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side the forest : 2025. 2. 1
산은 보는 사람에 따라 모습이 변한다 합니다(‘산이 변해? 그럴 리가..?’ 누군가 이렇게 반문 할 수 있으니 다시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누가 언제 어느 쪽에서, 어느 곳을 보느냐에 따라 산의 모습은 천차만별일 테니, 그냥 산이 변한다고 표현함이 쉬웠을 테죠.
오늘 내가 걷는 정맥-길이 낙동정맥 종주-길 중에 제일 편안하고 좋은 길이다? 그 좋다함은 빼어난 풍광과 만날 수 있음도 포함일겁니다. 저는 늘 ‘역 산행’의 의미를 이렇게 부여해봅니다.
‘비탐’이기 때문에 피해(?) 가야한다? 이런 현실적 비애(?) 보담은 쫌 더 그럴듯하진 않을까? 해서인데요. 헌데, 아쉽게도 오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역 산행’은 실낱같은 바람을 뒤로하고 완전 죽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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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경도와 후미대원의 트랭글 기록(2025. 2. 1)
피나무재-황장재 27km, 11시간대를 예상했으나 현실은 후미기준 12시간 30여분, 헤드랜턴에 의존해 날머리를 더듬어 하산해야 할 정도였으니, 예상은 한참을 빗나갔습니다.
중 상급정도의 난이도? 맞습니다. 날 좋은날, 혹은 진달래 흐드러진 다거나 단풍철에 걸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 겁니다. 헌데 설 연휴 기간 내려쌓인 눈과 하루 종일 오락가락 쌓인 눈에 더해지는 눈발은 안개와 함께 장막을 두릅니다.
가시거리? 그런 거 없습니다. 당장 눈앞에 가고 있는 동료 산-꾼의 모습마저 감추는 지경, 칼 능선에 쌓인 눈, 깊이를 가늠키 어려운 계곡은 아찔하다 못해 어지럼증까지 부릅니다.
별바위(745봉) 직등코스를 우회해서 오르고 있는 대원들 모습과 직등에 성공한 단 한사람 대원의 모습(봄이, 2025. 2. 1)
된비알의 연속, 구르는 돌을 피해 대원들 간엔 안전거리를 둬야 했습니다.
745봉으로 불리는 별바위(위 예상경로도 속 동그라미부분입니다), 미처 헤드랜턴을 거두기도 전에 만났습니다. 40cm 가까이 쌓인 눈으로 직등은 위험천만, 우회로를 찾습니다. 된비알? 암만 그래도 한발 내딛고 두발 미끄러질 정도의 된비탈을 올라야합니다. 돌이 구르니 ‘돌 굴러가유~’ 사투리 금지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직등에 성공한 대원이 있음에 놀랐습니다.
혼자 서기도 버거운 별바위(745봉) 정상을 밟은 세리머니와 대원들 모습(2025. 2. 1)
이제 겨우 날이 밝았습니다. 하지만 날이 밝으나 마나 안개장막에 갇혀 앞뒤 구분이 어렵습니다. 그나마 비로 예보됐던 세우(細雨)가 짚신장수를 자처하는 대원님 덕에 가는 눈으로 내려 다행입니다.
이후 갓바위산을 지나는 대궐령, 왕거암(907.4m), 느즈미재, 먹구등, 대둔산(905m) 까지, 근 20여 km를 된비알 아니면 종아리까지 쌓인 눈을 밟는 건 기본, 칼 능선에 끝 모를 어두운 계곡, 나무에 달라붙는 눈의 무게 만큼에 짓눌리다시피 걸었습니다.
피나무재와 대둔산 하산-길에 만나는 출입금지 입간판(제로, 2025. 2. 1)
출입금지? ‘그럼 우리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네!^^’ 꼭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이제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정맥-길 대부분이 그렇더군요. 가지 말라는 표식, 혹은 ‘위험지역’ 표지판들 역시 수많은 길안내 시그널들과 매일반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대둔산(905m) 정상을 찍고 하산-길에 접어들고 나니, 거짓말처럼 눈발이 그쳤습니다. 이제 불과 5km 남짓? 오르내림 또한 가벼워 질라나? ㅎㅎ,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미 백두대간-길이나 여타 정맥-길에서 수없이 경험해봤으면서도 똑같은 꿈을 꿉니다.
산-길은 불과 500m를 남겨두고도 산은 또 나타납니다. 오르내림은 약하다? 그럴 수는 있겠습니다만, 20여 km를 걸어 왔으니, 지치고 힘든 상황에선 야트막한 동산도 철갑을 두른 별바위(745봉)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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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에서 만나는 반가운 시그널들(제로, 2025. 2. 1)
앞서 얘기한 ‘산은 보는 사람에 따라 모습이 변한다.’ 비슷한 예로 세상에 ‘명당(明堂)자리’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과도 같은 맥락일겁니다. 난이도 ‘중’ 만 되면 계절과 일기변화에 따라 ‘상’ 이상이 되는 건 기본일 테고요. 어떤 이는 난이도 ‘하’도 그날의 컨디션 저하로 ‘상’처럼 느꼈을 가능성도 있을 겁니다.
대간이든 정맥이든 우리가 걷는 산길은 그냥 지나치는 걸음 아니고, 앞선 산-꾼의 뒤를 그렇게 쫓아가는 걸음만도 아닐 겁니다. 우리 산-꾼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명당-길이라는 기분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흔쾌히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은 넋두리에 가까울 테니 이만 하겠습니다. 단, 난이도 ‘최 상’의 코스를 맛보게 했다는 점에선 낙동정맥 9구간, 정맥-길 걷는 산-꾼들에게는 무한한 자긍심을 주었던 구간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나머지 기록은 영상으로 담겠습니다.
첫댓글 주왕산구간
검마산 지날때 눈이 없어서 산방전에
훌쩍 넘어가려고 했는데
복병이 있었네요..
약간의 알바까지 28km가 넘는 눈길구간..
발자국 따라서 가다보니 대둔산 배찌
알림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
주왕산구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것 같네요..
모두 고생많으셨습니다..
특히 선두에서 길도 찾아주고 러셀해준
갈태, 해인님 너무 고맙습니다..
그래도 낙동정맥-길 가면서 추억(?) 하나 건졌다 싶네요.
나중에 보면 기억에 남는 산행, 오래도록 자긍심 느껴질 겁니다~^^
궂은날씨와 험한등로에 고생들 하셨네요 대단들 하십니다 ㅎ
알고도 가고, 모르고도 가고..ㅎ
어쨌든 속았다는 기분은 없습니다,
홍상기님 이제 겨울잠 깨고 기동 합시다~^^
산악인의 선서에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는 말이 낙동정맥 9 구간을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고되었으나 뿌듯한 만큼 단 잠으로 피로를 씻었습니다.
봄을 맞는 새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합니다.
입춘에 '새 봄 큰 기운, 좋은 일 가득'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한 산님들 고맙습니다^^
거듭되는 산행ᆢ
무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