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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와 보살 숭배
6. 중국에서의 아미타불 정토
중국에서는 정토종이 혜원(慧遠, Huiyuan)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혜원을
정토종 조사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이것은 일본에서 지배적인 친란의 정토진종의 관점에서
혜원의 수행은 일반민중 구제에 목적을 둔 대중운동이 아니라 오히려 제한적이고 극소수의
지식인 운동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은 일본의 정토종에서 신앙의 중심으로 보는 세 가지 무량수경 계통 경전들에
기초하지 않고 『반주삼매경』에 근거하였기 때문이다. 혜원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구제하려는 아미타불의 자비심과 서원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력으로 극락을 얻으려고
모색하였다. 그러므로 정토종 최초의 중국 조사가 되는 영광은 담란(曇鸞)에게로 돌아간다.
그러나 혜원을 최초의 조사로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않건 간에 법통이나 조사의 계보를
추적하기 위해 중국 조사 이전의 인도 논사들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중국과 일본의
정토종에서 모든 불교 이론의 정점에 있는 인도의 조사들은 용수(龍樹)와 세친(世親)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토종의 가르침들이 존경받을 만한 인도의 조사들로부터 제공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정토학파의 개조를 용수로 보는 이유는 용수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산스크리트어로
복원된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Da?abh?mikavibh??? ??stra)』*의 한 품을 주로 근거로
한다. 이 논서는 『십지경』에 대한 주석서이다. 용수는 이 『십주비바사론』에서 보살의 행위를
논하면서, 대승보살도의 수행을 쉬운 길인 이행도(易行道)와 난행도(難行道)로 구분하였다.
붓다의 가르침에는 수많은 문들이 있다. 이 세상의 길들 가운데는 쉬운 길도 있고 어려운
길도 있다.―육지를 여행하는 것은 어려움으로 가득차 있지만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은
즐겁다―그것은 보살도에서도 마찬가지다. 고행으로 자신을 수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반면에 믿음을 통해서 수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
빨리 불퇴전지(不退轉地)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붓다의 이름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면서
존경 가득한 마음으로
붓다의 이름을 염송해야 한다.
경전 편찬자는 시방의 모든 붓다들에 대해 언급하지만 특히 기도의 대상으로 아미타불을
선택했으며, 아미타불을 끊임없이 염송하라고 한 다(『Shinran』 1997, Vol. 1: 23).
‘용수’가 여기서 말한 것은 깨달음을 얻는 빠른 길과 『무량수경』에서 발견되거나 함축하고
있는, 보기 드문 중생들이 택하는 영웅적인 장도 사이의 구분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수에 의하건 아니건 간에 이 원전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인도의 경전에 합리적으로 맞도록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미타불과 그의 정토에 의지하는 것이 보다 쉬운 길이라는 주장은 매우
조심스럽게 맥락의 전후 사정에 따라 관련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이행도’가 매력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인도의 무착 같은 유식학파의 저자들은 이 견해에 대해 분명히
비판하였다.
『섭대승론』에서 무착은 수행자가 염불만으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할 때 혹은 단지 그
경우에 해당하는 서원을 세우는 것 만을 통해 극락에 태어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붓다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착의 저술은 함축적이고 불분명 하다.
