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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의식 혁명 원문보기 글쓴이: Danbi
8장 몸 (The Body}
"몸은 사랑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랑은 몸을 <비난>{정죄 condemn}하지 않고 신의 아들이 만든 것을 존중하면서,
그것을 자애롭게 사용하여 신의 아들을 <환상>{허상 illusions}에서 구할 수 있다."
8. 죽음과 윤회 (Death and Reincarnation}
"죽음이란 건 없다. 신의 아들은 자유롭다."27
『기적수업』은 태어남도 시작이 아닌 계속이고, 죽음 또한 끝이 아닌 계속이라고 말한다.28 말하자면 삶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그러했고, 언제나 그러할 것이다. 육화肉化{physical incarnation}는 생명이 취하는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일 뿐이다.}
『기적수업』은 위대한 빛{the Great Rays}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 개념은 다른 형이상학의 가르침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위대한 빛이란 우리 각자의 내면에서 발산되는 에너지층들{에너지의 선線들인데}, 우리의 신체 감각{감각들}으로는 <인식>{지각}할 수 없는 미묘한 <차원들에 기반한>{수준들의} 것이다. 우리의 신체 감각{들}은 우리의 <기존>{현재 믿고 있는} <믿음>{신념 belief}체계를 반영하는데, 우리의 <믿음>{신념}체계가 <확장되면>{확장됨에 따라} 우리의 감각{들}도 <확장된다.>{확장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신체감각으로도> 위대한 빛을 {물리적으로 physically} <인식>{지각}하게 될 때가 <앞으로> 올 것이다. 지금도 오라{auras}를 보거나 하는 사람들은 이미 이 과정을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석가모니나 예수나 여타 깨달은 선각자들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머리에 후광이 있거나 가슴에서 뻗어 나오는 빛살 선들이 있다.
이 빛살과 에너지가 우리의 생명력이다. 몸은 일시적인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을 우리가 아직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몸이 죽으면 그 사람도 죽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지구는 평평해서 배가 지평선에 이르면, 폭포에서 떨어지듯 지구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죽음에 대한 지금 우리의 <인식>{지각}도 그렇게 불합리하고 무지하고 낡아빠졌다고 여길, 그런 때가 올 것이다. 몸이 <죽어도>{죽을 때} 영은 죽지 않는다. <몸이 죽는 건>{신체적인 죽음은 한 벌의} 옷을 벗는 것과 같다.
에고에게는 <몸으로>{물리적으로 physically} <인식>{지각}할 수 있는 것만이 <현실>{실재 reality}이다. 하지만 원자나 양자나 바이러스나 세포처럼 우리가 그 존재를 알고 있는 것들 중에도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과학자들은 <인식되는 모든 현실 밑에 놓인>{지각되는 모든 현실reality 너머에 있는} <단일성>{하나의 합일 a oneness}을 <인식>{재인지 recognize}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 <단일성>{합일}이 신이고, 그 안에 우리 존재가 놓여 있다.
육화는 학교 체험이어서, <영혼은>{혼들은} 자신이 배워야 할 것을 배우기 위해 이 학교에 온다. 그것은 텔레비전의 채널을 맞추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 모두가 4번 채널에 맞춰져 있다고 해보자. 누군가가 죽으면, 그 사람은 더 이상 4번 채널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방송에 나오지 않는 건 아니다. 그 사람은 이제 7번이나 8번 채널에서 나온다. 우리가 <그 채널>{유선 방송}을 볼 수 있는 설비를 갖췄든 아니든 <다른 방송국들도 존재하니까 말이다.>{유선 방송이 존재한다.} 우리가 <몸으로>{물리적으로 physically} <인식>{지각}할 수 없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하려는 건 에고의 오만에 불과하다.
죽어가는 사람의 정수리 쪽에서 빛이 빠져나가는 걸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육신에서 잠시 벗어나는 ‘임사{臨死 near-death} 체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전에, 비행기 추돌사고를 당했던 한 젊은 여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녀는 그 당신 몸의 피를 반 이상 잃을 만큼 과다출혈 상태였고, 다리도 거의 잘린 상태였다고 한다.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전 죽었다가 다시 돌아왔어요. 그건 정말 달콤하고 따뜻한 느낌이었죠. 포근하기 그지없는 엄마의 사랑처럼요. 하지만 전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아버지를 떠올리니, 내가 죽으면 아버지가 도저히 견디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를 악물고 싸워서 돌아왔던 거예요.
