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미는 봄철이 맛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될 무렵 도미의 맛이 오르는데 물고기에 관한 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낚시꾼들은 한술 더 뜬다. “도미는 1월을 최고로 치는데 정월이 아니면 맛이 떨어진다”고 할 정도다. 더위지기 시작할 무렵인 “5월에 잡히는 도미는 소가죽 씹는 것만도 못하다”고 했으니 계절에 따라 혀끝에 느껴지는 도미 살의 감각이 달라진다.
조선 후기의 풍속을 적은 《동국세시기》에서도 복사꽃 필 무렵이면 한강에 복어가 나오는데, 독이 있다고 복어를 싫어하는 사람은 대신 도미로 국을 끓여 먹는다고 했다. 복어를 보고 중국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는 너무나 맛이 좋아 먹다가 죽어도 좋은 생선이라고 했지만 도미 역시 복어에 버금가는 최고의 생선으로 여겼다. 그래서 예전부터 서울에서는 봄이 되면 궁중에서부터 일반 가정에 이르기까지 모두 도미를 즐겨 먹었다.
사실 우리나라도 도미를 고급 어종으로 치지만 일본에서는 도미를 ‘생선의 제왕’이라고 했다. 맛도 맛이고 생긴 것도 준수하기 때문인데, 사실 생선은 머리가 제일 맛있다는 어두일미(魚頭一味)라는 말도 도미에서 비롯됐다. 모든 생선이 다 머리가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상님들이 하나같이 도미만큼은 머리가 가장 맛있다고 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은 “도미는 머리가 제일 맛있다”고 했고, 이규경은 “도미는 기름진 맛이 특징인데 특히 머리가 최고”라고 했으며 《증보산림경제》 같은 책에서도 “도미의 감칠맛은 머리에 있다”고 했다.
사실 지금도 전문 음식점이나 고급 일식집에서는 도미찜이나 도미조림과 함께 도미머리구이를 별도로 요리해서 내놓는 곳이 많다. 가격은 오히려 다른 음식보다도 비싸고 대중적이지 않으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미는 머리가 맛있다는 증거가 되겠다.
하지만 도미는 머리도 맛있지만 오히려 회로 더 많이 먹는다. 요즘은 싱싱한 생선은 우선 횟감으로 많이 쓰는데, 특히 참돔이나 감성돔 같은 도미 종류는 회로도 인기가 높다. 살이 탱글탱글하고 찰지니까 회로 먹기에 딱 좋다.
우리는 ‘썩어도 준치’라고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썩어도 도미’라고 한다. 도미는 죽은 후 살이 경직되는 시간이 다른 물고기보다 길어 좋은 맛이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특히 숙성된 회를 더 즐기는 일본 사람의 입맛에는 썩어도 도미라는 말이 어울릴 수도 있겠다.
사실 도미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본인들이다. 일본에서는 도미가 최고급 생선이어서 옛날 일본 서민들에게 도미는 그림의 떡이었다. 평소에는 비싸서 사 먹지도 못하니까 도미빵이라는 이름을 붙인 생선처럼 생긴 빵을 먹으며 대리 만족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가 물고기 모양의 빵에다 가장 흔한 물고기인 붕어의 이름을 붙인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평소 먹지 못하는 생선인 도미의 이름을 붙여 도미빵, 다이야키라고 했다. 처음 도미빵이 나왔을 때 일본 서민들은 이 빵을 먹으면서 마치 진짜 도미를 먹는 것처럼 행복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본 사람들은 도미가 행운을 불러오는 생선이라고 믿는다. 길한 생선이라서 예전에는 결혼식이나 환갑잔치 때 도미 요리를 빼놓지 않았다. 사실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잔칫상에 많이 오르는 생선인데 역시 고급 어종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도미를 경사스런 생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도미를 행운의 생선으로 보는 것은 한중일의 공통점이다. 도미는 다른 물고기보다 수명이 긴 데다 철저하게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생선이다. 그래서 장수를 빌고 부부가 해로하라는 의미로 도미를 잔칫상에 올린 것이다.
도미는 또 꼬리가 붉은색인데 경사스런 색이라고 해서 길어(吉魚)로 꼽았다. 실제 도미의 옛날 한자 이름이 가길어(加吉魚)이니 길한 일을 더한다는 뜻이다. 어두일미라는 도미 머리를 먹으며 행운을 빌어보는 것은 어떨까?
#음식#역사일반
#음식으로읽는한국생활사
글 윤덕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