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치(治)를 논(論)하다
하리(痢)를 치료(治)하는 법(法)에서 그 요점(要)은 허실(虛實)과 한열(寒熱)에 있다. 그 요점(要)을 얻으면 만(萬)에 하나라도 실(失)이 없겠지만 그 요점(要)을 잃는다면 해(害)가 매우 많게 된다.
앞에서 변(辨)한 논(論)을 깊이(:熟) 살펴야 하고, 앞의 설사({泄瀉}) 문(門)에서 조치(調治)하는 여러 가지 법(法)들을 같이 참작(酌)하여 써야 한다.
一. 생랭(生冷)에 처음 상(傷)하여 음식(飮食)이 실조(失調)하여도 위기(胃氣)는 손(損)하지 않고 원기(元氣)는 휴(虧)하지 않았으므로 통(痛)하거나 창(脹)하거나 폭사(暴瀉)하거나 폭리(暴痢)하는 등의 증(證)에 식체(食滯)로 청(淸)하지 않다면 마땅히 억부전(抑扶煎) 오덕환(五德丸)이나 평위산(平胃散) 위령탕(胃苓湯) 오령산(五苓散)의 종류(類)로 하여야 한다. 한체(寒滯)를 대략 거(祛)하기만 하면 낫기가 극(極)히 쉬우니라.
一. 비신(脾腎)이 허약(虛弱)한 사람들은 일단 생랭(生冷)을 범(犯)하면 극(極)히 쉽게 하리(痢)하게 된다. 대인(大人) 소아(小兒)를 막론(:無論)하고 비허(脾虛)와 관계(係)되어 하리(痢)하게 되고 따로 실열(實熱) 등의 증(證)이 없다면 먼저 마땅히 좌관전(佐關煎)으로 그 비기(脾氣)를 온(溫)하게 하여야 한다. 만약 다소 심(深)하여 병(病)이 간신(肝腎)에 미치면 곧 마땅히 위관전(胃關煎)이 가장 묘(妙)한 치료(治)이니, 신병(新病)이라고 외(畏)하여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혹 오덕환(五德丸) 사신환(四神丸)의 종류(類)를 모두 간간이(間) 쓸 수도 있다.
一. 하리(痢)를 병(病)할 때 비신(脾腎)이 모두 허(虛)하여 위극(危劇)하므로 외(畏)한다면 단지 마땅히 위관전(胃關煎)이 가장 좋고 온위음(溫胃飮)이 그 다음이다. 혹 서로 기회를 봐서(:相機) 교대로(:間) 써도 된다. 혹 사유산(四維散) 구기단(九氣丹) 복양단(復陽丹)을 겸용(兼用)하면 거의 보전(保全)할 수 있다.
一. 이질(痢疾)로 구오(嘔惡)하여 욱욱(:兀兀)거리며 토(吐)하려고 하고 혹 식기(食氣)를 맡으면 바로 오심(惡心)이 나타나면 이는 위기(胃氣)가 허한(虛寒)하여 받아들이지(:容受) 못하여 그러한다. 반드시 마땅히 온보(溫補) 안위(安胃)하여야 하니, 오군자전(五君子煎)이나 육미이공전(六味異功煎) 온위음(溫胃飮) 성출전(聖朮煎)의 종류(類)를 써서 주(主)하여야 한다. 구(嘔)가 심(甚)하면 마땅히 육미회양음(六味回陽飮)의 속(屬)으로 주(主)하여야 한다.
만약 음(陰) 중의 화(火)가 허(虛)하여 기(氣)가 귀원(歸原)하지 못하므로 구(嘔)하면 마땅히 위관전(胃關煎) 이음전(理陰煎)으로 주(主)하여야 한다.
만약 위화(胃火)가 상충(上衝)하여 구토(嘔吐)에 이르면 반드시 번열(煩熱) 창만(脹滿) 등의 증(證)이 있게 되니, 청량(淸凉)하여 강화(降火)하는 등의 약(藥)을 쓸 수 있다. 마땅히 대분청음(大分淸飮) 익원산(益元散)의 종류(類)로 주(主)하여야 한다.
一. 습열(濕熱)의 사기(邪)가 성(盛)하여 번열(煩熱) 희랭(喜冷) 맥실(脈實) 복만(腹滿)하고 혹 순홍(純紅)의 선혈(鮮血)을 하리(下痢)하면 마땅히 청류음(淸流飮) 황금작약탕(黃芩芍藥湯)으로 하고 혹 향연환(香連丸)을 쓰거나 혹 하간작약탕([河間]芍藥湯)을 써야 한다. 열(熱)이 심(甚)하면 마땅히 대분청음(大分淸飮)이나 인진음(茵陳飮)으로 하여야 한다.
