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 가득한 고려충신 신덕린의 서화(書畫)
통일뉴스 / 이 양 재, 애서(愛書)운동가 2024.08.05
- 고려충신 순은(醇隱)
고려 말의 충신이자 문신이었던 순은(醇隱) 신덕린(申德隣, 1330~1402경) 선생은 고령신씨 시조 신성용(申成用)의 5세손이며, 자는 불고(不孤), 호는 순은(醇隱)이다. 이름과 자는 『논어(論語)』의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에서 따왔다고 한다. ‘덕이 있으면 반드시 따르는 사람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는 뜻.
신덕린은 율정 윤택(尹澤, 1289~1370)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1347~1392),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 교은(郊隱) 정이오(鄭以吾, 1347~1434) 등과 더불어 고려말 '육은(六隱)'이라 불렸다.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신덕린은 12세에 즉위한 충정왕(忠定王, 재위 1349~1351)의 신뢰를 받던 신하였다. 시학(侍學), 전교령(典校令)을 지냈으며 1352년 충정왕이 강화(江華)로 쫓겨나자 함께 따라가 하직하고, 1348년 충정왕 사후에 벼슬을 사직하다. 다시 1366년, 공민왕의 부름을 받고 상경하여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검교관(檢校官)이 되었다. 그후 요승 신돈의 탄핵을 주장하다 파직되었으며, 그의 사후 재차 공민왕의 부름을 받고, 간의봉익대부(諫議奉翊大夫) 예의판서겸보문각제학(禮儀判書兼寶文閣提學)을 제수받는다.
신덕린은 고려에 정절을 지키려 두문동으로 들어간 '두문동(杜門洞) 72 현인(賢人)' 중 한 분으로, 마지막까지 고려에 충성을 다한 충의지사였다.
생전에 그는 충신이자 대학자인 목은 이색(李穡, 1328~1396)과도 매우 깊이 교유(交遊)하였다고 한다(목은보다 2살 아래였음). 신덕린을 생각하는 목은의 애틋한 글(憶申判書德麟)이 『목은집』제8권에 전하고 있다.
소년 시절엔 날마다 애써 서로 맞이하여 少年日日 苦相邀
잔뜩 취하고 깊이 읊어 짧은 노래 불렀는데 泥醉沈吟 放短謠
한가할 때의 초서는 풍우처럼 상쾌하였고 閑裏草書 風雨快
홀로 서있는 청수한 모습은 먼 해산에 있네 靜中柴立 海山遙
술동이는 그 언제나 따스한 봄을 더할런고 酒樽何日 添春暖
귀밑털은 지금에 날리는 눈발을 띄었다오. 鬢髮如今 帶雪飄
친구 중엔 유독 공만이 아직 건재하니 契友獨公 猶健在
늙은 목은 애타는 마음 정히 가련하여라. 可憐老牧 政心焦
훗날 이들의 후손은 다시 운명적으로 만난다. 목은의 증손은 저명한 사육신(死六臣)의 한 분인 이개(李塏)이고, 신덕린의 증손은 바로 신숙주(申叔舟)이다.
- 순은의 그림
순은(醇隱)은 서화에도 능했다. 그의 그림 작품 두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위 그림 참조).
그림 ① 「신덕린 필 산수도」(덕수 5060)는 세로 106.1cm 가로 39.4cm 크기의 중국산 선지(宣紙)에 그린 수묵화이다. 순은(純銀)의 묵서와 인흔이 두 과(二顆) 남아 있다.
그림② 「전 신덕린 필 산수도」(덕수 3791)는 세로 157.5cm 가로 38.2cm 크기이며, 날줄 씨줄을 듬성듬성하게 짠 들여다보이는 망사(繪絹, 網紗) 위에 아주 얇은 선지를 덧씌운 지본체(紙本體)에 그린 담채 수묵화이다. 이 작품은 수준이 상당하다는 점이 주목된다.
두 작품을 대비하여 보면 다소 이질적(異質的)이기까지 한다. 그려진 바탕도 다르고, 작품을 그릴 때의 표현법도 다르다.
그리고 두 작품은 모두 세로가 긴 작품이다. 그림에 종축(縱軸)으로 말렸을 때 나타나는 손상 흔적을 보면, 현재 두 작품은 펼쳐서 보관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족자(簇子)로 된 것으로 보이며, 보존 상태도 아주 양호하다.
- 그림① 「신덕린 필 산수도」
여기에 나타난 화법은 조선시대 전기간(全期間)에 보이는 화풍이다. 다만 그림의 됨됨이에서 적어도 15세기 이상으로 올라가는 그림이다.
그림 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 중심부에 보이는 초옥(草屋)과 사선으로 그려진 문이다. 봄을 그린 횡폭(橫幅)의 「몽유도원도」와 초겨울을 그린 종폭(縱幅)의 그림① 「신덕린 필 산수도」는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이 작품은 안견의 「몽유도원도」처럼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폐쇄된 산중에 초옥이 있는 모습이며, 초옥으로 이르는 길은 잔도(棧道)로 그리고 있다. 초옥 왼쪽에는 대나무를 그리고 있지만, 다른 나무들은 모두 잎을 떨군 늦가을의 정취(情趣)이다.
