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 시인이 만난 문인 . 48
임병호 시인
임병호(林炳鎬) 시인은 나와는 자칭 타칭 글친구이자 술친구이다. 그와 만나서 술과 절실하게 교감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지만, 그와는 1980년대 초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문학 행사에 참석하고 자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소주를 한 잔 나누는 사이로 변했다.
우리는 빠르게 술 인연으로 변한 것은 오래전에 수원에 있는 삼성반도체 사원연수원에서 사원 부인들을 대상으로 문예강좌를 열고 거기에서 내가 약 6개월 간 문학입문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강의가 끝나면 12시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는 상경하기 위해서 도착한 수원역 근처에서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만났다. 수원갈비에 소주를 마시고 점심식사를 곁들였다. 그때 그의 주량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회였다. 대낮부터 거나해진 우리는 또 오호영이란 시인을 불렀다. 이 사람은 내가 예총『예술세계』에 있을 때 시로 등단한 바 있으며 그의 첫 시집에 해설을 써 준 일이 있어서 반갑게 합석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일주일에 한 차례씩 정규 모임처럼 만나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 애주가였다. 청탁불문으로 또 주야불문으로 술과 교감하고 있었다.
내가 그의 시선집『가을빛 안개』에 특집으로 게재한 ‘임병호 시인의 시읽기’에서 그의 작품「술」에 대해서 언급한 바가 있다. 제목하여「酒中仙의 술 詩」. ‘청계리 농촌주택 현장 / 비오는 날이면 / 천렵국 끓여 / 막소주, 양재기로 마셨다. / ’천둥산 박달재’를 같이 부르며 / 벽돌장이들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술타령은 이어졌다.
그는 1947년 경기도 수원에 출생하여 1965년부터 <詩鄕><華虹詩壇><詩와 詩論> 동인으로 문학을 시작해서 1966년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창립회원으로 참여했다. 20대 전후에 유랑생활과 노동생활을 마감하고 수원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문학과 신학의 접맥을 위하여 수학한 총회신학교 신학과를 불혹(不惑)에 마치는 학구파였다.
그는 한국문협 수원지부장과 경기예총 부회장, 경기펜 회장 등 수원에서 많은 문학활동을 하면서 현재는 한국문인협회 이사와 국제펜 한국본부 부이사장 그리고 현대시인협회 이사, 경기시인협회 이사장 겸 수원시인협회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시 전문지『한국시학』발행인으로 우리 문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1975년 첫 시집 『幻生』이후 2010년 『겨울강가에서 봄을 만나다』까지 14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열 다섯 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있는데 예정에 없었던 시선집 『가을빛 안개』가 먼저 나오게 됐다. 시선집이나 시전집은 시인이 死後에 발간돼야 한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었지만 문우들의 권유를 따르기로 했다.
-중략-시는 서정이다‘라는 생각으로 ‘어떻게 쓰느냐보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있는 나의 문학관을 간행위원들이 잘 헤아려 주었다. 百八煩惱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시 가운데 ‘시가 쉽게 써지는 날은 세상보기가 미안하다 / 그래도 시가 안 써 지는 날은 인생이 허무하다’는 「虛無祭」가 있지만 늘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그 시가 갈 길을 일러 주었다.
이처럼 그는 시선집 머릿말에서 자신의 소희를 피력하고 있어서 그가 시와의 교감은 남다른 정감으로 살아가고 있다. ‘시가 안 써 지는 날은 인생이 허무하다’는 결론에서도 이해할 수 있듯이 그가 천성적으로 시와 결합되지 않는다면 삶의 의미, 인생의 진가(眞價)를 음미(吟味)하지 못할 것이기에 말이다.
그는 다시 ‘내가 시를 몰랐다면, 내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 왔을까’하고 自問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시는 삶이다’라고 自答했다.’는 인생론에 가까운 철학적인 사유(思惟)에까지 확대하는 작품관을 눈치챌 수가 있다.
