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포로생활을 하고 석방되어 고향에 와보니 친척 한사람과 고씨성을 가진 사람이 경찰에 잡혀갔음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산(山)사람으로 인정이 안되서 안심하고 살고 있는 중에 6.25사변이 발발했기 때문에 이 사람을 동네에 놓아두면 산(山)사람으로 변하여
제2 반란군이 될까봐 경찰은 죄 없는 사람을 잡아가 버려 지금까지도 소식이 없으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행방불명이 되니 생일날에 제사만 지내고 있는 실정이다.
고림동에 오고 보니 그때까지도 공비가 가끔 있어 이들이 완전 진압이 안된 때라, 동네사람이 농사지으러 다니다가 산(山)사람에게 붙들려 갈수도 있다고 하는데 안심하여 살수가 없었다.
마을청년들은 특공대를 조직하고 매일같이 성담을 돌면서 순찰을 한다.
성담주위에는 군데군데 초소막이 있고 초소막에는 노인과 처녀들이 하루 밤씩 돌아가면서 순번제로 보초를 선다.
낮에는 산에서 공비가 내려 올까봐 높은 산에서 보초를 서는데 어느 틈엔가 공비들이 정문 앞까지 내려와서 보초병에게 사격을 가하여 산속으로 도주하기도 하였다.
보초를 잘못서다가 지서주임에게 발각되면 죽도록 매를 맞는다. 지서 주임은 이북출신으로 김석영이고 꽤나 날카로운 순경이다.
하루는 특공대를 다 모이라고 하여 김모씨를 엎드려뻗쳐 하고서는 권총반도로 때리려고 하니, 김모씨는 벌떡 일어나서 그에게 대항하여 메다치고(꼬꾸라뜨리고)는 밖으로 도망갔다.
김주임은 화가 나서 수류탄안전핀을 뽑고 던지려고 하니 우리는 중창 문으로 도망쳐서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러나 김주임은 수류탄 안전핀을 다시 꽂아놓고 “고 순경”하고 부르니, 고 순경은 “예” 하고 김주임 앞에 부동자세로 서자 권총반도로 얼굴을 가격한다.
방위 교육을 잘못 시켰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열 받은 고 순경은 화가 나서 우리를 모아놓고 기합을 주려고 촐(꼴)밭 동산에 가서 포복을 시키며 기합을 주는데 어떠한 이유도 없다,
그냥 심심하면 기합을 준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기합을 받는다.
다음날 총을 메고 야외로 가서 공비(산 사람)가 올까 봐 보초를 서다가 저녁때가 되면 집으로 와서 보초막순찰을 하곤 하였다.
그 당시 지서주임한테 기합을 안 받고 매를 안 맞은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매 한번 기합 한번 안 받았다.
왜냐하면 먹을 것을 갖다 주었으니까.
그 당시는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아버지하고 나는 하늘래기(알맹이가 노란색)뿌리를 파서 진을 빼고 가루를 만들어 고구마 전분과 밀깨 가루를 썩어서 떡을 하여 먹으면서 생계유지를 하였다.
이때 하늘래기 뿌리를 한 됫박 갖다 주니까 '컬 컬 컬' 웃으면서 자기 마누라 보고 빨리 떡을 만들어서 먹자고 한다.
그 다음부터는 나를 대하는 얼굴을 보면 날카로운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순한 얼굴로 대하여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몇 개월 동안을 무사히 지내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김석영 주임을 독한 주임이라고 손가락질 하였는데, 군대 갔다 제대하여 보니 김석영 주임은 자기명대로 살지 못하였다고 한다.
술 먹고 싸움질 하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하였다.
악종으로 살면 자기 명에 죽지 못한다고 하는데 착한 행동을 하여야만 자기 명에 죽는다는 옛 선인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렇게 고림동에서 생활하다 군대를 가게 되었다.
그 당시 산 사람에게 잡혀간 사람은 며칠 만에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운이 좋았던 사람은 젊은 나이임에도 잡혀가지 않고 지금까지 우리 마을에 생존해 계신 분도 몇 사람 있다.
나는 집에 왔지만 흉년이 들어서 우리 식구 4명이 살아갈 길이 없어 불구가 된 아버지와 같이 곡괭이를 메고서 매일같이 하늘래기 뿌리를 파고 진을 빼서 누까가루, 밀깨가루, 고구마 전분을 섞어 먹으면서 초근목피(草根木皮) 생계유지를 하였다.
그해 겨울, 병든 동생은 세상을 떠났고 자식은 나 홀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제주도는 6.25 전쟁이 나고 4.3사건 진압이 덜된 때라 산 사람들은 마을지서를 습격한다.
1개월 동안 방위근무를 하다가 현역으로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