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이 머물렀던 나날들(2)
정현수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냥 기뻤던 삶을 누구나 조금은 경험했을 것이다. 조심스레 말하지만 내 삶이 조금은 소박하기에 그들과 함께 할 때 순수하고 한없이 맑은 산속의 덤벙에 내 몸을 맡기는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이었다. 아마 그런 게 기쁨이 아니겠는가? 경험상 처음인 그들과 함께 했던 그 일이 적당히 흥미를 돋우며 구순하게 나에게 다가와 대단하고 특별한 기회를 주기도 했었다. 매일매일이 행복이었고 멋진 삶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준이.
고난과 역경 속에서 모질게 자신을 내던져 그 어려움 속에서 빠져나와 그것들의 뒤안길에서 마음을 쓸어내리며 이제는 자기 자리에 안주한 듯, 그늘지지 아니한 편안한 얼굴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휩쓸리지 아니하고 해탈한, 모든 것에서도 무관심하고 오직 묵묵히 자기 일에만 열중하여 자기가 해야 할 가치를 아는 듯하다. 가끔 불만이나 아쉬움이 있으면 솔직히 자기감정을 드러내어 대화를 유도하고 해결하여 자기감정에서 해방된다. 준이 만의 경험으로 준비된 특이한 삶의 방법인 것 같다. 그는 항상 기분이 업된 듯 흥얼거리고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가득하다. 그런 평온하고 사랑스러운 그를 볼 때 내 마음에도 잔잔한 평화가 내린다.
"큰 키에 듬직한 내 친구 빅 보이 준아 세상이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은 아니란다. 어려움도, 희망도, 다 네 마음속에 있단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꾸준한 인내, 사랑, 의지를 잃지 말기를"
축구를 좋아하는 몸이 날렵한 상일.
30 중반의 왜소한 체격이지만 대답도 시원하고 몸놀림도 재빠르다. 중요 축구 경기 일정은 줄줄 꽤고 있고 아버지와 가끔 축구를 한다고 자랑이다. 가족 간의 화목을 강조하는 그의 표정에서 아린 아픔이 있는 듯, 씁쓸한 아쉬움이 보인다. 자칫 침울에 빠지기도 하고 어설픈 얼굴로 침묵하는 모습에서 슬픈 고요가 보인다. 그가 무얼 원하는지 알 것 같다. 제발 그가 원하는 게 이루어지길 빌 뿐이다. 그러나 날쌘돌이 마냥 자기 일에 대해선 향상 적극적이고 꾸준하다.
큰 눈망울이 티 없이 맑고 일부러 만들어진 듯한 예쁜 미소를 가진 가희.
커피를 너무 즐기는 그녀는 저쪽 그리움 속에서 헤매는 것 같은 아련함에 빠져 있다. 혼자서 그 특유의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행복에 겨워 일하는 모습이 마냥 즐거워 보인다. 그러다 보면 가희가 하는 일에 실수가 생긴다. 그걸 지적해 주면 "나는 왜 그러지 친구들은 다 잘 하는데 난 왜 그럴까? 참! 이상하다. 왜 그러지?" 하며 자책하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고 귀엽다. 태고 이전의 때묻지 않은 아무 가식 없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가희야 커피 좀 줄이렴, 건강을 위해서 꼭! 알았지.'
금방이라도 울음보를 터트릴 것 같은 보화.
보화는 마음이 약해서 별일 아닌 것이나 말에도 금방 상처를 받고 잔뜩 얼굴을 찡그린다. 그녀를 달래지 않으면 그 분위기는 오래 지속된다. 못 이기는 척 편을 들어줘야 한다. 그런 그녀가 집에서 만들어진 행복사나 또는 휴대폰 속에 저장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조카의 사진 등을 보여주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물들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이다.
항상 정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규성.
그는 할머니에게서 자란 것 같다. 내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 항상 외로움과 같이 하듯 조금은 경직된 모습과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침울은 우울의 전초에 있는 듯했었다. 그런 그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지난가을에 삼촌이 결혼하여 작은엄마가 생긴 것이다. 차츰 밝아지는 그의 얼굴에 웃음이 많아지고 이제는 외로움을 못 느끼 듯 자신감에 차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가족이 된 숙모에 대한 대단한 기대가 그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남자가 아닌 여자 즉, 막연히 느낄 수 있는 엄마라는 개체가 그를 변화 시켰다. 모성을 아쉬워했을까? 규성은 늘 싱글벙글이었고 나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작은엄마의 근황이나 휴대폰 속의 사진 등을 보여주면서 자랑하며 뿌듯해하는 것을 봤다. 우리가 지켜야 하고 함께 아우르는 것 정(情), 그것은 우리의 기대인 경이로운 무한한 사랑이라는 것을....
두통이니까 사리돈이나 먹고 빈혈이니까 철분 영양제나 섭취하는 그러한 편함을 추구하는 평범한 공식은 우리 정상인의 모습에선 흔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흔한 공식을 모른다. 누군가 이끌어 주고 가족은 보듬어 주어야만 한 발짝을 내디딜 수가 있다. 타고난 것에서 벗어나고 극복하기 어렵지만 어떻게 하든 우리와 휩쓸려 아무 구애와 조건 없이 어울리게 해야 한다. 그 삶은 그들과 우리가 동등한 입장에서 더 높고 이상적으로 부합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 있는 행복한 삶이다.
점잖고 절제가 확실한 내가 땡큐 할 때 유어 ~ 웰컴 하며 화답하는 지후.
