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는 당신
떠나기 시작하자, ‘부럽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내게 부럽다고 할 적이면 그것은 십중팔구 ‘떠남’에 관한 것이다. 부럽다, 나도 너처럼 떠나고 싶어.
열여섯의 나, 1교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는데도 책가방을 멘다. 그리고는 우리 반을 향해 걸어오는 선생님을 등지고 밖으로 나선다. 굳게 닫힌 교문의 작은 틈을 밀어내던 그 해. 출석부에 적힌 내 이름에 빨간 줄이 죽 그어지던 해. 나의 빨간 줄은 이기의 저편으로 밀어 넣어 놓고 그저 1교시가 되든, 2교시가 되든 더 이상 마음 달아하지 않는 나를 보며 몇이나 그런 말을 했던가. 부럽다, 정말. 나도 너처럼 떠나고 싶어.
열일곱의 나, 새벽 두 시에 집으로 들어가도 혼이 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불을 켠다. 불을 켜거나 끄는 것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자정이 넘어도 초조해하지 않는 나를 두고 그런다. 부럽다, 정말. 나도 집을 나가고 싶어.
열여덟의 나, 영국 행 비행기에 오른다. 바삐 비행기에 올랐던 나. 우는 은주를 두고 인사나 제대로 했던지. 스파게티와 와인으로 식사를 한다. 영국은 담배 값이 너무 비싸니 담배 좀 사러 프랑스를 다녀왔다는 말도 한다. 그들은 영락없이 그런다. 부럽다, 정말.
스물하나가 된 나, 이번에는 호주 행 비행기를 탄다. 우리는 여름이지만, 거기는 겨울이라고. 두터운 점퍼를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두 달 후면 월급이 크게 오를 것이다. 하지만 월급 따위, 떠난다. 언제 올 거니. 글쎄. 가봐야 알겠지. 넌 그렇게 떠날 수 있구나. 부럽다, 정말.
스물둘의 나, 한 해의 마지막이라고 친구와 낚지 볶음을 먹는다. 비싸겠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라면서. 낚지 볶음 속의 낚지가 채 익지도 않았는데 ‘제주도의 푸른 밤’이 흘러나온다. 떠나요, 제주도. 떠난다. 제주도로. 아니, 글쎄. 밥을 먹는데 딱 그 노래가 나오지 않겠어? 떠나요, 프랑스. 이런 노래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지, 뭐야. 너스레를 떠는 나를 두고 또 그런다. 그랬으면, 넌 프랑스로 갔겠지. 부럽다, 정말.
스물셋의 나, 눈물을 억지로 들이부으며 떠나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 컴퓨터에 앉는다. 호주, 영국, 스페인, 미국, 이집트. 친구들을 찬찬히 훑어본다. 그 때 접속해 있는 것은 이집트에서 십 년을 넘게 산 녀석이다. 이튿날,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여전히 낯선 인천 국제공항. 어쩌면 그것이 떠남을 기억하는 요새와 같아 내 마음 속에 단단하게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인천 공항은 수번을 들락거렸으면서도 여태껏 내게 낯설다. 낯선 곳으로 가기 위한 길목이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낯선 인천 국제공항에 서서 이집트 행 티켓을 손에 쥐고 있다. 그런 나라를 가 보다니. 부럽다, 정말.
“넌 거짓말같이 사는 애야.”
“거짓말같이? 그게 뭐야?”
“좋은 뜻이야.”
“정말이지? 정말 좋은 뜻이지?”
“그럼.”
그런 K는 일본 여행을 가려고 했던 경비로 카메라 렌즈를 샀다고도 한다. 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꼭 ‘크리스마스 선물’ 같잖아. 머리카락을 죄다 잘라버렸는데 머리핀이 무슨 소용이니. 시계를 팔아버렸는데 시계 줄이 무슨 소용이야.
떠나거나 떠나지 않는 것은 너와 나의 ‘차이점’이야.