그러나 주석서들을 따른다면, 그의 관점은 그렇게 말하는 붓다의 특별한 의도는 게으른 자들
―‘다른 사람들’, 의심할 여지없이 게으른 자, 세속적 승려들 뿐만 아니라 아마 단순한 사람들,
다수의 평범한 재가자들―을 격려하고자 한 것이다. 그들은 열정을 가지고 정법을 올 바르게
실천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떤 깨달음을,
심지어 성불을 단순히 붓다의 이름만을 외우는 그런 쉬운 방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 정토운동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은 중국에서 정토가 불교의 종파가 되는 것에 반대한
유식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종종 채택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동아시아 불교에서 정토
수행은 어떤 절대적인 의미에서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찰스 존스(Charles B. Jones)가
현대의 대만에서 체험한 정토 수행의 경우처럼 진지하고 집중적인 정토 수행에서는 일찍
일어나고, 금욕적인 단식과 끊임없는 염불과 명상이 포함되어 있어 일상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들었고, 항상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정토학파가 스스로 이행도의 쉬운 길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것은 고전 경전들과 보살도에
대한 해석학적 설명 들에서 묘사되고 있듯이 보살도의 길고, ‘난행도’(Nattier 2003a)의 놀라울
정도로 ―실로 초인간적인―어려운 길과 비교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이들은 석가모니불이 성불의 길에서 행한 비범한 행위들에 대한 『자타카』류의 이야기 들에서
―예를 들면 어떤 포악한 왕에게 불평 없이 그의 육신과 팔을 주거나, 배고픈 암호랑이에게
자신의 몸을 던져 주거나 혹은 어떤 이가 소름끼치는 희생제를 수행하기 위해 부인과
아이들을 요구했을 때 주는, 3아승지겁을 지난 미래세에 보살이 될 모델을 건설하기 위해―
이끌어 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타카』류의 이야기들은 본래 설명적이고, 석가모니불의 위대함에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고자 의도한 것이며, 거의 불가능한 어려운 길을 그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의도를 가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바로 핵심이다.
그러나 보살 이념의 발생과 함께 이례적으로 그것이 모두 똑같이 진실한 선택으로 받아들여
졌지만 이러한 이상적인 이야기들은―당신이 신화를 좋아한다면―참된 열망을 표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소신공양을 하거나 호랑이에게 육신을 공양하는 중국 승려와 같은 열광자를 제외하고)
보살이 충분히 영적으로 성숙해져서 그것들을 받아들일 미래까지 사상을 전했다.
다시 말해 보살도와 그들의 행위에 대한 고전적 세계는 사실 불가능 할 만큼 어려운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 길을 표현하지 않는다. 이 행위들은 불가능할 만큼 어려운 것은 아닐 거라고
받아들여졌다. 과거의 싯다르타 혹은 현재의 미륵과 다른 위대한 보살 같은 대보살들은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들은 종종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그 결과 일부 사람들은 보살의 열망과
이생에서 실현할 수 없는 실제적 완성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보살도에 진지한 참여를 고려하게
만들었다. 문화적 맥락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보살의 열망은 더욱더 종교적 매력을 가지게
되었고, 더욱 더 참된 선택이 되었고, 그 엄청난 어려움은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이 문제는 불교
용어에서 ‘말법’이라는 방식을 통해 표현되었다.
정법(Dharma)이 새롭게 나타났던 옛날에는 보살도를 따르는 것이 실로 가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말법시대’에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붓다는 완전한 성불로 이끄는 보살도를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다.
말법시대에 보살도를 따르는 적절한 방식은 무엇인가? 석가모니불은 그것을 아미타불과 그의
정토의 구원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의 세속적인 의미에서 교훈적인
이상화된 신화로서 『자타카』에 등장하는 보살의 이야기들을 말할 수 있었지만, 몇몇 대승
부파에서는 정법의 다른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 여기서 말하는 그 효과와 의미는
같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불교의 정토 신앙들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초인간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난행도와 비교했을 때에만 단지 쉬울
뿐이다. 그것은 보살도와 그의 상대적으로 빠르게 완성을 실현시킨다.
잔나티에가 지적하듯이(2003b: 194), 그 도를 따르는 그러한 현실적인 접근과 같은 맥락에서
일승(一乘)―일체중생들은 실제로 하나의 대승보살도에 있다는 사상―과 같은 관념들도
의미를 가지고 관심을끌기 시작했다는 의미일 뿐이다.
불교의 무아설에도 불구하고 정토에서 (적어도 어떤 해석들에서) 수행자가 그들의 현재
생에서 어떤 종류의 개인적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고 심지어 가장 친근하고 가장 존경하는
붓다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정토에 태어나서 그들이 원하기만
하면 사실상 그리고 속히 성불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더욱더
채택하기를 권유 받는 보살의 서원인 최고의 대승 서원을 실제로 완성할 수 있다.
