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시대(Cell)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29:18)
신33:26-34:12절) 모세의 비전
Ⅱ.모세의 삶(중)
모세의 최후에 대해서는 신명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34:5-8절)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바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 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후,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말씀으로 가르쳤던 모세는 이제 가나안 땅을 보기만 하고. 최후를 맞게 됩니다. 그런 모세의 삶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34:10-12절)그 이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 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먼저 모세가 한 일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모세는 지팡이 하나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군사력(軍事力)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려고 했다면, 몇 십만 명의 군대(軍隊)를 동원(動員)해서 바로의 군대(軍隊)와 치열(熾㤠)하게 싸워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단 한 사람의 군인(軍人)도 없이 지팡이 하나로 기도와 말씀으로 열 가지 기적(奇蹟)으로 바로를 굴복(屈伏)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열 가지 기적 중, 단 하나도 비슷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이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말씀과 기도로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열 가지 기적(奇蹟)을 행한 후, 홍해 바다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그 바다를 통과함으로써 바로의 지배(支配)를 끝내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자신이 하나 되게 했습니다. 이것이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서 모세의 세례(洗禮)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운명(運命)은 모세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홍해를 건넌 그 순간부터는 애굽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모세가 하자는 대로 하면. 살고, 모세의 뜻을 거스르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넘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들의 운명(運命)을 맡긴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세례(洗禮)를 받음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우리의 모든 죄(罪)는 예수님이 다 가져가시고, 예수님의 의(義)와 능력(能力)이 모두 우리에게 넘어온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면, 살고. 예수님의 말씀을 거스르면 죽게 됩니다.
무엇보다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게 했습니다. 모세는 시내 산(山)에서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았으며, 그 음성(音聲)을 직접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람이 떡(돈)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생명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돈 한 푼 벌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았습니다.
돈 한 푼 벌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걱정하고 염려하겠습니까? 다른 모든 것도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하면 광야의 기적은 가나안에서도 계속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렇게 가나안 땅을 밟아보기를 원했는데도 가나안 땅을 보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을까?
그것은 모세의 사명(使命)이 율법(律法)의 사명(使命)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罪)짓지 못하도록 지키는 사명(使命)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율법(律法)은 대단했습니다. 광야에서 기적(奇蹟)이 있었고. 시내 산(山)에서 불같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얼굴에는 광채(光彩)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만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죄(罪)짓지 않는 것만은 아닙니다. 산(山)에 불이 없고. 또 모세의 지팡이나 광채(光彩)가 없어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 가지고. 이 세상을 정복(征服)하는 적극적인 것이 있는데, 바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 운동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광채(光彩)도 없고. 지팡이도 없고. 기적(奇蹟)도 없었지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가나안 족속들을 다 몰아내고. 그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지팡이 없이 광채 없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 가지고 사는 것이 더 위대(偉大)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 므리바 반석(磐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화를 내자 그는 반석을 두 번이나 치면서 자신이 *이 반석에서 물을 내야 하느냐?' 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율법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민12:3절)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地面)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대적(對敵)과 원망(怨望)앞에서 화가 폭발했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律法)이 죄를 눌러 놓을 수는 있지만. 사람의 깊은 내면(內面)을 변화(變化)시킬 순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모세는 자기와 함께 홍해를 건넜던 사람들과 운명(運命)을 같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의 깊은 내면(內面)을 변화(變化)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福音)뿐입니다. 사실 누구든지 진정으로 거듭나기 전, 신앙생활은 자신의 힘으로 모든 욕망(慾望)과 유혹(誘惑)을 눌러 놓는 것입니다. 즉 여기가 터지려고 하면, 여기를 눌러 놓고, 저기가 터지려고 하면 저기를 눌러 놓지만, 그러다가 결국 다 터져 버리게 되고, 그제야 하나님 앞에 두손두발 다 들고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세가 하나님의 집에서 사환(使喚)으로 사용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환(使喚)은 주인의 심부름꾼인 것입니다. 모세의 능력은 모세의 능력이 아니라, 전부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즉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심부름만 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능력 있고 가장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아-멘
찬송가 504장 *주님의 명령 전할 사자여*
은혜를 사모하면, 다음에 계속 ⇨
💖진리의 복음💖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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