부럽다는 말에 진절머리가 난다. 어쩌면 그것은 평생을 누더기로 지내 온 어떤 여자 아이가 갑자기 실크 블라우스 하나를 선물 받아 몸에 걸치니 당최 옷을 입지 않은 것 같은 민망함일까.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제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J에게는 번뜩 화를 내고 말았다. 그만 좀 해! 돌연한 화에 J는 어리둥절했던지 볼이 실룩해진 것 같은 말투. 키보드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의 실룩해진 볼이 모니터에 올라온다. 하지만 정작 아무런 글귀도 올라오지 않는 J와의 대화창을 한참이나 보다가 미안해, 라고 적기는 했던가.
별 것 아닌 말이다. 그저 ‘부럽냐, 요 자식.’ 웃어넘기면 될 것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토록 그 말에 분통 터져 하는 것은 내가 흘린 고생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고 있는 영악한 마음인지도 모른다. 내 발바닥에 굳은살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채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말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타인에게 부럽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 없는 삶이 내가 걸친 옷이었다. 예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고, 부모도 없는데, 돈도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이야기를 간간히 듣기 시작하면서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있었다. 좁쌀을 뿌려놓은 체 마냥 오돌도돌한 팔을 벅벅 긁어대자 금세 상처가 졌다. 팔뚝에 머문 생채기가 가시기도 전에 누군가는 또 다시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부럽다, 정말.
단지 당신은 지킬 것이 많은 탓이다.
지킬 것이 없는 나는 떠난다. 학교도 가족도 직장도. 무엇하나 번듯한 것이 없어 떠날 수 있는 게다. 당신은 떠나지 않는 것이지,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데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는지 역한 기운이 올라온다. 그들은 돈이 없다고도 한다. 보증금을 빼버려. 적금을 깨버려. 그것들을 다 지켜가면서 어떻게 떠나니. 내가 떠날 수 있던 순간들 속, 그런 것들이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그들은 시간이 없다고도 한다. 직장을 그만 둬. 학교를 쉬어. 한번씩 떠날 적마다 내 앞으로 갈 길을 뒤로 돌려놓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해야 했다. “꽂혔다”라고 표현하던 것들. 예를 들어 낚지 볶음을 먹다가 ‘제주도의 푸른 밤’이 흘러나왔기 때문. 그런 것들을 한 순간 결정하면서 나는 그것으로 인해 쓰게 된 돈이며 시간을 메우기 위해 얼마나 쩔쩔 맸던지. 그들은 직장도 학교도 보증금도 만기가 한 사년 쯤 남은 적금통장도 지키면서 그것들을 포기하고 떠난 나를 부럽다고 하고 있다니.
열여섯의 나, 교복을 입은 여자 아이를 볼 적마다 눈물이 솟곤 한다. 복학을 할 거야, 이를 악다물지만 복학을 하려면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러나 일을 그만두면 학교를 다닐 수가 없다. 이듬해 검정고시 합격증을 받아들고 알싸하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구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예쁘게 접힌 흰 양말과 반짝이는 구두 앞코를 볼 때면 얼마나 내 가슴이 그 안으로 첨벙첨벙 들어갔던지. 내게 부럽다고 말하는 너의 교복 치마를 보고 돌아온 날이면 여지없이 눈이 퉁퉁 불곤 했지. 퉁퉁 분 눈과 기름때 묻은 주유복과 겨울이면 터져서 피가 나곤 하는 뒤꿈치와 바꾸어 커다랗고 무거운 교문을 민다.
열일곱의 나,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그마저도 10분 안에 급히 먹어야만 담배를 한 대 피울 수가 있다. 몸에서는 온갖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자동차 기름내가 지려고 하면 불에 지져 피어오르는 삼겹살의 연기가 머리카락에 담겼다. 머리카락을 벅벅 문질러도 가시지 않던 그 자욱한 기름 냄새. 그것으로 자정이 되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타박을 듣지 않는다.