이것이 대승을 실질적이고 상대적으로 쉽게 만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매우 현실적인 희망을 제공한다. 마크 블룸(Mark L. Blum)이 주장하듯이 ‘정토
사상가들은 동아시아 불교 전체에 걸쳐 널리 퍼져 있는 정통 대승, 강력한 대승의 해석적인
측면을 대표했다’(2002: 49).
이와 관련하여 세친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작품이 있다. 이것은 한역본에서
산스크리트어로다시 재건된 『정토론주(淨土論註, Sukh?vat?vy?hopade?a)』
(원제는 『무량수경우바제사원생게주(無量壽 經優婆提舍願生偈註)』)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이 책은 세친이 지은 것일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중국에서 쓰여졌을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인도나티베트 원전 어디에서도
세친의 작품 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토종 논사들에 따르면 분명한 증거는 없지만 용수와 세친은 노년기에 정토신앙으로 전환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중국에서 『정토론주』는 매우 중요하고, 담란의 정토 교리의 발달에
기초가 된다. 세친이 ‘신심’을 ‘오념문(五念門)’으로 분류한 것이 특히 중요하다.
‘오념문’은
(1) 아미타불에게 경건하게 절함.
(2)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공덕을 칭송함.
(3) 지극한 마음으로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4)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과 정토의 모습을
떠올려 자세히 살펴봄.
(5) 자신의 수행으로 얻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회향 하여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의 다섯 가지이다.
이 오념문에서 공덕은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해 대자비의 상태를 완성 시키는데
기여한다(Kiyota 1978a: 278; Payne 1996 참조). 저자가 누구든 간에 정토에 다시 태어나는
목적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난 대자비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3-4세기 중국에서 아미타불 숭배는 거의 드물었다. 지둔(支遁, Zhidun, Chihtun, 314-66)이
아미타불상을 모시고 극락에 태어나는 것을 구하였을 뿐이다. 그는 “이 극락에는 왕법, 계급,
신분의 차별이 없다. 붓다가 지도자이고, 삼승(三乘)이 국가의 법이다.”라고 주장하였다
(Zürcher 1972: 128).
중국의 남쪽 지역에서 아미타불상이 6세기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전해지지만, 북중국에서는
519년에 용문(龍門)의 불상이 최초로 제작되었다. 따라서 6세기에 만들어진 불상에 대한
연구에서도 50개의 석가모니불과 35개의 미륵불에 비하면 아미타불상은 9개만 나타나고
있다(Weinstein 1987: 69).
그러나 7세기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650년에서 704년까지 144개의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상이 만들어진 것에 비해 석가모니불상과 미륵불상은 단지 20개만 제작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담란, 도작(道綽, Daochuo, Tao-ch’o, 562-645)과 선도(善導, Shandao,
Shantao, 613-81)가 공동체 생활을 하는 동안 일어났다.
중국의 많은 불교 수행자들은 정토신앙을 때로는 유일한 수행법으로 삼았고, 때로는 그들의
주된 수행법으로, 그리고 참선과 같은 다른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보조적인 수행법으로
정토신앙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고 현재도 매우 일반화 되어있다. 정토신앙이
아미타불과 극락을 중심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의 신앙이라 할지라도 그들만의 종교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수행하거나 자신이 하는 것에 대해
동일한 교리적 이해를 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일본에서 나중에
발달한 친란의 정토진종의 관점에서 담란·도작·선도는 정토종의 3대 중국 조사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담란의 주된 저작은 『정토론주』에 대한 주석서이다. 그는 영적인 발전을 억압하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극복했던 것 같다. 그가 살던 시대는 붓다와 같은 성자들이 살았던 과거의
황금시대와는 달랐다. 그럼 이제 어떻게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가? 담란은 용수의
난행도와 이행도의 구분을 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구분을 자신의 나약한 행위로는 전혀
종교적 발전을 이룰 수 없는 사람들과 타락한 사람들을 위한 종교, 즉 일반 대중에게 매력적인
‘타력(他力)’ 신앙을 사용하였다.
