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
-- 히피는 196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 LA 등지 청년층에서부터 시작된, 기성의 사회 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으로의 귀의 등을 주장하며 탈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국의 1960-1970년대 상황을 살펴보면, 베트남 전쟁 발발과, 존 F. 케네디의 암살, 맬컴 엑스 암살, 마틴 루터 킹 암살, 로스엔젤레스 흑인 폭동 등의 사건들이 일어났는데 이때 미국의 풍경은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에 미국의 청년층은 현 상황을 부정하고 평화를 사랑하면서 자연으로의 회귀를 외쳤다.
도덕과 이성보다는 자유로운 감성을 중시하고, 즐거움을 추구했다. 히피는 '좌파운동', '미국 시민권 운동'과 더불어 196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반문화 운동이다.
이들은 긴 머리에 맨발이나 샌들을 신고 다녔으며, 다양한 색깔의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또 마리화나나 LSD, 그 밖의 약물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상징이나 사상을 구체화시켰다. 특히 유명한 록 그룹 비틀즈는 노래로써 히피 운동의 확산을 도왔다. 특히나 1969년에 있었던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1960년대 청년 문화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침투하여 우리가 젊은 날에 장발이 유행했다.)
히피문화의 특징
기성사회의 성적 억압과 관습적 도덕을 해체함으로써 개방적인 성의 표현을 통해 친밀성과 이를 통한 새로운 공동체의 건설을 성취하려고 했다.(킨제이 보고서가 유명하다.) 이들은 60년대의 반전운동과는 다르다. 히피문화는 기존질서 체제를 정면으로 거부하기보다는 기성사회에 새로운 가치질서를 만들고자 하였다.
히피는 모두 외관상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백인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백인은 와스프라 하는 미국의 지배 집단에 해당되는 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 가정의 출신들인데, 이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안락한 삶을 살아가던 청년들이 기성세대의 자식들, 사회적 주류층이면서 동시에 중산층의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에 대항하여, 새로운 문화를 구축하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히피는 재조명 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일반적으로 모문화의 가치가 사회를 중요시하는데 비해 히피들은 자신, 자아를 중요시한다.
(조직보다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히피문화의 상징은 꽃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고, 부드럽고 비폭력적인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것은 대치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열정과 히피의 문화로는 사이키델릭 음악을 예로 들수 있는데, 이는 전율이나 환각상태를 느끼게 하고 유도하는 음악으로 알려져있다. 이것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사이키델릭은 어떤 기분 장르처럼 뚜렷한 구분점들 보다는 히피문화의 특성 그대로 자유분방한 형식을 추가한다.
또한 히피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으로는 우드스탁을 예로 들수 있는데, 이것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락 페스티발의 시초였으며,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모든 뮤지션들의 대거 출연과 40만명이 넘은 관객들로 당시 락 음악에 대한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당시 젊은 세대들이 가지고 있던 물질주의적이고 실리주의적인 기존체계에 대한 저항의식은 이 페스티발 기간동안 마리화나와 혼숙 등의 문제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3일동안 지속된 이 페스티발은 록뮤직 역사에서 하나의 전설이자 60년대 젊은이들의 저항의식의 표현이었다.
*WASP-와스프는 백인-앵글로 색슨 –신교로서 미국을 이끄는 중심세력이다.(지금도)
첫댓글 히피... 유럽의 유랑자 집시를 표방한...
미국의 떠돌이들인 줄 알았었는데 제 나름 문화를 가지고 있었군요...
그런데 왜 현재 사람들에겐 퇴폐의 무리들로 기억되는지... 참 궁금합니다... ㅎ... ^^*...
제 머리 속에 막연히 떠오르는 히피문화 이미지로는 장발, 수염, 마리화나
퇴폐행동 등입니다.
한때 가수들 중에서 그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합니다.
싸이키델릭한 곡을 만드신 신중현 작곡가는 음악만으로 사람 마음을 휘잡더군요.
신중현작곡가 덕택에 히피문화를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히피문화에 대해 요점을 잘 추려주시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