만약 이러한 등의 약(藥)을 여러 제(劑) 복용하여도 효과(效)가 없다면 바로 비신(脾腎)을 고려(:思顧)하여야 한다.
一. 이(痢)에 발열(發熱)이 있으면 화(火)에 속(屬)한 듯하니, 마땅히 양(凉)으로 치(治)하여야 한다.
그런데 실열(實熱)의 증(證)은 도리어 반드시 발열(發熱)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이(痢)로 정혈(精血)을 상(傷)하여 음허(陰虛) 수휴(水虧)하게 되면 가장 많이 열(熱)이 되고 조(躁)가 된다.
만약 허(虛)한 중에 화(火)가 있고 맥(脈)에 유력(有力)이 나타나면 마땅히 가감일음전(加減一陰煎)이나 보음전(保陰煎)으로 주(主)하여야 한다.
만약 맥(脈)이 본래 무력(無力)하고 전(全)으로 허화(虛火)에 속(屬)하면 화(火)로 치(治)하면 안 된다. 단지 장수(壯水) 보음(補陰)하는 삼음전(三陰煎) 및 육미지황환(六味) 팔미지황환(八味) 등이 마땅하다.
만약 음성(陰盛) 격양(格陽)으로 외열(外熱)이 되면 반드시 위관전(胃關煎) 및 우귀음(右歸飮)의 속(屬)으로 주(主)하여야 한다.
一. 이질(痢疾)이 처음 작(作)할 때, 기품(氣稟)이 강(强)하여 구복(口腹)을 함부로(:縱肆) 하므로 인하여 식음(食飮)이 정체(停滯)하고 실사(實邪)가 있어서 창통(脹痛) 견만(堅滿) 등의 증(證)이 있고 형기(形氣) 맥기(脈氣)가 모두 실(實)하면 먼저 그 적(積)을 거(去)하여야 하니, 적(積)이 거(去)하면 이(痢)가 저절로 그치게 된다. 마땅히 승기탕(承氣湯)이나 신우환(神祐丸) 백순환(百順丸)으로 주(主)하여야 한다. 혹 적금두(赤金豆)로 약간 이(利)하여야 한다. 이는 통인통용(通因通用)이니, 통(痛)이 이(痢)를 따라 감(減)하는 법(法)이다. 다만 이러한 등의 증후(證候)에는 반드시 확실(:確)하게 살핀 연후에 써야 한다.
만약 비신(脾腎)이 허한(虛寒)하여 된 하리(痢)에 이런 약(藥)들이나 한량(寒凉)하여 극벌(剋伐)하는 등의 제(劑)를 함부로 써서 다시 원양(元陽)을 패(敗)하게 하면 대부분 해구(解救)하지 못하니, 마땅히 매우 신중(:愼)하여야 한다.
一. 금구(噤口)하여 불식(不食)하는 것은 이질(痢疾)에서 가장 위(危)한 후(候)이니, 자고(自古)로 명확(:明)한 변별(辨)이 없었다.
단계(丹溪)가 말한 것을 보건대, "금구리(噤口痢)는 위구(胃口)에 열(熱)이 심(甚)한 까닭이다. 황연(黃連) 인삼(人蔘)을 달인 즙(汁)을 종일(終日) 마시는데 토(吐)하면 다시 마시게 하니, 다만 한 번만 삼켜도(:呷) 곧 좋아진다. 사람들이 이를 모르고 온약(溫藥) 감미(甘味)를 많이 쓰는데, 이것은 화(火)로 화(火)를 제(濟)하려 하고 체(滯)하는 것으로 체(滯)를 더하려는 셈이다. 또 열독(熱毒)의 약(藥)을 잘못 복용하여 위(胃)를 범(犯)하는 경우가 있으니, 당연히 명확(:明)하게 추리(:推)하여 그 독(毒)을 거(祛)하여야 한다." 하였다.
이는 단계(丹溪)의 설(說)인데, 금구(噤口)에 대한 변(辨)을 모르는 것이다. 그 의미(:義)는 매우 미묘(:微)한데, 어찌 모두 위구(胃口)의 열(熱)이 심(甚)한 것이고, 결국 황연(黃連)으로만 치(治)할 수 있다는 것인가?
금구(噤口)란 식(食)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니, 비록 실열(實熱)의 증(證)도 있지만 특히 비위(脾胃)의 허한(虛寒)에 많이 있다.