담란은 지금 자력(自力)에 의지하고 자력적인 영적 수행과 연구를 통해서 깨달음으로
나아가기는 매우 어렵다고 확신했다. 반면에 아미타불과 그의 위대한 서원의 힘에 의지함
으로써 극락에 태어날 수 있으며 거기서는 확실히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타력에 ‘탑승할’
가능성은 아미타불의 구제력에 대한 확실한 믿음(신앙)에서 생겨난다. 타력에 의지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자신의 유한하고, 결국 나약한 행위로 성불(成佛)이라는 무한한 깨달음의
상태를 얻을 수 있겠는가, 라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도 극복해야 한다. 동아시아 불교에
널리 유포되었던 불성 사상의 견지에서 보면 불성의 궁극적인 상태와 생사 윤회라는 세속적인
영역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 조건 지어진 것에서
무조건으로 이전하는 것을 찾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종교적·계율적으로 그것은
영적인 만족을 위한 기초가 될 수도 있다.
담란은 세친이 언급한 ‘오념문’의 수행을 채택하였다. 그가 특히 관심을 두었던 것처럼 보이는
세부적인 반주삼매의 과정에 많은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그는 아미타불의 이름을
염송하는 공덕을 특히 강조한다. 담란은 그 이름이 아미타불의 본질을 탐구하며, 무한한 지혜
자체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염송하는 것이 무한한 지혜인 실재 자체를
나타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경전에서 아미타불의 이름을 열번 염송하라는 것은 완전하게 염송하는 것을 의미 한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열 번이나 그 이상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횟수는
중요하지 않다. 정신을 하나로 모은 마음으로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아미타불의
이름을 반복하면 마음속의 모든 사악한 행위와 그것을 저지르려고 하는 마음이 정화된다.
그러므로 정토에 환생하게 된다.
수행자가 자력의 방법들을 포기하면 우리들을 통해 작용하는 아미타불의 구제 행위인 타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전에 나오는 대로 염불하는 것이 가장 완벽한 구제력을 지닌 아미타불의
힘을 보여 준다. 아미타불의 힘에 의지하면 심지어 오역죄를 범한 최악의 죄인일지라도 그가
법을 비방하지 않는다면 정토를 얻을 수 있다.
그곳에서 그리고 바로 정토 자체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에, 담란은 깨달은 존재로서의 목적은
‘돌아오는 것’, 다른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 적당한 화신(제8장을 보라)의 다양한 방식으로
현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특히 대보살 그리고 자비로운 보살로 이 세계에
나타나서 행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에서 신자는 아미타불의 구원력과 일체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표현하거나 참여하게 된다. 담란은 이 모든 것이 극락에 갈 필요 없이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이러한 수행은 모든 사람을 위한 종교가 되었다.
도선(道宣, Daoxuan, Taohsüan, 596-667)에따르면 “담란은 아미타불의 가르침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모든 부류의 사람들, 즉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
그리고 심지어 비불교도 에게까지 전했다”(Matsumoto 1986: 38).
그것은 대다수 민중들에게 가능성을 호소하는 종교, 탐구와 전념하는 사람들을 위한 종교,
자신의 미미한 행동으로 종교적 발전을 이룰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종교가 되었다.
도작은 정토신앙에 대한 비판에 응답하는 저작을 지어서 정토사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도작은
중국의 불교 박해 뿐만 아니라 야만스러운 이민족의 침입, 그것이 야기한 전쟁과 공포를
직접적으로 경험하였다. 그는 그 결과로 강제로 환속 당하게 되었다. 아마 이 이유로 말법의
시대가 다가왔다고 결론지었던 것 같다.
그는 ‘나는 불길 속에 살고 있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Chappell 1996: 146)고 말한다.
이시대에 가장 효과적인 영적 수행은
‘지은 죄를 참회하고, 공덕을 쌓고, 염불하는 것’(Suzuki1953: 157)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시대는 과거에 가능했던 영적 발전을 위한 수행이 적합하지않은 시대이다.
