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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목사와 전도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나의 주로 고백하는 성도는 누구든지 하는 것입니다. 성령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베드로를 전도한 사람은 안드레입니다. 안드레가 자기 형인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가면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가장 사랑받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스데반이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할 때에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누구도 예수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흘린 피가 사도 바울을 잉태하는 씨앗이 되었고, 바울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당한 환난으로 인해 아시아와 유럽에 흩어진 사람들이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우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람, 복음의 전도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도명령이고 이를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도하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는 가르치시는 것, 둘째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것, 세 번째는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마 9:35에는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었습니다. 땅에서 소원성취하면서 살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땅에 살지만 장차 다가 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되라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 40일 금식을 마치시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시면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4:17)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천국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 11:20).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라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안에 있느니라”(눅 17:20~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은혜로 살아가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죄와 세상과 마귀와 싸워 승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땅에서 천국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성령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죄에 빠져 살고, 세상의 일에 시달리고, 특히 귀신에 붙들려 살아가면서 지옥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천국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이며, 이것이 축복입니다. 땅에 사는 동안 천국의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샬롬으로 충만하셔서 천국의 은혜가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장차 우리가 이 땅을 떠나갈 때에 가야할 천국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은 천국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예수님의 팔복에 관한 말씀이 천국에 관한 말씀이고,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천국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지침서입니다. 마 13장에는 씨뿌리는 비유, 알곡과 가라지 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의 비유, 감추인 보화의 비유, 그물의 비유가 나오는데, 이 7가지 비유가 모두 천국에 관한 말씀입니다. 마 20장에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 22장에 혼인 잔치의 비유, 25장에 열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도 천국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식탁의 교제를 나누신 뒤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니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에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유도 믿는 자들을 위하여 천국을 예비하러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예비하고 나면 구름타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때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어린양의 혼인잔치 자리에 참여하게 하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공생애는 탄생부터 부활 승천까지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대한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천국을 전하러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복음을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이 천국복음을 전할 사명 때문에 제가 목사가 되어 지금 설교하고 있는 것이고, 천국복음을 전할 사명이 또한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막 1:38~39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예수님은 “내가 전도하러 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까운 마을에 가셔서 전도하셨고, 온 갈릴리를 다니시며 전도하셨고, 여러 회당을 다니시면서 전도하셨고. 귀신을 내쫓으시면서 전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전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이고, 우리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따라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전도한다고 누가 교회에 나올까?”라고 염려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에게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고 천국가세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천국에 가는 길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라고 전하면 됩니다. 나머지 일은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믿은 예수를 전하고, 내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면 됩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내가 만나 복음 전하는 사람들이 다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작정한 자들이 주께로 돌아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기적을 그토록 많이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기사와 이적을 보이시고 천국 말씀을 전하셨어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싫어합니다. 복음이 들려지면 귀를 막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주님께 돌아오는 자는 복된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복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핑계를 만들어서 교회를 비난하고, 목사님을 비난하고, 성도들을 비난하면서 예수를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잘되고 부흥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교회를 무력화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세상을 이리와 같다고 하셨고, 이런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어린양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전도의 사명을 받은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듣던지 듣지 않든지 개의치 말고,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십자가 군병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전도하러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도 전도해야 합니다. 때로는 특별한 시간을 내서 전도하시고, 때로는 부지불식간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의 때가 이른 사람들이 주께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전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1. 두려움 앞서 말씀 드렸지만, 복음을 전하는데 용기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입을 열어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에 자신이 없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이 창피합니다. 그 이유는 성령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떳떳하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감옥에도, 죽음의 자리에도 같이 갈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으려는 무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고 말고의 귀를 잘라내는 용기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와 함께 온 무리들에게 붙잡히셨을 때에 베드로와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용기를 내어 대제사장의 뜰에 갔지만, 베드로를 알아본 여종들이 “너도 예수와 함께 있었지. 내가 예수님 옆에 네가 있는 것을 봤어. 네 말투가 갈릴리 말투인 것을 보니 틀림없이 예수도당이 맞어”라고 말했을 때에 베드로는 처음에는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두 번째는 맹세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라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세 번째는 저주하여 맹세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한다”라고 부인했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믿음의 한계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예수님을 위해 살아본다고 말을 해도 죽음 앞에서, 삶의 극한 어려움 속에서 믿음을 지켜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성령 받아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성령 받아야 예수님을 위해 죽을 수 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받은 베드로가 복음을 담대하게 전합니다. 3000명을 회개시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을 잡아서 예수를 전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때 베드로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으냐?”(행 4:19)라고 말하면서 대제사장을 설득합니다. 너희도 예수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도들과 성도들은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행 4:29~39)라고 기도했습니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기도였습니다.
