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부처님 표현한 시각적 상징들
불상 조성하며 도상의궤 등장해
지도론·열반경 등 경전 명시된
32상 80종호 통해 부처님 표현
다양한 여래상은 手印으로 확인
그림①. 2세기에 조성된 간다라 양식의 불상
1세기 중반 그리스의 신상을 모방하여 최초로 붓다의 형상을 조각하게 되었다.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가 된 인도 서북부 간다라(Gandhara) 지방에서의 일이다. 오늘날은 파키스탄에 속하며 여기서 성행한 인도·그리스 혼합 양식의 불교미술(Art grecobouddhique)을 간다라 양식이라 한다. 그 특징은 그리스 로마의 조각상에서 같이 옷 주름의 융기선을 입체적으로 처리하는 등 사실적인 표현에 있다.(그림①) 이에 자극을 받아 갠지스강 중심의 인도 중부지방서는 순수한 인도양식의 불상 조각이 이루어졌는데, 이를 마투라(Mathura)양식의 불교미술이라 한다.(그림②)
그렇다면 초기 불상의 조각은 어떤 근거로서 이뤄졌을까? 그것도 불멸 후 500~600년 이후의 일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붓다의 자태를 보통사람의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음으로 초인적이고 존엄함에 대한 가시적인 상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도상의궤(圖像儀軌), 32상 80종호다. 이를 바탕으로 초인적이고 존엄한 붓다의 자태를 시각화하고자 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지도론〉, 〈열반경〉, 〈무량의경〉 등에서 ‘32상 80종호’를 명시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붓다의 32상은 이후 불상을 제작하거나 불화를 그리는 데 있어서 불변의 원칙이 됐으며 거기에는 종교적 이상이 숨겨져 있다.
불상의 형태나 양식의 특징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도 그것은 시대양식의 변화와 상관없이 어느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32상은 붓다에게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이후 보살에도 적용하게 됨으로써 이는 불보살이 필히 갖춰야 할 신체적 특징이 되었다. 이와 같은 32상에 대해서는 여러 경전에 기재돼있으며 다소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동소이하고 〈지도론(智度論)〉 88법계에 의거하면 다음과 같다.
림②. 2세기 전반에 조성된 마투라 양식의 불상(킴벨미술관 소장)
붓다의 32상 80종호
1.족안평상 2.천폭륜상 3.수지섬장상 4.수지유연상 5.수족만망상 6.족흔만족상 7.족부고호상 8.천여록왕상 9.수과슬상 10.마음장상 11.신종광상 12.모공생청색상퓨 13.신모상비상 14.신금색상 15.상광일장상 16.피부세활상. 17.칠처평만상 18.양액만상 19.신여사자상 20.신단직상 21.견원만상 22.40치상 23.치백제밀상 24.치아백정상 25.협여사자상 26.인중진액득상미상 27.광장설상 28.범음심원상 29.안색여감청색상 30.안첩여우왕상 31.미간백호상 32.정성육개상
기타 경전에서는 여기에 더해 “혀가 붉다” “가슴에 만(卍)자가 그려져있다” 등 32상에 80종호를 첨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이 32상을 경전의 내용대로만 이해하지 않고 이를 우리 현실의 인식체계로 살펴본다면 몇 가지 특이한 점을 밝혀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수족만망상’이다. 아마도 초기 석재로 불상을 조각하면 재질의 특성상 손가락, 발가락을 하나하나 갈라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손·발가락을 붙여서 조성하고는 “붓다의 손 발가락 사이에는 마치 오리처럼 막으로 붙어있다”고 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오늘날 조각에서도 손발의 표현을 그렇게 붙여서 제작하고 있지 않은가?
32상은 일목요연한 상이며 80종호는 32상보다 모습을 더 구체적으로 세분한 것이다. 그래서 수상(隨相)·소상(小相) 등으로 나누어 상세히 설명한 것인데, 부처님의 모습뿐 아니라 성격·음성·행동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다.
이 32상 80종호는 모든 부처님에 적용되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래서 용모(容貌)와 신체적 특징만으로는 어느 부처님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붓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은 불교의 교주임으로 모든 여래상의 제작은 석가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몸에는 화려한 의상을 입거나 장식을 하고 있지 않으며 다만 간단한 옷과 가사를 걸칠 뿐이다. 비록 ‘수행석가상’ 등에서는 발우나 석장(錫杖)을 들기도 하지만 그 밖의 다른 지물(持物)은 들지 않는다.