이후로 전 장례식장에서 더 이상 울지 않아요. 여기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울 수도 있지만, 죽음 사람들은 멋진 곳에 가 있는 걸 알거든요."
<위대한 빛을 우리의 신체감각으로도 인식할 수 있게 되면 몸은 우리의 참나 앞에 서 있는 단순한 그림자로 여겨질 것이다.>{우리의 신체감각에 의해 위대한 빛이 접수(등록)되면 몸은 단지 우리의 참나 앞에 있는 그림자 같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누가 죽었다고 해도 그건 그림자가 사라졌다는 식으로 들릴 테고 말이다.>{누가 죽었다는 말을 우리가 들을 때, 그건 그림자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일 것이다.} <또 그렇게 되면 죽으면 관계가 끝나는 것으로 인식되지도 않을 것이다.>{더 이상 죽음은 관계의 종식(끝)으로 지각되지 않을 것이다.} 예수가 ‘죽음은 <절대>{결코} 적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건 ‘죽음은 <절대>{결코} 우리에게 적으로 <인식>{지각}되지 않을 것이다’란 뜻이다. 사실 문제는 죽음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우리들 중 누구는 그 시각을 9시 30분으로 택할 것이고, 또 누구는 10시 7분으로 택할 테지만, 우리 모두가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죽음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것.>{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치유하기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육신{몸 body} 지향에서 <영혼>{영 spirit} 지향으로 바뀌기{transformation 변모/변환}하기 위한 초석이다.
삶{생명 life}이란 결코 끝나지 않는 책과 같다. 각각의 장章은 닫히지만, 책 자체는 그렇지 않듯이. 한 육화가 끝나는 건, 한 장이 끝나면서 그 다음 장의 시작을 설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예전에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와{의} <나와의>{내} 관계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좋아졌어>{오직 개선되었을(좋아졌을) 뿐이야}"라고.
『기적수업』은 육신이 없어지고 나서도 교감{의사소통}은 멈추지 않는다고 말한다. 참된 교감{의사소통}은 <육체로>{물리적으로 physically} 말하거나 듣는 것 이상의 것에 <근거하기 때문이다.>{의거한다.} 누가 죽으면 우리는 그 전과는 다르게 그 사람과 이야기해야 하지만, 영원한 생명의 가능성에 <문을 열 때>{열려 있을 때}, 우리 마음은 초超육신적{초물리적 transphysical} 대화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
편지 쓰기는 그런 교감{의사소통}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먼저 우리가 죽은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다음에는 그 사람이 우리에게 보내는 답장을 써보는 것이다. 이런 연습의 핵심은 사람들의 마음을 키워, 에고가 우리에게 통상 허용하는 것보다 더 큰 가능성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다. 우리 추모 지원 그룹 사람들은 죽은 사람 꿈을 꿨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죽은’ 이가 꿈에 나타나면,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은 "당신이 여기 있다니! 당신은 죽었어"라고 말한다. 그러면 고인이 "아{Oh}, <맞아>"하면서 꿈도 끝난다. {그 꿈은} 계속<해>{되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지 못한 것이다.
편지를 쓰거나 ‘죽음 너머의 삶’의 가능성에 우리를 열게 만드는 대화나 경험을 하고 나면, 우리 스스로 설정한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넓힐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꿈이나 여타 감정 체험들이 심리적 결박에서 풀려난다. 누군가가 죽으면, 우리는 흔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현실이 아닌 것 같아. 그 사람은 아직 여기에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한다. 이건 사실 그들이 아직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저 세상에 대해 에고는 "그건 그냥 네 상상"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냥 상상"인 쪽은 오히려 죽음이다. 신이 창조한 대로의 <진리>{진실 truth}는,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우리 또한 가슴 깊은 곳에서는 이것이 진실임을 안다.
