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택에 대한 확신(確信)은 믿음에 의존(依存)함이 아니라 말씀의 명확성(明確性)과 확실성(確實性)에 있다.
선택이 우리와 관련되어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복음(福音)에 대한 믿음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택(選擇)의 힘을 그 믿음에 의존(依存)시키는 것은 그릇되다.
선택의 최고 질서를 따르고자 한다면
그것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이차적인 표징들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실성이
올바르게 추구될 수 있다.
우리가 보듯이,
"주는 기사(奇事)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사 25:1)라고
이사야가 전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子女) 삼으심이
우리 구원(救援)의 표(表)이다.
하나님은 이 표(表)를 통하여서
자기의 계획을 가급적 많이 우리에게 알리심으로써
그것을 우리 속에 확정(確定)하고자 원하신다.
선지자가 전하는 이 말씀의 증언(證言)이
약하게 보이지 않도록
그것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명확성과 확실성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돌아보도록 하자.
베르나르두스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점을 부각(浮刻)시킨다.
그는 유기(遺棄)된 자들에 대해서 다루고 난 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의도(意圖)는 확고(確固)하다.
화평을 위한 그의 판결은
그를 두려워하는 모든 자들 위에 확고하다고 할 것이니,
그는 그들의 악행(惡行)들은 염두에 두지 않으시고
그들의 선행(善行)들은 헤아리신다.
그리하여 자기에게 속한 것들을 사용하셔서
놀라운 방식으로 선한 것들과 악한 것들이 합력하여
선(善)에 이르도록 하신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롬 8:33).
나에게는 오직 그만을 내 편에 두는 것으로
모든 의(義)가 충분하다. 나는 오직 그에게만 죄를 범하였다.
그 자신이 나에게 전가(轉嫁)하시지 않기로 작정하셨던 것은
모두 나에게 없었던 것과 같다.”
그리고 조금 후에 다음과 말한다.
"오 참된 안식처,
이를 '침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그릇 칭하는 것이리라!
오 하나님을 뵙는 곳이여,
그의 진노로 우리가 교란되거나
그에 대한 근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불안해지는 곳이 아니라
그의 선하고, 기쁨이 되며, 완전한 뜻을 통하여
우리가 그 안에 있음을 인정받는 곳이로다!
이 환상은 우리를 두렵게 하지 않고
우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다.
그것은
불안한 호기심(好奇心)으로 우리를 자극시키지 않고
오히려 평온(平穩)하게 한다.
그것은
우리의 지각(知覺)을 지치게 하지 않고
오히려 평안(平安)하게 한다.
여기에 참된 안식(安息)이 주어진다.
평안하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평안하게 하신다.
그리고
자기를 바라보면서 안식하는 자들에게 안식이 있게 하신다."
- 칼빈의 예정론(존 칼빈, 기독교강요(3권 24장 4)-라틴어 최종판 직역, 생명의 말씀사, 문병호 옮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