그는 꼭 필요한 말만 한다. 군더더기 없이 보태지도 빼지도 않은 말을 차분히 생각하며 말하듯 천천히 느릿느릿 말할 때 답답하기도 하지만 정직한 자기 느낌만을 말한다. 점심 먹을 때 그의 식사량은 항상 일정하다. 내가 먹기에 두 숟갈이면 끝날 양이다. 소식으로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방법은 굳은 의지에서 오는 확고한 신념뿐인데 그는 한 번도 흐트러짐을 보인 적이 없다. 모든 모습에서 절제의 의지가 뛰어난 대단한 삶의 지략가다. 그 모든 것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가정에서의 방법론 제시도 있었겠지만 스스로의 삶의 터득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약간의 소심을 같이 하는 게 단점인 것 같다.
무언지 모르지만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는 나이가 제일 많은 부지런한 재만.
불혹의 나이를 지낸 그는 항상 나날을 쫓기듯 살아간다. 살아감에 생활을 위한 돈은 꼭 필요한 것이고 그걸 쓸려는 진정한 의도는 알고 돈을 쫓는지 알 수는 없지만 늘 바쁜 일상이다. 분명 많은 고생과 수고에 얻어지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부지런한 게 탓은 아니지만 기쁨과 축복이 있는 삶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진정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그를 좀먹는 안타까운 현실만이 그의 주변을 맴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의 무뚝뚝함이 항상 내 호의를 무시하고 멋쩍게 할 때가 많았다. 나와 친해지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시침 떼기, 엄지 공주 세화.
미워하고 싫어서 다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사랑하려고 하는 것처럼 친구들과 가벼운 다툼이 끊이지 않는 편이다. 그걸 알고 하는 것보다 아무 의식 없이 말하고 행하기 때문에 스스로 담담하다. 나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그녀의 생각, 행동, 뜻을 돌이킬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언제나 꾸준히, 세화도 그걸 알고 있다. 꼭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다. 다운증후군에 있는 세화는 친구들 보다 지능이 약간 우위이기 때문에 야단치기 보다 애정으로 끊임없는 대화로 이끌어 내야 한다.
겉을 보면 안까지 볼 수 있듯이 선한 모습에 마음이 천사인 (큰)은지.
그녀는 누구에게도 서슴없이 먼저 다가가는 편이다. 실제 우리 반의 부반장으로써 모든 일에 솔선수범이며 리더이고,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참뜻을 알고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애쓴다. 그런 그녀의 의지를 친구들은 잘 알리 없다. 그러나 항상 아무 일 없듯이 무던하게 지나쳐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끼 듯한다. 그녀는 친구들과 상생하고 용서하는 여백이 두텁다.
우리 반의 브레인 현규.
항상 별말 없이 조용하며 자기 일에 충실한 이 친구는 신장병을 앓고 있다. 그의 팔은 주사 자국으로 울퉁불퉁하고 왜소한 그의 몸은 오랜 투병 중에 있음을 말한다. 일주에 세 번은 신장 투석을 하고 있다. 그런 중에도 그는 일터의 모든 돌아가는 상황을 꽤 뚫듯 알고 있다. 일의 진척 사항이나 과정, 운영 등을 정확히 알고 있어 누구든 그의 의견이나 말을 따른다. 친구들 모두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현규, 그는 병 중이지만 조용하고 사색에 견디는 고행자의 표정과 닮은 것처럼 따뜻한 여운의 분위기만 남겨 논다.
나와 특별한 또 하나의 인연은 제과 반의 태진과 지연, 그 둘은 점심시간 후에 자주 날 찾아오곤 했다. 태진이가 알고 싶어 하는 북한 정세와 그에 따라 돌아가는 세계의 정치 상황, 전반적인 여러 지식에 목말라 있었다. 그의 처지를 아는 가족의 관심에 의해서 그와 일대일 토론(?)은 묘하게 자극되는 걸 느꼈고 여러 지식을 알고 싶어 하는 그와의 대화는 열렬했었다. 그런 태진이가 며칠 전에는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 왔다.
지연은 그야말로 똑 부러지는 똑순이다. 귀염이 있는 이 아가씨는 제과 출고를 책임진 절대 서두름이 없는 반듯한 친구다. 여기서 일하면서 꽤 큰돈을 모으고 결혼과 장래도 설계하는 다부진 모습이 있다. 그런 지연의 상쾌하고 싱싱한 모습에서 희망을 볼 수 있음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힘찬 나래를 볼 수 있음이다.
그들이 커 가고 나이를 먹으면서 나타나는 본성이나 거기에 맞춰진 행동은 이제는 극복하기 어렵지만 그들의 노력이나 학습된 지혜에서 모자란 것은 조금은 채워지고 부족한 것은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겐 가혹하지만 우리가 냉정함으로 봤을 때 우리 정상인도 무엇이든 다 같이 함께 할 때 공평함을 볼 수 없듯이 어쩔 도리 없이 그들도 사회의 일원으로써 삶에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사람들은 진실에 의해 세상에서 모든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어울리어 살아가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 진실은 인간의 견지에서 본다면 가장 소중한 의미이자 이상(理想)이라 했다. 그 진실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 게으르면 참 삶을 저버린 바보스러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것뿐이다. 부족한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은 자신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진정한 참 이상(理想), 그 삶, 여운이 남는 가치 있는 보람이고 삶인 것이다.
2014.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