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 자라온 나의 고향은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사방에 돌려있고 사시사철 꽃으로 뒤덮인 그곳엔 새들 지저귐과 노랫소리가 그치지 않던 곳이었다.
여름이면 졸졸 흐르는 개울가에 물봉숭아가 지천으로 피어서 꿀 따는 벌들의 날갯짓은 새들 노랫소리에 춤을 추고, 흐르는 물 거슬러 올라가며 꼬리 흔드는 중타리의 춤사위는 한 폭의 예술품이었고, 늦가을 산이나 냇가에서 피어나는 서리꽃이 여물 때면, 참나무 소나무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눈꽃은 모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지!
추석 다음 날이나 그 다음날은 일 년에 한 번 치루는 운동회 하는 날엔 운동장을 온통 뒤덮은 만국기의 펄럭임 속에,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동요가 힘차게 사방으로 퍼지는 학교엔 그야말로 가장 흥겨운 잔칫날이다. 백 미터 달리기, 장애물 경기, 두 사람이 왼쪽 발과 오른쪽 발을 묶고 달리기, 줄다리기, 엄마나 아빠하고 같이 달리기, 대나무로 만든 큰 바구니를 맞 엎어 봉해놓은 것을 높은 막대기에 달아놓고 청군 백군으로 편 갈라 바구니에 오재미를 던져서 빨리 터트리는 편이 이기는 놀이에서 바구니가 터지면, 잘게 썬 색종이가 공중에서 흩어지는 화려하고 눈부신 모습과 함께, 바구니 속에 담겨있던 긴 종이가 풀리면서 점심시간을 알려준다. 평상시 못 먹던 쌀밥이나 김, 소금가마니 속에 여름내 묻어놓았던 짜디짠 자반, 사이다, 사탕과, 응원 나온 식구들 동네 사람들과 함께 먹는 점심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하지! 고사리 같은 많은 손이 합동으로 노래에 맞춰 추는 유희는 지금 회상해 봐도 앙증맞고 고운 모습에 웃음꽃이 절로 피어나고 온 동네가 왁자지껄 고함과 웃음이 어울리는 시끌벅적한 시간이 저녁노을이 희미하게 번질 때면 운동회가 막을 내린다.
초등학교 시절 봄가을이면 소풍을 갔다. 지금처럼 버스나 자동차가 시골엔 없던 시절이어서 멀리 갈 수 없는 형편인지라 학교 주변 냇가나 산으로 가는 단골 소풍장소이지만 소풍 가기 전 날 저녁엔 늘 마음이 설레고,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도시락, 과자와 사탕을 큰 보자기에다 함께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신나게 학교로 달려갔었지!
점심 먹고 조금 있다가 보물찾기가 이어지면 왜 그리 하나도 찾지 못하는지, 친구가 찾은 보물 표를 인심 쓸 때는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보다 잘 찾는 친구가 부럽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항상 앞을 섰다.
보물찾기뿐 아니라 무엇을 찾는 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지금도 무엇을 찾으려면 눈이 한참을 헤매다 보면 바로 옆에 있는 것을 보고서 실소를 금치 못한다.
부족한 것인지 미련한 것인지 나 자신도 구별하지 못한 ‘징크스’가 일상을 불편하게 만든다. 성남 작은 누님댁에 가면 몇 번을 다녀도 갈 때마다 헤매서 아내한테 늘 핀잔을 받는다.
똑같은 골목에 똑같은 집들이 하도 많아 찾지 못하고 헤매면, 미소 머금은 얼굴로 따라오던 아내가 찾는다. 천생연분이라 했던가. 처가의 형제들은 길 찾는 데는 모두 도사다. 내 아내도 한 번 가본 길이나 집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족집게처럼 찾아냄을 보면서 나 같은 길치의 안내자로 하나님이 보내주셨음을 믿지 않을 수 없다.
한번 가 본 길이나 집 찾기는 언감생심이고 특히 왕복 4차선 이상 넓은 도로에서는 갈 때는 그럭저럭 가지만 그 길을 다시 올 때는 너무 생소하여 헤매기 일쑤다.
갈 때는 오른편만 보였고 올 때는 반대편만 보기에 생소한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잘못 가는 게 아닌가. 당황하기 시작한다. 어디를 가려면 늘 아내인 길라잡이를 대동하는 번거로움도 일상이 돼버려 번거로움도 모른 채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나 같은 길치에게도 살아갈 길을 열어주는 ‘내비게이션’이 있기에 고맙기 그지없다.
이젠 어디를 가더라도 두렵거나 망설임 없이 가지만, 갈 때 올 때 항상 ‘내비게이션’ 신세를 지고 있어서 불안감이 없다.