윤회란 무엇인가? 다음은 『수업』의 교사 매뉴얼{교사용 편람 Manual for Teachers} <부분>에서 윤회를 이야기한 장에서 인용한 <대목>{것}이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윤회는 불가능하다. <과거나 미래란 건>{과거나 미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않으며,} <몸으로> 한 번 태어나든 여러 번 태어나든,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몸으로 태어난다는 관념(idea 생각/발상/상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렇게 보면>{그렇다면} 윤회는 어떤 <참된>{진정한 real 실재의/진짜의} 의미에서도 참{진실 true}일 수 없다………..'그 개념'이 생명{life 삶}의 영원성<을 더 강조하는 데 이용된다면>{의 재인지再認知(recognition)를 강화하는 데 사용된다면}, <유용할 수도 있지만>{실로 유익(helpful)하다.}……..다른 많은 믿음들(beliefs)처럼 <윤회라는 관념 또한 심히>{그것도 호되게} 오용될 수 있다. <그런 오용은 잘 돼봤자, 흔히 과거에 대한 자부심과 집착을 동반하기 쉽고,>{적어도 그런 오용은 과거에 대한 선점先占된 생각(preoccupation 사로잡힘)과, 아마도 자만(pride)을 제공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타성에 젖어> 현재를 {나태하게} 살게 한다………<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보는 건 언제나 약간의 위험이 따른다.>{과거를 두고(과거의 견지에서) 현재를 보는 것에는 언제나 어떤 위험이 있다.} <반면에 삶과 몸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발상을 북돋우는 견해는 모두 언제나 웬만큼 유익하다.>{생명과 몸이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관념(idea 상념)을 강화하는 어떤 생각에든지 언제나 어떤 선善(좋은 점)이 있다.}"29
{수정된 번역문만을 다시 씀}
"궁극적인 의미에서 윤회는 불가능하다. 과거나 미래는 존재하지 않으며, 한 번 태어나든 여러 번 태어나든 몸으로 태어난다는 관념(idea 생각/발상/상념)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윤회는 어떤 진정한(real 실재의/진짜의) 의미에서도 진실(true 참)일 수 없다......... '그 개념'이 생명{life 삶}의 영원성의 재인지再認知(recognition 재인)를 강화하는 데 사용된다면, 실로 유익(helpful)하다........ 다른 많은 믿음들(beliefs)처럼 그것도 호되게 오용될 수 있다. 적어도, 그런 오용은 과거에 대한 선점先占된 생각(preoccupation 사로잡힘)과 아마도 자만(pride)을 제공한다. 최악의 경우, 현재를 나태하게 살게 한다.......... 과거를 두고(과거의 견지에서) 현재를 보는 것에는 언제나 어떤 위험이 있다. 생명과 몸이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관념(idea 상념)을 강화하는 어떤 생각에든지 언제나 어떤 선善(좋은 점)이 있다."
그렇다면 {기술技術적으로 technically 학술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식의 <기계론적> 윤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직선적인 시간{linear time}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우리가 전생{들}이나 후생{들}을 가진다 해도, 그 모두가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또한} 우리는 {어느 한} 육신 생애의 체험과는 <별개인>{별도의 saparate} 생명을 <가진다는>{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편이 좋다.>{상기하는 것이 유익하다.} 『기적수업』에 교리{doctrine} 같은 건 없다. 『기적수업』을 잘 배운 학생이라도 윤회를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다. ‘의미 있는 단 하나의 질문은 어떤 개념이 <유용한가>{유익한가 helpful 도움 되는가} 아닌가이다.’ 『기적수업』은 <어떤 발상에 대한 견해와 그것을 삶에서 활용하는 문제에 대한 안내를>{우리가 어떤 관념과 그 용도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 자신의 내면 교사에게<서> {안내를} 구하라고 말한다.
깨달은 세상이라 해도 죽을 때는 여전히 육신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경험은 대단히 달라질 것이다. 『기적수업』의 부속편이 "기도의 노래{The Song of Prayer}"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친절하게도 신의 자녀가 신을 향해가도록 도와주는 육신의 죽음은 마땅히 즐겁고 평온하게 이루어지는 고요한 선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육신이 제공한 온갖 봉사에 감사하게 된다. 하지만 한계 가득한 세상을 걸어야 할 필요, 숨겨져 있다가 사랑에 찬 섬광들 속에서나 분명히 드러나는 그리스도에 도달할 필요에 대해서도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차양 막 없이, 다시 우러러보는 방법을 배운 빛 속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죽음이라 부르지만, 실상 그것은 자유다. 이제 죽음은 내켜 하지 않는 육신을 고통스럽게 짓누르고 들어오는 형태가 아니라 풀려남을 가만히 반기는 형태로 찾아온다. 참된 치유가 이루어졌다면, 죽음은 기쁜 마음으로 행해지고 즐겁게 끝난 노동에서 잠시 쉬는 형태로 오게 된다. 이제 우리는 평온한 마음으로 더 자유로운 공기, 더 부드러운 대기 쪽으로 간다. 그곳에서는 우리가 준 선물들이 우리를 위해 보관돼 있는 것을 보기 어렵지 않다. {이는} 이제 그리스도가 더 <명확해졌기 때문이다.>{분명함이며;} 그의 비전vision이 <우리를>{우리 안에} 더 굳건히 <지탱해주기 때문이다.>{지탱하였음이며;} <신의 말인 그의 육성이>{그의 목소리, 신의 말씀이} 더 <분명하게>{확실히} 우리 자신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되었음이다}.
