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대
김옥한
잠든 남편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다. 마른논바닥 같은 그곳엔 구석구석 크고 작은 주름이 떼를 이루고 있다. 이마를 가로 지르는 주름과 눈 가의 잔주름들이 다투어 피어 있다. 마주볼 땐 몰랐는데 잠든 얼굴에서 더욱 선명하다. 어떤 주름은 분절음처럼 뚝뚝 끊기기도 했고 어떤 주름은 이랑처럼 골이 깊다. 언젠가 보았던 엄대 같다.
엄대는 옛날의 외상장부다. 반찬 가게나 푸줏간에서 외상 거래할 때 물건 값을 표시하는 길고 짧은 금을 새긴 막대기를 말한다. 엄대에다 들여놓은 물건의 분량만큼 금을 그어놓고 나중에 한꺼번에 계산을 했다고 한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장부역할을 대신했다.
몇 해 전 여행길에 삼강주막에서 엄대를 보았다. 부엌은 물론 바깥벽까지 금을 그어 놓았다. 흙벽에 부지깽이로 그은 흔적이 빼곡하게 남아 있었다. 일반 손님과 뱃사공들의 외상장부를 서로 다른 곳에 표기한 것이 특이했다. 나룻배가 유일한 수단이었을 적 이곳은 많은 길손들의 휴식처였다.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여 아침에 배달된 막걸리가 저녁이 되기 전에 동이 나기도 했다. 선술집 단골손님들은 외상이 다반사였다. 주모들은 대개 까막눈이라 글자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니 벽이나 종이에 마신 술잔 수만큼 길게, 짧게 작대기를 그었다. 엄대가 외상으로 술을 마시거나 물건을 사는 것을 ‘긋는다’고 하게 된 시초라고 한다.
남편의 주름은 무수한 세월이 그어 놓은 인생의 외상장부다. 그 금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평생의 직장이었던 학교에서, 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저런 속상한 일들로 인하여 생긴 주름일 것이다. 나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제자나 친구, 친척들 때문에 그어진 주름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연년생 남매를 데리고 하루에 버스가 두 번밖에 다니지 않는 벽지에 근무한 적이 있다. 병원도, 약국도 없기에 밤중에 아이가 열이라도 나면 밤을 꼬박 새기 일쑤였다. 퇴근 후면 급하게 약이며, 필요한 물품 사느라 곰비임비 먼지를 뒤집어쓰며 오토바이로 비포장도로를 오갔다. 자식사랑이 유별한 남편에게 아이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분신이었고, 특히 몸이 약한 막내는 아버지의 정성으로 길렀다. 그렇게 키운 자식들이 계란 한판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결혼을 않고 있으니 빨리 대를 잇고 싶은 남편의 주름살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 재직할 때였다. 어느 해 제자가 가출 후 차량을 털어 생활하다가 절도범으로 파출소에 잡힌 적이 있었다. 못으로 만든 만능 열쇠로 택시 문을 마음대로 열고 도벽을 일삼았다. 학교에 오지 않으려는 학생을 매일 데리고 다니며 중학교 진학까지 시켰다. 퇴직 몇 해 전엔 초등학생 제자들이 중학교 일진과 어울려 비행소년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밤낮을 뛰어다녔다. 그때마다 남편 얼굴엔 하나 둘씩 주름이 늘어나지 않았을까.
퇴직 후엔 땅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다. 전원주택을 지으려 곳곳에 발품을 팔다가 원하던 대지를 찾았다. 앞에는 낙동강이 보이고 뒤에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그야말로 배산임수 명당이었다. 계약과 동시에 땅값을 완불했다. 그날부터 남편은 매일 설계도를 그렸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로 연못까지 만들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땅 주인은 돌연 계약을 취소하였고 노후를 전원생활로 보내려던 남편의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때도 굵은 주름 하나가 생겼으리라.
남편은 단순하고 외향적이다. 얽매이기도 싫어하지만 간섭받기는 더욱 싫어한다. 그런데 나는 작은 일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아이들 대하듯 매일 했던 말을 또 하며 잔소리를 했다. 신중해라, 술 적게 마셔라, 외식 많이 하지마라는 등 듣기 싫은 말들을 녹음기 틀 듯 반복했다. 처음에는 다툼도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체념한 듯 반응이 없다.
남편이 퇴직한 후부터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남편 몫이 되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나는 언제부턴가 군데군데 고장이 났다. 목 디스크로 고개를 숙여서 일을 못하고 무리하면 팔까지 저릿저릿하다. 허리도 시원치 않아 구부려서 하는 일 또한 힘들다. 내조보다 외조가 당연한 듯 살고 있다. 텃밭일이나 운전은 물론이고, 무거운 것을 못 드니 장보기도 남편 몫이다. 마당 빌어 봉당 빌어 안방차지 한다는 말처럼 집안일 대부분을 맡기고 있다.
남편은 불만이 많겠지만 내색을 않는다. 아내가 해야 할 사소한 일까지 도맡아 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고맙다는 생각이 앞서지만 그 말이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 어쩌다 조금 거드는 날은 목을 가누기조차 힘들어 남편이 안마까지 감당해야 하니 아예 손사래를 치며 말린다. 솜에 물 스미듯 이제는 남편에게 가사를 맡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요즈음의 나는 남편에게 떼 주름을 긋고 있는 것 같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곤히 잠든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감사와 안쓰러움의 소리로 들린다. 주름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라지만 동갑내기인 나보다 주름이 훨씬 많다. 저 주름들 하나하나마다 그의 역사가 음각되어 있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어진 금은 실은 가족과 타인에 의해서였을 것이다. 제자들이 속을 썩일 때마다 하나, 아내가 잔소리할 때마다 하나, 자식들이 애 먹일 때마다 하나. 우리가 그어놓은 주름들이 주막집 빚처럼 선명히 새겨져 있다.