반년 전의 일이다. 옛날엔 목욕 수건에다 비누를 묻혀서 몸을 닦곤 했는데 딸의 권유로 요즈음엔 보습제 라나 뭐라나 파란 액체를 목욕수건에 묻혀서 닦아보니 거품도 풍성하고 비누처럼 수건에 비비는 번거로움이 없어 편리하여 애용하고 있는데, 어느 날 샤워 실에서 몸을 닦으려고 파란 액체를 찾으니 보이지 않았다. 눈이 시원찮아 웬만한 글씨는 희미해 가름하지 못하는지라 발가벗은 채로 안경을 가지러 가기도 뭣하고 마침 딸이 집에 있어서 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얘야 내가 쓰던 액체 비누 어디 있니?” “아빠, 욕실 옆에 있잖아요?”
“파란 색깔 나는 거 쓰시면 돼요”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니 파란 색깔의 액체가 있어 목욕수건에다 적셔 몸을 닦으니 상쾌한 향과 거품이 만족스럽게 일고 있었다.
두 달 동안 샤워할 때마다 그것에 만족하며 쓰고 있던 어느 날, 딸이 내가 쓰던 병에 샴푸가 많이 줄었다고 고개를 갸웃 하고 있기에 “그거? 아빠가 샤워할 때마다 썼지”
딸이 깜짝 놀라면서 “헐, 그게 강아지 샴푼데 아빠가 몸을 닦으셨다고?”
“나 미쳐 미쳐, 아빠, 모르면 읽어보고 쓰시지!”
“아빠가 물었을 때 네가 대답했잖아? 파란 액체라고!”
딸이 답답해하며 샤워실로 들어가서 가지고 나와서 하는 말 “여기 개 그림이 있잖아요.”
내가 보니 그제야 개 그림이 보였다. 두 달을 사용했으면서 어째서 의심한 번 하지 않고
살펴보지 않았을까? 내가 그것을 사용할 땐 그것을 들어서 사용할 필요도 없고 위에 있는 버튼만 누르면 액체가 나오니까 놓아둔 그대로 사용했는데 공교롭게도 개의 그림은 벽면으로 붙어 있었기 때문에 발견을 못 했던 거였다.
어이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동안 내가 개가 되었었구나! 이 ‘해프닝’이 끝난 후
몇 개월이 지났다. 이를 닦으려고 치약을 찾았으나 치약이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 찾는데 보통 치약보다 약간 긴 튜브로 된 것이 있어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방에 가서 안경을 가져오자니 번거로워 포기하고, 읽어보려고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았다. 전체가 영어로 되어있어 대충 훑어보니 작은 글씨는 볼 수가 없고 그나마 큰 글씨가 영어로 ‘Clean & Clear’라 쓰여 있어서 지레짐작으로 맑게 청소해준다고만 생각하고 그것을 칫솔에 묻히고 보니 보통 치약보다 약간 굵기가 굵었다.
어쨌거나 치약과 같이 흰색이고 하여 이를 닦는데, 입안이 화끈화끈 하면서도 거품은 만족스럽게 입 안 가득 넘쳤다. 깨끗이 치아 청소를 끝낸 기분이 어째 개운치가 않았다.
직감이 이상해서 방으로 그것을 가져와 돋보기 쓰고 읽어보니 밑에 ‘Deep action’이라고 쓰여 있고 모공을 깊숙이 청소한다는 문구를 보는 순간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고 딸한테 창피하고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 하고 냉가슴만 쓸어내리고 말았다.
딸들이나 아내가 물건을 가져오라고 부탁하면 대답은 금방 던져놓고 찾는 시간이 너무 길어
답답한 본인들이 와서 물건을 가져갈 때가 늘 있는 일인데도, 왜 자꾸 시키면서 답답해하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아마도 훈련을 시키려는 의도로 짐작만 할 뿐이다.
어렸을 때나 늙은 지금이나 맞는다고 생각되면 무조건 믿는 습성이 의심조차 불허하는 성격으로 변해서 이렇듯 실수의 연발을 저지른다.
믿기 때문에 전후좌우를 살필 필요가 없고, 다르다는 의심이 있어야 틀린 것을 찾아보는, 눈의 여행을 시켜줘야 선별할 능력이 생기는데, 그것에 우둔한 나의 습성이 허다한 모순을 남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속담이 있듯이, 그 속담을 되새겨보기는커녕 찬찬함과 조심성이 없는 나를 지금껏 보살피고 50년을 살아온 아내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드리고, 여기까지 탈 없이 지켜주신 높으신 분께 무한한 감사함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