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우리의 모본자 예수님 ㅡ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여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 1:19)
우리의 위대한 모본자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하게 높임을 받았다. 그는 하늘의 사령관이었다.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 그 앞에 경배하기를 기뻐하였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본성을 취하시고 사명을 다하시려고, 잃은 자를 구하시려고 그분의 영광과 존귀와 부를 버리셨다.
그분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않고 섬기러 오셨다.
예수께서는 모욕을 당하시고 놀림을 받으시고 거친 취급을 받으셨지만 응수하지 않으셨다. “그는 욕을 당하셨으나 욕하지 않으셨다.”(벧전 2:23).
잔인한 사람들에 의해 고통스런 채찍에 상하셨으나 그분은 위협하지 않으셨다.
오로지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께 그들을 맡기셨다.
바울은 빌립보의 형제들에게 권고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 2:5).
종이 주인보다 더 큰가?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삶을 우리의 모본으로 주셨다.
우리가 당하는 멸시로 인해 마음이 들끓고, 모든 실지의 혹은 가상의 손해에 대해 분개한다면 그분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다.
자아를 변호하고 우리 자신의 위엄을 세우려는 일은 고상한 마음의 증거가 아니다.
우리는 보복의 정신이나 화를 쏟아냄으로 영혼을 상처입히기 보다는 수백 번 잘못된 대우를 당하는 편이 더 났다.
하나님께로부터 얻을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분께서 도우실 수 있다. 그분께서 은혜와 하늘의 지혜를 주실 수 있다.
그대가 믿음으로 구하기만 한다면, 그대는 받을 것이다. 그러자면 그대는 깨어 기도해야 한다.
깨어라, 기도하라, 일하라. 이것이 우리의 경구가 되어야 한다.
(교회증언 2권 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