현재의 세계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학문,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 참선,
그리고 다른 전통적 수행법인 ‘성스러운 길[성도(聖道)]’을 따르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오늘날은 ‘한 사람이 깨달음을 얻어 무수한 중생들을 불교로 이끄는 시대가 아니다’(Chappell
1996: 153). 실제로, 우리를 위해서도 과거시대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불성을 가지고 있고, 끝없는 윤회에 우리는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붓다들을 만났음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윤회했을 때는 대개 지옥
같은, 선호하지 않는 세계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지금 ‘정토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이 문에서는 여전히 욕망들이 아니라 염주를 들고 일념으로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필요하다. 속세를 싫어하고, 자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미타불의 본원력과 놀라운 서원을
통해 윤회하여 다시 태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염불한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정토에서
어딘가 확실히 더 멋진 곳을 찾을 것이다.
물론 도작은 비판에 답하면서, 정토는 경이로운 모습이라는 제한된 특징을 지닌 상대적·
세속적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그것은 모든 적절한 놀라운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무조건적인 또는 무형의 절대적 실체에 대한 탐색에 한정하지 않는다. 계속 말해
왔다시피 대승불교에서는 세속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정토는 세속적 실재이다. 다른
중생들을 돕기 위한 붓다의 자비의 한 표현으로서 그것은 방편이다.
다른 방식으로는 영적인 발전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중생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게다가
『유마경』 같은 경전들 에서는 실로 정토가 완전히 청정한 마음과 같다고 설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토’를 말하는 것이 단지 은유적이거나 상징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혹은 붓다가 비 신격화의 부가적인 이익들을 주는 정법의 수행으로 이끄는
전략을 의미하지 않는다.
극락과 같은 장소가 없으므로 거기에 윤회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청정하게 된 마음의 그와 같은 궁극의 경지를 자력으로는 바랄 수 없는 사람들이 죽은 후에
태어날 수 있는 세속적인 서방정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 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실제로 사후에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전통적인 현실 영역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만큼 실현될 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윤회의 의지를 가진 만큼 실현될 것이다.
게다가 모두 아주 좋은 대승보살이고, 정토에서 보다는 우리의 오염된 세계에 있는 다른
중생을 극락에 다시 태어나도록 자비로써 옹호하며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현하자. 누가
예토에서 때 묻지 않은 채 그것을 잘 수행할 수 있겠는가? 누가 모든 오염을 넘어 위대한
보살이 될 것인가? 만일 우리가 진실하다면 극락의 정토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더 낫고, 그 후에 중생들을 돕는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토는 감각적인
낙원이 아니다. 이것은 실로 깨달음이라는 불교의 목표를 쾌락의 천국으로 대체한 것이
아니다.
극락은 단순히 즐거움의 영역만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토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욕망·갈애·집착과 같은 청정하지 않은 것들에 오염된 영토이다. 마지막 문제가 있다.
어떻게 아미타불 염불이 그러한 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도작은 아미타불의 명호가 강한 힘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붓다
자신의 위대한 공덕의 결과이다.
도작은 선도의 스승이고, (예를 들면 일본의 법연 같은 이들은) 선도를 아미타불의 화신이라고
추앙한다. 그는 당시 중국의 수도인 장안에서 살았으며, 현장 및 법장과 동시대인이었다.
그러나 선도는 이들과 달리 왕실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는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아미타불과 그의 정토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하는데 힘썼다.
선도에게는 많은 추종자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매우 열심히 극락을 구했고, 속히
극락에 환생하여 깨달음을 얻기 위해 티베트인들이 ‘이 고귀한 육신’이라고 부르는 육체를
포기하고 자살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선도가 자살하였다는 전설에도 불구하고
아미타불의 구원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런 극적인 대중의 시위를 찬성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
선도는 수천 권의 정토계 경전들을 서사하여 널리 유포하였으며,
약 300폭의 정토 변상도(變相圖)를 그렸다. 그래서 그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문맹인들도
기꺼이받아들였다. 일상적 농촌 생활의 현실적 고통과 고역에 대비되는 극락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마주한 그들은 그 의미를 즉시 파악할 수 있었다.
선도의 정토사상은 주로 『관무량수경』에 대한 4권의 주석서에 보인다. 그의 전통적인 불교
수행과 선정에 대한 놀랄 만한 학식과 그들이 깨달음을 얻게 할 것이라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그는 ‘극단적 고행주의’를 배척했다; Pas 1987: 68), 선도에 따르면 경전에서 위제희
부인은 성인·보살, 혹은 승단의 수계를 받은 승려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고통속에 갇혀 더 나은 세계로 가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죽어야 할 운명을 지닌 평범한 존재의
상징이라고 한다.