열여덟의 나, 런던의 길거리를 헤맨다. 가지고 온 몇 십 만 원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차마 돈이 없어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 찬 버스를 타지 못하고 그 배기가스에 몸을 녹인다. 공원에 가 한 숨을 청한다. 사람이 두려워 교회 앞에 앉아 또 한 숨을 청한다. 팔이 얼얼해질 정도로 설거지를 하고 나면 몇 킬로를 걸어 근근이 구한 집으로 향한다. 라면이 죽도록 먹고 싶었지만 스파게티 면이 훨씬 싸다. 물이 마시고 싶었지만 석회질을 한껏 품은 수돗물은 도저히 마실 수가 없다. 런던의 그 슈퍼, 물보다 싸구려 와인이 더 싸다. 석회질을 걸러주는 정수기를 살 돈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스물하나의 나, 호주를 다녀온 대가를 치르느라 밤에도 일을 한다. 호주에서는 일찍이 돌아왔지만 그 곳에 가려고 끊은 12개월 할부 비행기 값은 아직도 남았다. 너는 자고 있을 시간이다.
스물둘의 나, 어느 때보다 호화로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난날들에 가슴이 먹먹하다. 꿈에서도 몇 번이나 깨어 그 비행기 값을 얻기 위해, 그 식사를 얻기 위해 사방으로 뛰었던 내가 자꾸만 애처로워 잠을 자다가 벌떡 벌떡 일어선다. 그러고 나니 깨어서도 내내 졸리다. 꿈꾸는 듯한 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피로는 겹겹이 쌓여 잠을 자고 깨어서도 개운치가 않다, 영.
스물셋의 나, 시내산을 터벅터벅 오른다. 고도에 숨이 막히지만 일을 배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돌아오는 길 근육이 아려 계단 하나를 오르는데도 허벅지가 꽉꽉 메어온다. 난방이라는 게 없는 이집트의 집에서는 하룻밤을 푹 자고 일어나도 도무지 근육통이 가시질 않는다. 온 몸이 쑤셔 앉아있기도 힘든 채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내게 너가 그런다. 부럽다.
누군가 떡볶이를 먹는다고 해도, 누군가 MP3를 좋은 놈으로 샀다거나, 누군가가 어떤 자격증을 땄다고 할 적마다 나도 그런다. 부럽다, 정말.
그러면서도 누군가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울화통이 치민다. 내가 떠나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 냉골 같은 바닥에 드러누워 내일을 걱정하고, 월급 통장을 보며 한숨을 얼마나 쉬어댔던지. 동대문에서 오천 원을 주고 티셔츠 한 벌을 사도 삼 년을 입었어. 나중에는 겨드랑이가 헤지고, 뒷덜미가 헤져 구멍이 숭숭 뚫려도 입었지. 끝내 팔을 내리고 있어도 구멍이 보일 때쯤 벗었단다. 물론, 그만큼 절실히 가난했다는 것은 아니야. 다만 나는 네가 철마다 바꾸는 옷을 사지 않았단다. 네가 여자친구에게 사주는 반지를 사지 않았단다. 네가 남자친구에게 사주는 구두를 사지 않았단다. 그 옷으로, 그 반지로, 그 구두로 떠난 것이야. 게다가 너에게는 없잖니.
떠나지 않으면 숨구멍이 틀어 막혀져 온 벽이 점점 좁아지다 너를 옭좨 일 것 같은 아침이.
네가 예쁜 교복을 입고 대문을 나설 때, 내가 주유복을 입고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던 그 때부터 그랬던 거야. 교복을 벗기 위해 주유복을 입었지. 책가방을 매지 않기 위해 쟁반을 들었단다. 네가 입고 있던 그 하얗고 예쁜 교복 블라우스는 벗으려고 하지 않으면서 왜 자꾸 자유로운 내가 부럽다고 하니. 주유복을 입을 생각은 없는 주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