그는 이와 같은 각고(刻苦)의 노력으로 시집『환생』『가을 엽서』『신의 거주지』『우만동 별곡』『벌초』『아버지으 l마음』『새들이 방울을 흔든다』『어느 행복주의자의 명상록』『금당리』『단풍제』『겨울강가에서 봄을 만나다』시선집『가을빛 안개』를 상재하였으며 지난 달에『歲寒圖 밖에서』를 상재하였다.
이러한 그의 업적은 제1회 인간상록수상 문학부문과 제1회 수원시 문화상 예술부문, 제4회 경기문학상, 제4회 경기예술대상 문학부문, 수원문학대상, 우리문학상 본상, 제1회 올해의 경기문학인상, 자랑스런 수원문학인상 등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여 그의 문학을 빛내고 있다.
그는 또 언론인으로서도 그 명성이 높아서 1988년 경기일보 창간사원으로 입사한 이래 문화체육무장과 문화부장, 편집부국장, 논설위원 겸 월간『Photo 경기』주간을 지내고 지금은 경기일보 고충처리위원. 논설위원, 사사편찬실장을 겸직하고 있다. 제4회 경기언론인상 특별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금년 초에 실시한 국제펜 한국본부 임원 선거에 부이사장으로 출마해서 당당하게 당선했다. 그동안 경기시인협회에서 굳건하게 쌓아두었던 문학적인 저력이 발휘되었던 것이다.
그가 발행하는『한국시학』은 중앙문학지보다 더 좋은 필진으로 작품을 수록하기 때문에 전국 규모의 시 전문지로서의 손색이 없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여느 잡지처럼 시부문 신인상도 모집해서 등단도 시키고 있는데 그 수준이 중앙지보다도 실력이 월등하다는 정평이다.
경기시인협회의 행사나『한국시학』신인상 작품을 심사하면서 시상식에는 나도 참석해서 축사를 하고 경기도 시인들과의 우정을 나누면서 서로 소통하는 자리가 인상 깊게 다가온다.
그는 언젠가 원고 청탁으로 시 두 편을 보내서 게재하고는 그 책과 함께 소포가 도착했다. 그 내용에는 ‘원고료 조’라는 단서를 붙여서 참이슬 소주를 스무 병이나 원고료라는 이름으로 보내 와서 온 가족들과 함께 박장대소를 한 적도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서 나와 술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려는 주정(酒情)의 발현으로 접수하고 지금도 필요할 때 잘 마시고 있다.
이 술 이야기는 언제부터인가 임병호, 정성수, 김송배 셋이 만나면 술판이 안 벌어지면 이상할 정도로 주위의 눈초리를 느낀다. 임병호 시인과 나는 청탁불문(淸濁不問)인데 비해서 정성수 시인은 오로지 청하라는 정종류의 술을 선호한다.
꽃은 반쯤 핀 것 보고, 花看半開 / 술은 약간 취하게 마셔라, 酒飮微醉 / ‘채근담’이 말했지만 // 아서라 / 활짝 핀 꽃 더 좋고 / 만취해야 이 세상 잘 보인다 // 꽃 향기 술 향기 / 그윽한데 / 어찌 참으라고 하시는가 --「술 詩 6」전문
그는 이렇게 ‘술’에 관한 시를 연작으로 많이 썼다. 또한 작품「미련하다, 오장육부」에서도 ‘인간의 오장육부는 정직하다 / 굶으면 배고프고 / 먹으면 배부르다 / 술 한 잔 맞이하면 / 짜릿해 뒤튼다 / 문제는 내 오장육부다 / 참이슬 두어 병 들어와도 감각이 없다 / 죽음을 앞세운 酒毒이 침투하는데도 증상을 모른다 / 詩 한 줄에 매달려 사는 주인처럼 / 내 오장육부는 우둔하다‘라는 어조는 그의 술 인생의 행로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어이 임병호 형, 정성수 형 불러다가 언제 일잔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