따라서 『관무량수경』은 일체중생들, 특히 일반 대중들이 가까이하기 쉬운 경전이 다. 선도
자신이 처한 출발점은 영적으로 쇠퇴기인 말법시대이고, 자신은 영적인 진전을 이룰 능력이
없다고 했다. “나는 사실 무시이래로 생사의 흐름에 빠져서 탐닉한 평범한 죄인이다. 이
흐름에서 벗어날 희망은 전혀 없었다”(Kaneko 1965: 52).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보편적이었다.
모든 사람들, 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생에서 선도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붓다들은
무한한 겁 동안 가르침을 주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제 세상에는 붓다가
한 명도 없다. 누가 어떤 기회를 가질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방편인 줄도 모르고
행위하거나 죄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참회와 회개가 선도의 종교관에서
본질적이고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모두 현생이나 전생에 오역죄를 범했기 때문에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심지어 극악한 죄인들조차 구제하겠다는 아미타불에 의지하는 것만이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관무량수경』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아미타불과 그의 서원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 믿음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그것은 진실해야 한다. 즉 참된
믿음이어야 한다. 또한 그것은 깊은 믿음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믿음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가장 간절한 소망을 동반해야 한다. 공덕은 그에 따라올
것이다. 이 믿음의 세 가지 모습은 모든 중생에게 해당한다. 만일 하나라도 빠진다면 정토에
태어나지 못할 것이다(Bloom 1965: 14).
이러한 아미타불에 대한 진실하고 깊은 믿음을 가졌다면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신자는 아미타불을 향한 다섯 가지 형태의 종교 행위에 참여해야 한다. 근본적인 수행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미타불의 이름을 끊임없이 염송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토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진정으로 결정하는 행위이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분명히 실천할 수 있는 행위이다.
아미타불에 대한 경전들을 독송하고, 아미타불을 관(觀)하고, 아미타불과 그 불상에 예배하고,
아미타불에게 공양을 드리는 것이 이에 대한 보조 수단이다. 그러나 이 수행들이 보조적
이라고 해도 선도는 이들을 대단히 중시했고, 그 수행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영적으로 도와
주어야 할 사람들에게 권했다. 특히 선도는 『관무량수경』을 이용한 관법과 수행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므로 칭명염불(稱名 念佛)은 정토에 나는 것을 목표로 삼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사마디와 아미타불을 관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다른 수행들과 결합할 수 있었다. 관법 수행,
오래된 의미에서의 염불과 보다 가까운 선정 수행은 중국 정토종에서 종종 필수적인 부분이
되기도 했다. 그에 따른 관법은 매우 도움을 줄 수 있고,
선도는 자신의 관법 염불 경험을바탕으로 하 여 이 경전에 대한 주석서를 지었다.
선도는 백도(白道)의 비유를 들었다. 이 비유는 그 후 정토사상에서 가르침의 수단으로 종종
이용되었다. 어떤 사람이 서쪽으로 여행을 할 때 그의 앞에는 두 개의 강이 놓여 있었다.
왼쪽은 불의 강이고 오른쪽은 물의 강이다. 이 두 강 사이에 ‘겨우 10센티미터나 15센티미터
정도 넓이’의 흰 길이 있다. 동쪽에서 서쪽까지의 거리는 약 100걸음 정도이 다. 불이 길의
한쪽 면을 검게 태우고 파도가 다른 쪽에서 끊임없이 일렁인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하여 여행자가 서있는 동쪽에는 그를 죽이려고 하는 악한들과 맹수들이
있다. 그 불쌍한 사람은 공포에 사로잡혔지만 그 길을 따라가겠다고 결심한다. 바로 그때 그는
뒤에 있는 언덕에서 어떤 소리를 듣게 된다. “벗이여, 이 길을 똑바로 따라가라. 그러면 더
이상 죽음이라는 위험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 머무는 것이 죽음이다.”
