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누구라 하느냐(20240901) 조성현 목사
누가복음9:18-19
눅9: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눅9: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특히 예수님을 향하여 어떤 고백을 하여야 합니까? 고백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이라는 단어에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고백에서부터 출발하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향하여 부르고 있는 칭호가 바로 우리 자신의 믿음의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먼저 예수님의 질문을 듣고자 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고백과 더 나아가 우리의 고백을 듣고자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눅9:18 눅9: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오늘 말씀의 시작은 예수님의 질문으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부르느냐?”
예수님이 이러한 질문을 던진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누리가 예수님께 나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무리는 공허했습니다. 나라가 있지만,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 지도자가 있지만, 자신들을 향하고 있지 않고 있는 지도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목자 없는 양과 같다고 비유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막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둘째, 무리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어려운 상황에 되면 광야로 향하였습니다. 그들의 조상 때부터 하나님은 광야를 통하여 선지자의 외침을 듣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들이 예수님께 나온 이유도 광야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사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결국 무리의 이러한 마음은 예수님을 구약의 선지자와 같은 사람으로 보았을 것이었기에 예수님은 자신을 보이시려 하셨던 것입니다. |
2. 제자들의 답변을 들어야 합니다.
눅9:19-20 눅9: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눅9: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제자들은 무리의 이야기를 통하여 예수님께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 엘리야, 선지자 중의 하나” 어찌 보면 이들의 대답은 가장 사람다운 대답일 것입니다. 우선 도마복음에서 이와 같은 장면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도마복음 13장: 예수께서 따르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누구와 비교해보고 내가 누구와 같은지 말해 보라.”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말씀드렸다. “당신은 의로운 천사와 같습니다.” 마태가 예수께 말씀드렸다. “당신은 지혜로운 철학자 같습니다.” 도마가 예수께 말씀드렸다. “스승님. 당신이 누구와 같은지 저의 입으로 전혀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의 스승이 아니다. 너는 내가 마련해 놓은 광천 샘을 마셨기에 취하였구나.” 그리고 도마를 데리고 물러나 그에게 세 가지 말씀하셨다. 도마가 친구들에게 돌아오니 그들이 물었다. “예수께서 너에게 무엇을 말하셨느냐?” 도마가 그들에게 대답을 하였다. “예수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 중 한 가지라도 너희에게 말한다면 너희가 돌을 들어 나에게 던질 것이며, 그 돌들에서 불이 나와 나와 너희를 태워버릴 것이다.”
성경이 제자들의 말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했다. 둘째, 제자들은 아직 믿음이 없었다.
결과 적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누가복음 9장 1절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든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를 치료하라 하셨지만, 믿음이 없는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행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 원인이 바로 예수님에 관한 문제였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고백과는 다르게 베드로는 특별한 대답을 내어놓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고백을 신앙고백이라 부릅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어봅니다.
눅9: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어찌 보면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리고 무리에게 듣고 싶은 정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제자들이 성령님과 동행하는 사도행전 2장 이후의 고백과 같기 때문입니다.
행2:36-39 행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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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도 고백하고 믿어야 합니다.
요3:16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대답은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의 고백입니다. 현대의 시대에 사람들은 신은 죽었다 이야기 하지만, 지금 현대는 단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는 것 뿐입니다.
사람들의 고백이 없어지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기에 하나님은 함께 하지 않고 있음 뿐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것을 ㅇ례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다음과 같이 행하였습니다.
행1:13-14 행1: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인정하라 말씀 하십니다. 인정은 우리의 고백에서 시작하기에 우리는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성령님의 임재를 구하라 말씀하십니다. 권능자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직분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 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가 증거자가 되라 말씀하십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소금과 빛과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빛이고 소금이라 말씀하십니다. 결국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회복한다면 이 시대는 하나님을 다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너는 나는 누구라 부르느냐?” 질문하시면 오늘 우리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려야 됨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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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오늘 우리의 질문에 우리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 있길 원합니다.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의 시간이 되게 하시고 이러한 우리의 고백이 믿음이 되어 예수님의 말씀처럼 권능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나약한 심령에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어 담대히 세상에 소금과 빛의 역할이 회복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길 원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간증의 시간)
신앙의 고백과 역할: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분명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이 드니 나의 믿음이 얼마나 약한지를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시간입니다. 바라는 것은 초대교회 성령의 역사하는 시간과 같이 회복의 시간이 나의 믿음을 강하게 하셔서 권능자의 삶이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