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영어에서 믿음을 belief라고도 하고 faith라고도 하는데,
belief는 대상이 없는 신념이고,
faith는 대상이 있는 신앙이다.
belief와 faith는 그 출발점이 다르다.
belief는 나에게서 시작됨으로
믿는 자는 believer가 될 수 있지만,
faith는 나에게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충을 받을 분에게서 시작되므로 faither라는 말은 없다.
믿음이 나에게서 출발했느냐,
믿을 수 있는 분에게서 출발했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나에게서 출발했으면
그 믿음은 나의 행위가 되고,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믿음의 주인’(히 12:2)이신
예수에게서 출발했으면 그 믿음은 예수의 행위가 된다.
성경은 대상이 없는 믿음을 취급하지 않는다.
성경은 당연히 belief가 아니라 faith를 취급한다.
아무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Righteousness by belief라 하지 않는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Righteousness by belief가 아니라
Righteousness by faith이다.
believer에게는 바라볼 대상이 없으므로
믿어도 그 믿음에 능력이 없지만,
faith는 대상에 대한 믿음이므로
예수를 믿는 자는 예수가 사심과 같이
영원한 삶을 얻는다.
THESAURUS.COM에 의하면
faith는 loyalty, fidelity, fealty,
faithfulness등과 유사어이다.
대상이 있는 faith의 또 다른 말은 충(忠)이다.
‘Righteousness by faith’를 정확하게 번역한다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아니라
‘충으로 말미암는 의’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중심[忠]을 바치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무가치하게 만들지 않는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미숙한 지식은
‘인간이 예수를 믿음으로
인간이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내가 의롭게 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주께서...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롬 3:4)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기도 의로우시다’(롬 3:26)는 것이
온 우주에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인간이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의가 드러날까?
아담을 만드실 때 물어보지 않고 만드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후에 아담이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생명과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로 물으셨다.
여기서 인간은 사단에게 순종함으로
사단의 종이 되었다(롬 6:16 참조).
사단의 종이 된 인간을 되찾기 위해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러므로 그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행 2:21)
또는 그 예수를 믿으면(요 3:16)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어
사단이 그를 하나님에게 인계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몸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거짓이 진리 행세를 하는 세상이다.
사람들이 거짓에 넘어가는 것은 거짓이
큰 소리로 말을 하기 때문이다.
소리 큰 쪽으로 기울어지는 세상에서
진리를 가진 용기있는 사람은 목숨으로 진리를 사수하고,
용기없는 사람은 용기 있는 자의 목숨 뒤에 숨는다.
여기서 목숨을 내놓은 자를 의인이라 말하는데
세상은 이러한 의인들 때문에 살만한 세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용기 없는 다수는 의인에 빚진 자들로서
성경은 이들 역시 의인이라고 말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인간이 예수를 믿음으로
얼마나 깨끗한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말이 아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자신의 힘으로는
죄의 사슬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자들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분의 편에 서서
그분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신앙 고백이다.
따라서 인간의 죄값을 갚으신 분을 믿으면
죄값을 갚으신 분의 의가 드러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