그리고 서쪽 언덕 위에서도 누군가 소리친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확고부동한 의지를 가지고
이곳으로 똑바로 오라. 내가 그대를 보호할 것이다. 불이나 물에 빠질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나 여행자가 출발하자 악한들이 그를 부른다. “돌아오라. 그대를 해치지 않겠다!”
그렇지만 그는 단호하게 앞으로 나아가서 서쪽 언덕에 안전하게 도착한다. “그는 선한
친구의 환영을 받아 끝없는 즐거움을 누린다.”
간단히 말해, 이 비유에서 말하는 이쪽 언덕은 생사윤회의 세계이 고, 서쪽 언덕은 극락을
의미한다. 겉보기에 친구처럼 보이는 악한과 맹수들은 우리의 감각과 의식 등을 나타낸다.
불은 분노와 증오이다. 물은 탐욕과 애착이다. 백도는 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열망이다.
실제로 그 열망은 열정 가운데서 일어난다.
이쪽 언덕에서 들리는 소리는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계속해서 참된 길을 가르쳐 주고
있는 석가모니의 목소리이다. 서쪽 언덕으로부터 아미타불과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그의 서원의 소리가 들려온다. 신분이 낮은 농부들도 쉽게 이해하고 기억한 그와 같은 그림
속에 정토사상의 메시지들이 요약되어 있다.
이 기간의 회화는 서양의 많은 중세 교회 벽화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한쪽은 지옥을
묘사하고 다른 쪽은 정토를 묘사한 교육 도구를 좋아했다. 선도는 중국에서 지옥 불화를
대중화하는데 노력하였 다. ‘엄격한 출가생활과 금욕의 삶을 살며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열정적인 헌신 때문에 그는 불교의 성자로 칭송받았다’(Pas 1987: 70).
앞에서 일본 정토불교가 세 명의 중국 정토종 조사들을 수용했음을 보았다. 그러나 중국에는
또 다른 위대한 정토종 조사들이 있었다. 안록산(安祿山)의 난 이후 세상에 대한 염세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일반 대중들 사이에 정토에 대한 신앙이 점차 증대되었다. 그 결과 정토불교는
왕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법조(法照, Fazhao, Fa-chao, 820년경 사망)는 이런 인식이 증대되는 데 일조하였으며,
사후에 황제로부터 ‘대오(大悟)’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는 선도의 화신이었다고 하며
아미타불의 여러 관법을 포함한 수많은 다양한 관법을 지녔다고 전해졌다.
반주삼매를 수행하면서 체험한 관법에서 아미타불은 법조에게 ‘진귀한 보석’으로 묘사되는
5가지 다른 리듬으로 염불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한 암송은 붓다를 기리기 위해 향을
태우는 것, 참회, 고백, 서원, 공덕의 헌납 등을 포함하는 개인 및 법회 의식 활동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 붓다는 법조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인류에게 전하는 승려를 따라 이 방법을 수행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들이 죽었을 때 아미타불이 그의
정토에서 몸소 환영할 것이다.
또한 법조는 ‘무량수불’을 ‘아미타불’로 염송하도록 명호를 표준화했다. 따라서 자주 반복하는
염불이 ‘나무아미타불’, 즉 ‘아미타불에 귀의합니다’가 되었다. 일본어로는 이 염불을
넨부츠(nenbutsu, 혹은 nembutsu)라고 발음한다. 두 경우 다 원래 중국어 ‘염불’을 번역한
말이다.
그러므로 동아시아 불교에서 정토신앙은 아미타불의 이름을 반복하는 염불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다수의 붓다들이 그들의 정토에 있다는 염불에 대한 고대 불교 수행의 대승적
의미에서 발달하였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염불이 불교에서 항상 가지고 있었던 관법과
(공포에 대한 해독제로서) 상식적인 속성과 또한 불교 전통에서 종종 열반의 달성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역할을 발견한다.
동아시아(특히 일본)에서 단지 붓다의 이름만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을 강조하는 수행법은,
폴 해리슨이 지적했듯이, 말법시대에 자아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키고, 자아의 미세한
습관들 조차에도 응답하는 ‘절대적 타력’, 즉 아미타불에 완전히 맡기는 것을 강조한다.
