀
문장에 귀 기울이다
이서원
...전략
적막 한 채 짊어지고 바라보는 산등성이
명치로 우는 뻐꾹 유월을 맴도는데
엉겅퀴 곧은 뼈 세워 녹슨 철모 뚫습니다
아린 상처 훑고 가는 가칠봉 바람 앞에
피로 쓴 한 줄 문장 철책선 들며나며
검붉은 옹이로 박혀 차마 읽지 못합니다
-김덕남 「휴전선 바람편지-DMZ 을지전망대에서」
역사의 아픈 현장인 가칠봉 앞에 시인은 서 있다. 그가 50년생이고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 6.25 전사자의 딸로서 바라보는 시선은 남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로 가칠봉이 들어가야 비로소 1만 2천봉 된다. 그래서 가칠봉의 '가'자는 더할 ‘加'를 쓰니 그만큼 아름다움이 더해 졌겠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산에서 6.25 당시 여섯 번이나 주인이 바뀔 만 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니 이 봉우리의 사연이 얼마나 깊었는지 가늠하 겠다.
왠지 아름다움의 반대말은 못나거나 추함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형용사 같다. 그 누구도 DMZ 전망대에 와서는 사뭇 진지해지고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엉겅퀴 곧은 뼈 세워” 피는 저 의지가 곧 우리 민족의 정신이건만 가혹 한 분단 앞에서 옷깃을 여미게 된다. 당시에 군인들이 썼던 철모는 이제 녹이 슬어 그 형태조차 바스라지고 있다. "피로 쓴 한 줄 문장"은 남북이 하나가 되기 전까지는 결코 미완으로 남겠다. 어쩌나, 이 아린 문장의 마침표를 언제쯤 찍어서 당당하게 탈고되어 우리가 아름답게 마주 앉아 읽을 수 있겠나.
얼마 전 끝난 TV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주인공의 독백 중 "바람은 왜 부느냐면 지나기 위해서 부는 거야."라며 스스로 위무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렇다 바람은 지나가기 위해서 분다. "철책선 들며나며" 바람도 햇볕도 심지어 새들의 노래도 막힘없이 오간다. 그런데도 차마 소리 내어 읽지 못하 는 분단의 아픈 역사 앞에 서면 우린 모두 "옹이처럼 아리다.
항암의 더딘 팔로 스웨터를 짜는 오후
바늘 끝에 설핏 걸린 햇살이 목숨 같아
머리칼 우수수 지는 골목을 휘청인다
엄마, 세 밤만 자면 꼬옥 꼭 오는 거지?
등에 업혀 잠이 든 네 살 아이 잠꼬대
목울대 지긋 누르며 그럼그럼, 옷을 짠다
한 뼘 두뼘 길이 재며 남은 날을 가늠하다
조금 더 클 때까지 조금만 아주 조금만
먼 별의 거리를 재며 두 손 가만 모은다
-유순덕 「스웨터를 짜는 시간」
영화의 한 장면이거나 소설 속의 한 부분이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그저 우 리 이웃의 이야기는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눈물이 난다. “네 살 아이의 잠꼬대”가 어찌 투정일까. 저 말을 듣는 엄마는 또 얼마나 가슴 저릴까. 오후의 햇살은 병실 끝까지 내려와 이제 곧 지고 말테다. 시인은 어찌 이리도 처연한가. 어찌 이리도 냉정한가. 끝까지 문장을 끌고 가는 저 필력은 어쩌 면 스웨터를 짜는 엄마의 모정일까. 엄마는 아이를 업고 한쪽 팔엔 링거를 꽂은 채 아이의 잠꼬대에 답을 한다 “그럼그럼”그런데 왜 “그렁그렁”으로 읽힐까. 눈물이 맺힌 두 눈은 벌겋게 충혈 되었지만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 는다. 아이가 네 살이니 엄마의 나이도 가늠할 수 있겠다. 두 손을 모은다. 조금만 조금만 그러다 또 작은 욕심을 부려 본다. 아이가 초등학교도 입학하 는 걸 보고 싶다. 결혼을 하는 것도 보고 싶다. 엄마랑 함께 친구가 되어 도 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꿈도 꾼다. “먼 별의 거리" 만큼이나 아직은 아니라 고 도리질을 치다 또 이것마저도 욕심인가 싶어 생각을 내려놓는다. 그래, 그래. “조금 더 클 때까지”만 살게 해 주세요. 더 이상 욕심부리지 않을게요. “한 뼘 두 뺨” 인생의 남은 날을 가늠하며 다시 못다 만든 스웨터를 짠다. 실 은 몇 번이나 엉켜 또 푼다.
시는 "두 손 가만 모으며 기도하는 종장에서 끝을 맺었지만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해피엔딩일 거라고, 신은 저 엄마의 간절한 기원을 들어주셨을 거라고, 어릴 적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으며 윤초시의 딸이 죽지 않기를 바 랐던 것처럼.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그동안 생소했던 '사회적 거리두 기(social distancing)'가 요즘 가장 뜨거운 관심어가 되었다. 자동차 간에 도 안전거리확보가 필요하고, 상추, 깨, 콩, 고추 등 식물의 모종 사이도 너무 붙어있으면 솎아내어 열매 맺기에 좋은 거리를 만들어 준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것에는 간격, 사이, 거리의 유지가 중요한가 보다. 하기야 돌아 보면 사회 전반에 걸쳐 이미 '혼술', '혼밥'으로 1인 용품이 호황을 누리는 시대가 도래해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는 엄청난 확진자가 나왔어도 우왕 좌왕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대처를 해서 세계적으로 모범사례가 되어 주목 을 받고 있다. 인간 즉, 사람(人)은 사이(間)를 잘 유지해야만 서로 부딪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문장도 이와 다르지 않으니 시 속의 단어와 단어 사이에 그 간극을 어떻 게 의미 있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 조선후기 문장가인 홍길주는 <숙수념>에서 “천하에 항상 살아서 죽지 않는 것이 있다면 오직 문자가 있을 뿐이다.”라고 역설했다. 참된 문장이라면 활물活物, 심장이 살아 펄 떡펄떡 뛰는 소리가 차고 넘치는 것이다. 위 시조를 통해 자신만의 오목하고도 동그란 미시적 통찰을 살펴보면서, 경물景物마다 드나드는 합변지권合變之權 (상황에 따라 변화시키는 묘)에 가슴이 따듯해진다.
이서원 200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달빛을 동이다 외 2권, 이호 우시조문학상신인상 외 수상.
- 《시조21》 2020.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