인적도 없이 문을 닫은 초옥, 심산유곡의 늦가을, 이 그림이 표현하는 쓸쓸함은 무엇일까? 그림① 「신덕린 필 산수도」에서는 몰락해 가는 고려의 운명을 보는 것 같다.
- 그림② 「전 신덕린 필 산수도」
이 그림은 관지나 소장인이 없다. 그러나 작품 수준은 그림①「신덕린 필 산수도」를 능가한다. 회화 격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그림이지만, 중국 원대의 산수화에서 보이는 그림들과는 다른 필법을 보이고 있다. 이 작품에 나타난 수지법이나 준법 역시 고려말 조선초에 유행했던 것이다. 최소한 조선초에는 이러한 화풍과 구도가 유행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이 작품에는 두 인물이 그려져 있다. 한 인물은 지팡이를 집고 다리를 건너고 있고, 다른 한 인물은 초옥에서 다리를 건너가기 시작한 인물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다리를 건너가는 인물의 정면에는 초옥과는 형태가 다른 큰 건물의 지붕선이 그려져 있다. 그 지붕선을 보면 이 건물은 상당한 수준의 기와집을 묘사한 것이다.
그림②에 그려진 두 인물은 동일인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한 인물을 한 화면의 두 곳에 그린 것이다. 다리를 건너기 시작한 인물이 초옥의 인물을 찾아가는 것 같지만, 다리를 건너는 인물이 향하는 방향에는 큰 건물이 있다. 그 큰 건물은 지붕의 선으로 볼 때 상당히 큰 기와집이다. 초옥의 인물과 다리를 건너는 인물의 묘사는 기본 꼴이 같다. 즉 그림②는 그림의 상부와 하부의 두 장면을 하나로 연결한 그림이다. 그림의 상부 초옥에 그려진 인물이 그림 하부의 다리를 건너기 시작한 자신의 모습을 봄으로써 심산유곡의 초옥을 떠나, 큰 기와집이 있는 곳으로 가고자 하는 어떤 소망을 표출하고 있다.
그림②의 두 인물이 동일인이고, 그림의 상부와 하부는 두 장면을 하나로 연결한 그림이라는 관점으로 볼 때 작품②가 지향하는 의미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림②는 아마 작품①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그렸을 것이다. 그림②에는 신덕린이 벼슬을 잃고 낙향한 심경이 담겨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 그림②는 대체로 순은의 작품으로 추정되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 순은의 글씨, ‘덕린체’
순은은 서예로도 유명하다. 해서(楷書) 초서(草書) 예서(隸書)에 모두 능하여 당대에 이름이 높았으며, 특히 예서의 일종인 팔분체(八分體)에 능하여 그의 팔분체를 덕린체(德隣體)라 불릴 만큼 일세를 풍미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글씨 한 자라도 얻으면 서로 다투어 보배로이 간직하며 말하기를 ‘이것은 신 아무개가 쓴 삼매의 경지에 든 글씨다’ 하였다고 전한다.
현전하는 신덕린의 유묵은 발견된 바 없다. 다만 단편적인 서체를 보여주는 판각본에 그의 필체가 들어 있다.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명필(名筆)의 필적을 새긴 각첩(刻牒)이 다수 간행된 바 있다. 김생(金生, 711~?), 이암(李嵒) 등 역대 명필의 필적이나 비문을 모각(模刻)·탁인(拓印)하였다.
우리나라 명필의 각첩으로는 여러 사람의 글씨를 한데 모은 집첩(集帖, 筆譜)과 한 사람의 글씨만 새긴 독첩(獨帖)이 있다. 집첩으로는 안평대군 이용(李瑢, 1418∼1453)이 간행한 『비해당집고첩(匪懈堂集古帖)』과, 이후 『해동명적(海東名迹)』 『동국명필(東國名筆)』 『대동서법(大東書法)』 등 다수의 집첩이 간행되었다.
『해동명적』은 신공제(申公濟, 1469∼1536, 순은의 5세손)가 간행한 석각첩(石刻本)인데, 전책(前冊)에는 조선의 문종과 성종 어필과 최치원·김생·영업·탄연·이암·신덕린 등의 글씨가 실려 있다. 여기 신덕린의 「왕발시 등왕각(王勃詩滕王閣)」이 수록돼 있다. 1859년 박문회(朴文會)가 편찬한 『고금역대법첩(古今歷代法帖)』 장45에도 신덕린의 서체를 두 줄에 걸쳐 간략히 수록하고 있다.
출처; 이양재, '려말선초의 서화가 순은 신덕린과 그의 작품에 관한 고찰'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1294
신응순, ' 『목은구거(牧隱舊居)』 이야기'
https://www.newssc.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149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덧글>
순은 선생의 의기 넘치는 기백이 그림과 글씨에 담겨 있어,
지금 보아도 곳곳에서 생동감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