해리슨은 그것이 ‘선(善)으로 악을 없애는 것에 집중하는 단순한 정화의 논리’라고 말
한다(1992a: 227-8).
자민(慈愍, Cimin, Tz’u-min) 혹은 혜일(慧日, Huiri, Hui-jih, 680-748)은 인도를 방문하고
또한 선수행과 정토 수행을 결합시키는데 기여한 정토 사상가였다. 당시의 선 수행에 대한
그의 비판은 반세기 혹은 그 뒤에 있었던 마하연 화상의 선에 대한 비판과 유사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당시의 선 수행자들은 경전을 독송하거나 아미타불의 이름을 염불하는 것, 그리고 불상을
조성하고, 스승과 조사들을 섬 기는 행위, 혹은 다른 어떤 공덕 있는 행위들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추론은 이 모든 행위들이 조건적인 것이며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들은 선수행(여기서는 반야바라밀을 의미한다)을 제외한 모든 바라밀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비판했다, 자민은 이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붓다의 말씀인 경전에서는
다른 방법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수행에 있어서 이 선의 ‘숙련자들’은 저녁 때 약간의
명상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수행을 게을리하며 잠을 자거나 방탕하게 지낸다(Suzuki
1935: 357-8).
실제로 자민은 선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오히려 아미타불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중생들을 돕는 것이 더 쉽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아미타불 염불 수행을 하면서 선을 수행할 수 있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에서 법연과 친란에 의해 독점되었음을 반영한 선도의 정토에 대한 독점에도 불구하고
단지 한 붓다 혹은 하나의 수행에 일념으로 집중하는 것은 중국불교의 전형적인 형태는
아니다. 연수(延壽, 904- 75) 선사는 선수행과 모든 것은 단지 마음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상에 근거하며 정토를 통합시키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이것은 『유마경』에서 정토는 단지 청정한 마음이라고 설하며, 많은 경전들에서 붓다가 실로
자신의 마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더욱이 선과 정토사상은 모두
이기적인 집착을 끊고 수행자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정토 수행자가
자력을 포기하고 타력에 의지한다고 말할 때, 즉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다만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인 무아(無我)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 아니겠는가(Ch’en 1964: 404-5)?
선수행 과 정토 수행의 이러한 융합은 명과 청왕조, 특히 운서 주굉(雲棲 ? 宏,
1535-1615)의 사상에서 정립되었다. 오늘날 중국불교의 선찰들에서 선수행과 정토 수행을
겸하는 것은 보편적이다.
웰치는 공산화 이전의 중국에서 접한 차등화된 정토 또는 참선 수행을 묘사하고 있다.
초심자는 눈을 아미타불의 모습에 고정시키고 아미타불을 염불한다. 이것이 숙련되면
마음속으로 붓다의 모습에 정신을 집중할 것이다. 최고 단계의 수행은 정신을 집중할 붓다도
없고, 정신을 집중하는 주체인 자신도 없어지는 것이다. 즉 이것이 청정한 무분별의
자각이다(Welch 1967: 399). 더욱이 끊임없는 염불은 삼매에 들게 하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데 유용하다. 따라서 정토와 선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그러나 실제로 선종에서 칭명염불[Jones 2001: 232에서 ‘전념(專念) 정토’라고 부르는 것]은
선도와 같은 정토 조사들에 의해 기획된 것과 너무 동떨어졌다. 적정과 마음의 청정을 얻기
위한 기법으로서 뿐만 아니라, 참선의 깨달음 체험이라는 목표에 기여하는 이 칭명염불의
사용은 전적으로 수행을 하는 수행자 자신을 향한 것이다.
그것은 선종에서 (칭명염불의) 사용이 깨달음에서 자아를 극복하기 위한 훌륭한 기법이라
할지라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력의 전형적인 예들이고, 타력, 즉 아미타불의
존재와 행위, 그의 중생구제에 대한 서원, 그의 정토의 (관례적인) 실재라는 주된 역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다음에 볼 것처럼 이 칭명염불을 선종에서 사용한 것은 친란과
같은 일본 정토 수행에서는 더욱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