사도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복음을 전했습니다. 남녀의 큰 무리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돌아왔습니다. 병자들이 나음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왔고, 귀신들린 자들도 나와 귀신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 당파 사람들이 시기하는 마음이 가득하여 사도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넣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와 사도들이 말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 5:29). 화가 난 대제사장이 저들을 불러들여 채찍으로 때립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말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능욕받는 것을 합당한 일로 여깁니다. 오히려 기뻐합니다. 공회를 떠나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며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행 5:41~42). 할렐루야~
전도하려면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성령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부르짖어 기도하시고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분주함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쓸데 없는 일로 너무 분주합니다. 자신이 정작해야 할 일을 잊어 버린채 분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분주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중의 하나가 “바쁘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로 바쁘냐?”라고 물으면 “그냥 바쁘다. 별일도 없는데 그렇게 바쁘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시간을 쪼개 써도 모자를 정도로 바쁜 사람들도 있겠지만, 실상은 이유 없이 바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목적도 없이 이유도 없이 바쁘다면 우리는 세월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헛되게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사용할 때도 주님이 원하시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어야 합니다. 쓸데 없이 바빠서 성경도 읽지 못하고, 쓸데 없이 바빠서 말씀 묵상도 못하고, 쓸데 없이 바빠서 기도생활도 못하고, 쓸데 없이 바빠서 전도도 못하고, 쓸데 없이 바빠서 주님의 일을 못한다면 문제입니다. 쓸데 없는 분주함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에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서 분주했습니다. 갑자기 손님이 들이닥치자 경황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을 위해서 음식을 장만하느라고 이것저것 분주하게 일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에게 “예수님, 제가 지금 몹시 바쁩니다. 정신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동생이 눈치도 없이 지금 예수님 옆에서 앉아 있습니다. 제 동생에게 ‘부엌에 나가서 네 언니를 도와주라고 말씀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르다의 말에 호응하지 않으시고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하고 설명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했다는 것은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기 집을 방문하신 이유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니까 심방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심방을 가면 어떤 분들은 심방을 간 목사님과 성도들을 위해서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은 듣지도 않고 열심히 부엌을 왔다갔다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심방을 받는 분들이 먼저 해야할 일은 목사님께서 그 가정을 위해 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아멘하면서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그 후의 일입니다.
마르다가 분주하였던 이유는 순서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집을 방문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하는 일에 몰두했던 것입니다. 분주하면 실패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정하고 주님의 말씀을 잘 들었던 마리아는 승리합니다. 마리아는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드림으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칭찬받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보다 앞서는 것은 없습니다. 회의가 길어진다고 예배를 뒷전으로 하거나, 음식을 만들어야 해서 예배가 뒷전으로 밀린다거나, 여러 가지 분주한 일 때문에 예배를 뒤로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비본질이 본질을 밀어내면 교회가 시험에 빠집니다.
개인의 삶에서 쓸데없이 분주한 일을 버리고, 쓸데 없는 시간을 자신의 영성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꼭 필요한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쓸데 없는 시간을 전도하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자들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는 말씀처럼 힘써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전도하시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도 하나님의 전도명령에 순종하여 영혼을 구원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사랑의 빚갚으로 삼례와 논산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