‘설법상’은 붓다가 성도 후 여러 나라를 순력하면서 설법 중생교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초전법륜(初轉法輪)은 사르나트(Sarnath) 즉, 녹야원(鹿野苑)에서 교진여(몐陳如) 등 5비구에게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였다. 불교미술에는 붓다의 ‘탁발수행상’이나 ‘설법도’가 많은데, 붓다의 중생교화를 위한 설법장면을 형상화한 이 ‘석가여래상’이 일반적인 예배대상의 불상이 되었다.
붓다의 五印
붓다의 옷차림새는 싯달타 태자 출가 당시의 모습으로 하반신은 치마, 상반신은 견의(肩衣) 즉, 가사(袈裟)을 걸치고 그 위에 대의(大衣)를 둘렀으며 발은 맨발이다. 착의의 형식으로는 두 어깨를 다 덮는 통견(通肩)과 우측 어깨를 드러내는 편단우견(偏袒右肩)의 2가지가 있다. 이 또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여래형(如來形)의 형태에서는 다 같으므로 식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두 손의 동작인 수인(手印) 즉, 인상(印相)을 통해서 구분한다. 모든 부처님에게는 각기 다른 손동작의 엄격한 규정이 정해져 있어 상호 혼란을 방지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손의 위치나 손가락의 구부림 등을 통해서 어느 부처님인지 구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상은 바로 붓다가 설법할 때, 그때, 그때 각기 다른 손동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도 남과 대화를 나누거나 대중 앞에서 연설할 때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손짓을 하며 말하지 않는가?
인상의 의의는 현교(顯敎)와 밀교(密敎)는 서로 다른 차이를 가지고 있는데, 현교에서는 인상을 표식(標識) 즉,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 ‘여원(與願)’혹은 ‘공덕(功德)’의 표시로 보고 있다. 이는 또한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의 대외적 표현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인상의 유래 역시 부처님의 특정 행위의 자태에서 연유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여래상 중심의 5인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선정인(禪定印): 정인(定印)이라고도 하며 양손의 손바닥을 중첩하여 부좌(赴坐)위에 올 려 놓고 있다. 이는 붓다가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에 든 모습이다.
○시무외인(施無畏印): 왼손을 어깨 높이까지 들어 올려 다섯 손가락을 펴 세우고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는 자세다. 붓다가 설법하면서 중생에게 두려움을 가지지 말고 안심하라는 자태이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오른손을 펴서 오른쪽 무릎을 감싸고 손가락은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이다. 이 역시 붓다가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마군중의 항복을 받을 때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경주 석굴암 본존불이 바로 이 자세이다.
○전법륜인(轉法輪印): 설법인(說法印)이라고도 하는데, 붓다가 녹야원에서의 초전법륜,설법장면의 손모양이다. 이 손 모양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지방에 따라 서로 다른 차이가 있다. 인도에서 최고 오래된 불상의 설법상은 왼손은 가사의 끝단을 잡고 오른손을 들고 있는데, 이는 4, 5세기에 유행한 형상으로 중국에는 북위시대 전해졌다. 그 밖의 다른 모습은 두 손을 가슴 높이로 올려 오른손을 밖으로 향하면서 엄지와 식지(食指)을 서로 맞대어 원을 형성하고 왼손은 펴서 위를 향하며 두 손가락이 오른손 손목에 닿고 있는 손 모양이다.
○여원인(與願印): 시원인(施願印)이라고도 하며 왼손을 내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는 손 모양이다. 이는 불, 보살이 중생이 소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준다는 수인으로 시여(施與) 즉, ‘베품’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상에서 설명한 석가상을 중심으로 나타난 5인은 이후 현교상(顯敎像)에 응용되었으며, 후대에 이르면서 밀교의 성행과 함께 힌두교에서도 사용되면서 그 전개가 갈수록 복잡해졌다. 이런 여러 가지 인상에 숨겨져 있는 의미는 곧 복잡한 정신 내용을 상징적 표현하고 있음이다. 그러므로 불교미술을 연구하거나 이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인상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간단히 말해서 ‘인(印)’은 상징적 손 모양으로 ‘손가락의 언어’이다. 불상의 아름다움은 다채로운 손 모양에서 찾아지며, 우리가 실제로 접하는 불교미술 걸작이 바로 그러하지 않은가? 손의 자세와 손가락의 형태는 철리(哲理)를 표시하고 있는데, 이는 고대 인도인의 지혜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또한 상징의 예술이라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