엄대 같은 얼굴을 보며 남은 세월은 그동안 남편에게 진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잔소리도 줄이고, 내 위주가 아니라 그를 위한 삶을 살리라. 가로금 위에 세로금을 그어 빚을 지웠던 주모처럼 얼굴 주름을 하나 둘씩 지워주고 싶다. 주름이 지워질 때마다 활짝 웃는 얼굴을 떠올린다. 잠든 남편의 얼굴이 어느새 햇살 고요한 수면처럼 환해진다.
[당선소감]
수많았던 나의 겨울들에게
올핸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심한 몸살로 몸과 마음이 사막처럼 황폐해졌습니다. 간신히 창을 열고 밖을 보면 시린 하늘에 마른 뼈 같은 나목들만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또 한해가 가는구나 싶어 회색빛 우울이 다시 도졌습니다. 그때 먼 곳에서 첫 눈처럼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수많은 겨울을 보낸 것 같습니다. 혼자 앓으면서 끼적였던 나의 자화상들이 눈에 선하게 떠올라 마음이 울컥해집니다. 불면으로 지새웠던 그 모든 나의 겨울들에게 이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문을 열고 오늘은 잠시 산책이라도 나가야겠습니다. 더 이상 아프지 않는 겨울 속으로.
부족한 작품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당선의 영예를 안겨주신 영주일보에 감사드립니다. 손잡고 이끌어주신 선생님들, 수필사랑 문우님들, 윤슬회원님들 고맙습니다. 곁에서 묵묵히 지켜주고 늦은 밤까지 운전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남편과 응원해준 아이들께도 사랑한다는 말 전합니다. 늦었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1953년 경북 안동 출생.
가톨릭상지대 사회복지과 졸업
제12회 동서문학 맥심상,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외 다수
경북 안동시 안기1길 39. 대원아파트 101동 813호.
[수필부문 심사평]
“수필세계는 이미 작가의 경지를 넘나들고 있다”
문학의 위대함은 독자들과 함께 작품이 지닌 가치를 공유함에 있다 하겠다. 가치는 작가의 글이 타인의 공감을 얻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된다. 보다 짧은 산문인 수필은 탁월한 공유의 필력에 의존한다. 아무리 의미있는 체험이라 할지라도 나눔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면 독자의 시선을 붙잡지 못할 것이다.
2018영주신춘문예에는 전국에서 172명의 예비작가들이 응모하였고, 작품수는 550여편에 이른다. 어쩜 여러 기관에 재 응모한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주일보에 응모한 대부분의 수필들이 개인적 체험을 문장으로 잘 버물린 수작들로 넘쳐나 심사하는데 많은 긴장과 시간이 주어져야 했다. 본 신춘문예에서 우리는 단문 중심의 수필과 역사 중심의 수필 등 여러 유형의 수필들을 만나기도 했다.
수필은 개인적 체험에 대한 상상과 연상 그리고 문학적 기록을 그 가치로 삼는다. 과거의 체험이 현재에서 의식화 ․ 내재화 ․ 공유화 되고 그래서 미래의 가치스로움이 되기 위해서는 작가는 상상과 연상의 세계를 만나야 한다. 과거의 체험은 현재의 체험과 미래에 혹 만날 지도 모를 체험과 결합되고 재구성되어질 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가치를 지닌다. 그러한 가치스로움이 독자와 같이 나눌 수 있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는 우선 본 신춘문예에 응모된 수필 중에서 시선을 끄는 여섯 편을 먼저 선정하였다.
김영길 님의 ‘다면체, 종이학, 바람 열차’에서 선보인 단문 중심의 수필은 새로운 시도로 우리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순경 님의 ‘영여, 자리, 쇠꽃’은 참신한 시선으로 시적인 감수성과 상징성을 수필에 버무린 수작이다.
박순태 님의 ‘문, 반풍수라도, 마음도장’ 역시 그윽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문장을 재구성한 세련된 글솜씨를 보여준 수작이다.
김민영 님의 ‘시울질, 월지에서 선덕여왕을 기리다, 오월의 하루’는 개인의 체험을 타인화 하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가는 시공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응모자들 모두가 수필 제목이 전하는 메시지를 타자에게 더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자기만의 적절한 방향들을 찾아가고 있을 것이다. 자기의 글쓰기 현상이 어떠함을 알면 수필이 지향하는 본질의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도가 이어질 때 훗날 결실의 계절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기회(chance)는 곧 변화(change)에서 찾아옴을 실감하는 것도 가치로운 문학의 생활화일 것이다.
안희옥 님의 ‘청에 젖다, 탱기, 사흘’ 3편 모두 수작이다. 다양한 체험 그리고 개인의 심리상태를 적절하게 버무리며 독자의 시선을 끄는 매력적인 문체가 시종일관 넘쳐난다.
김옥한 님의 ‘엄대, 담 구멍을 품다, 얼개’ 세 편 모두 적절한 비유와 개인적 체험을 섞어 재구성해 내는 솜씨가 읽는 이의 시선을 모으고 있는 수작들이다.
두 분의 수필세계는 이미 작가의 경지를 넘나들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최종결선에 올라온 두 분의 글들에 대한 수 차례의 탐독 후에 의미와 기치가 녹아있는 다양한 은유를 보여주고 있는 김옥한 님의 수필 ‘엄대’을 최종 선정하였음을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안희옥 님의 수필세계를 엿보게 됨은 우리에게는 크나큰 행운이었다. 후일 큰 영광이 있기를 기원 드린다.
< 심사위원 문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