더 고귀한 기도로의 이 온유한 여정{passage 통행/통과}, <속세>{지상의} 방식들에 대한 자상한 용서는{용서의 여정은} 감사를 가지고서만 받아들여질{받아질 received} 수 있다."
예전에 고대 일본 종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축하하고 태어나면 애도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이것은 무한한 영을 억지로 유한하게 응집시킨 게 탄생이라면, 죽음은 모든 한계에서 풀려나 신의 자비로 주어지는 무궁무진한 가능성대로 자유롭게 산다는 뜻으로 이해가 된다.
생명은 육신{의] 삶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에너지의 무한 확장이고, 수많은 차원에서 사랑이 연속되는 것이며, 신체 형상과 무관한 심리적 영적 체험이다. 우리는 영원 이상으로 살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육신의 삶이 중요한 공부인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지옥에서 세상을 구원할 기회다. "{친애하는} 하느님{하나님 God (Oneness 하나임)}, 당신의 의지가{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8장 몸----8. 죽음과 윤회-----
기적수업 원문
27. "There is no death. The Son of God is free." {학생용 학습서 교과163 제목}
28. birth is not a beginning but a continuation, and death is not an end but a continuation. {교재 5장 4절 2단 4문}
29. "In the ultimate sense, reincarnation is impossible. There is no past or future, and the idea of birth into a body has no meaning either once or many times. Reincarnation cannot, then, be true in any real sense...... If [the concept] is used to strengthen the recognition of the eternal nature of life, it is helpful indeed..... Like many other beliefs, it can be bitterly misused. At least, such misuse offers preoccupation and perhaps pride in the past. At worst, it induces inertia in the present..... There is always some risk in seeling the present in terms of the past. There is always some good in any thought which strengthens the idea that life and body are not the same." {교사용 편람 24장 1단 1-3문 / 1단 6문 / 1단 8-10문 / 2단 7-8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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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밑줄 색글자: Danbi 수정/첨가.
< > Danbi 삭제.
그 외:
[1]『기적수업』은 육신이 없어지고 나서도 교감{의사소통}은 멈추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적수업 원문: 교재 15장 11절 7단 2-3문.
[2] ‘의미 있는 단 하나의 질문은 어떤 개념이 <유용한가>{유익한가 helpful 도움 되는가} 아닌가이다.’ -- 기적수업 원문: 교사용 편람 24장 1단 4문.
[3] 저 세상에 대해 에고는 "그건 그냥 네 상상"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냥 상상"인 쪽은 오히려 죽음이다. -- 기적수업 원문: 교사용 편람 27장 5단 1문.
[4] "기도의 노래{The Song of Prayer}" 인용 원문: 3장 Healing(치유), 2절 False versus True Healing(거짓된 치유 대 참된 치유), 2단 전체 / 3단 전체 / 4단 1문.
"This is what death should be; a quiet choice, made joyfully and with a sense of peace, because the body has been kindly used to help the Son of God along the way he goes to God. We thank the body, then, for all the service it has given us. But we are thankful, too, the need is done to walk the world of limits, and to reach the Christ in hidden form and clearly seen at most in lovely flashes. Now we can behold Him without blinders, in the light that we have earned to look upon again.
We call it death, but it is liberty. It does not come in forms that seem to be thrust down in pain upon unwilling flesh, but as a gentle welcome to release. If there has been true healing, this can be the form in which death comes when it is time to rest a while from labor gladly done and gladly ended. Now we go in peace to freer air and gentler climate, where it is not hard to see the gifts we gave were saved for us. For Christ is clearer now; His vision more sustained in us; His Voice, the Word of God, more certainly our own.
This gentle passage to a higher prayer, a kind forgiveness of the ways of earth, can only be received with thankful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