만약 식(食)이 위중(胃中)에 적(積)하여 금구(噤口)하면 그 흉복(胸腹)이 반드시 창만(脹滿)하고 혹 경통(硬痛)이 나타나니 이는 당연히 행체(行滯) 거적(去積)하여야 하니, 적체(積滯)가 거(去)하면 식(食)이 저절로 들어가게 된다. 청피(靑皮) 진피(陳皮) 산사(山査) 후박(厚朴)의 속(屬)이 그것이다.
화(火)가 위중(胃中)에 울(鬱)하므로 인하여 금구(噤口)하면 그 장부(臟腑)가 반드시 치열(熾熱)이 많고 혹 맥(脈)에 홍삭(洪數)이 나타난다. 이는 마땅히 사화(瀉火) 거열(去熱)하여야 하니 사열(邪熱)이 거(去)하면 식(食)이 저절로 들어가게 된다. 황금(黃芩) 황연(黃連) 치자(梔子) 황백(黃栢)의 속(屬)이 그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사기(邪)가 중(中)에 축(畜)하여 금구(噤口)하는 실증(實證)이다.
그런데 실증(實證)은 거의(:幾) 없다.
최근(近)의 병(病)들은 매번 그 위구(胃口)를 살펴보면 대부분 창만(脹滿) 등의 증(證)이 없고, 혹 그 대사(大邪)를 살펴도 실열(實熱) 등의 증(證)이 아니며, 단지 출(出)은 있고 입(入)이 없는 경우만 보이니 위구(胃口)가 날로 궁(窮)하고 정신(精神)이 날로 패(敗)하는 것이다. 창만(脹滿)이 없으면 본래 적(積)이 아니고, 또 진열(眞熱)이 없으면 본래 화(火)가 아니다. 적(積)이 없고 화(火)가 없으면서 식(食)이 불입(不入)한다면 그 까닭은 무엇인가? 바로 장기(臟氣)가 받아들이지(:容受) 못하기 때문이다.
받아들이지(:容受) 못하는 까닭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기(脾氣)의 약(弱)으로 말미암으니 구오(嘔惡)하거나 탄산(呑酸)하거나 식기(食氣)를 맡기를 싫어하여 울렁거리고(:泛泛) 불녕(不寧)하거나 기(饑)하여도 식(食)할 수 없어서 굶주리고(:枵枵) 곤(困)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는 중초(中焦)가 불운(不運)하기 때문에 식(食)이 들어갈 수 없으니, 그 책임(責)은 비(脾)에 있다.
또 하나는 신기(腎氣)의 약(弱)으로 말미암으니 따라서 명문(命門)이 난(煖)하지 않으면 대장(大腸)이 불고(不固)하고 소장(小腸)이 불화(不化)하며 위기(胃氣)가 불행(不行)하는 것이다. 이는 하초(下焦)가 실수(失守)하여 화원(化源)의 주(主)가 없는 것이니, 그 책임(責)은 신(腎)에 있다.
중초(中焦)를 건(健)하게 하려면 인삼(人蔘) 백출(白朮) 건강(乾薑) 감초(甘草)의 속(屬)이 아니면 안 되고, 하초(下焦)를 실(實)하게 하려면 숙지황(熟地黃) 부자(附子) 오수유(吳茱萸) 육계(肉桂)의 속(屬)이 아니면 안 된다.
비신(脾腎)이 강(强)하여 식(食)이 저절로 들어가는 경우는 그 이치(理)가 심히 분명(明)하고 그 응(應)함이 메아리(:響)와 같으니라. 내가 이로 사람을 살린 경우는 모두 기록(紀)할 수 없을 정도이다.
단계(丹溪)가 황연(黃連)을 쓰는 것과 화(火)로 화(火)를 제(濟)하려 하고 체(滯)하는 것으로 체(滯)를 보태려는(:益) 설(說)은 모두 실화(實火)를 말하는 것이므로, 특별히 한 쪽으로 왜곡(:曲)된 견해(見)일 뿐이다. 다른 사람의 의지(意智)에 국한(:局)되면 사람들의 생기(生幾)를 절(絶)하는데 관계(關係)된 바가 적지 않으므로,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된다.
一. 구리(久痢)로 양허(陽虛)하거나 한량(寒凉)으로 태과(太過)하게 공격(攻擊)하면 비신(脾腎)의 원신(元神)을 갈(竭)하여 활탈(滑脫) 부지(不止)하니, 본원(本源)은 이미 패(敗)하여 비록 온보(溫補)하는 제약(諸藥)을 준(峻)하게 사용하여도 반드시 주효(奏效)하지 못한다.
속히 백회(百會) 기해(氣海) 천추(天樞) 신궐(神闕) 등의 혈(穴)에 구(灸)하여 회양(回陽)하여야 혹 생(生)을 바랄(:望)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