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치사랑"을
발간하며,
보다 나은 스승을 향해
대학교수는 개개인이 자신의 전공으로 활동하는 독립체이다. 동시에 지식 발전의 핵심 인력으로서 현대 사회의 한 부분을 맡고 있는 구성원이다. 교수들의 어깨에 걸린 사회적 기대도 작지 않다.
이런 교수의 자리에서 30여년 이상을 생활한 서른다섯 명이 의기투합하여 교수들의 사제동행 이야기 『내리사랑 치사랑』을 펴낸다.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가 되어주고 경험은 그 분야의 진실과 정확한 정보의 보고(寶庫)가 된다.
경험이 담긴 이야기들이 사회에 퍼져 나가면 또 다른 역사의 바탕이 될 수 있다. 이 서른다섯 명의 교수들은 교권이 무너지고 학교 교육이 붕괴된다고 하는 현 교육 현장에 도움의 불씨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겪은 선생과 학생 간의 경험을 한 토막씩 소개한다.
스승에게서 사랑받고, 그 스승의 사랑을 전하며 살아온 이 교수들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내 곧 이 ‘사제동행’이란 단어가 단순히 일화 한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교수들에게 자신의 존경하는 은사를 물으면, 그것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각자가 추억의 한 자락을 펼치며 연구와 교단의 세계를 드러냈다. 다양한 필자들에 의해 거의 한 세기를 드러내는 글이 되었다.
우리는 스승의 날이 들어있는 지난 5월에 이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글이 들어오는대로 명예교수회 카페에 게재해서 서로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분량도 제 각각, 문장도 ‘연작시’를 읽는 듯한 운율이 있는 글부터 미소를 짓게 하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표현이 담긴 글까지 다양했다. 그렇지만 그런 다양한 글에서 하나같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 흐르는 정이 엿보였다.
제자들 이야기를 할 때는 자랑도 배어있다. 386 운동권 학생들을 지도해야 했던 시절도 담겨 있었다. 또 교수들의 ‘세상 선생님’ 이야기까지 포함되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대학원을 거쳐 유학을 가고
대학교수로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정신없이’ 따라 가게 한다.
영남대학교에서 때로는 학부 시절부터, 그리고 대학교수로서 지내왔던 필자들이 영남대학교의 지난 역사를 보이는 것은 덤이다. 영남대학교가 개교하는 과정, 차례로 생긴 학과들, 학교의 발전도 그려지고 교육 현장이 변해가는 모습도 배경에 깔려 있다. 각자가 다른 이야기를 했지만 한 권의 진솔한 수필집이 되었다.
결국 이 책은 교수는 어떤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되고, 무슨 일을 하며, 어떤 이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결국 필자들 세대가 그리는 ‘이상적인 스승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교수들이 기억하는 선생은 결국 사회가 바라는 선생의 상인 것이다.
필자들 대부분이 그런 성향이기에 그런 은사를 기억하는지, 아니면 그런 가르침을 받아서 그렇게 성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들이 말하는 스승과 필자는 참 닮아있다. 은사와 말하는 톤이 비슷해지고, 강의하는 스타일이 닮아갔다고 하는 것으로 보면, 그렇게 자란 학생이 그렇게 학생을 키우는 것이 아닐까?
또한 이 책은 스승을 어떻게 모시며, 제자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풀어 나갈까 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많은 선생과 학생 중에 기억에 남는 서로가 되는 비결은 ‘연결을 놓지 않았다’는 점임도 설파한다.
선생과 학생은 서로 자극하고 의지하며 ‘교수 개개인은 각기 한 개의 도서관을 능가한다.’라는 표현을 완성해 간다. 교수들은 은사에 대한 감사와 제자에 대한 사랑을 세상으로 ‘발송’한다. 그리고 스승과 제자들이 실제 현장에서 끌어낸 사연이 ‘경험에서 나온 진솔한 조언’으로 교육계에 귀한 자극이 되기를 희망한다.
교수들은 이런 원고를 쓰는 일이 논문을 작성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들 했다. 어쩌면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신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공동 저자로 출발하는 것이다.
우리는 긴 꿈을 꾼다. 다음 책을 향하여 ……
필진 교수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책을 고운 작품으로 탄생 시킨 흐름출판사 직원분들께 감사드린다.
2024년 12월 25일
영남대학교 명예교수회
회장 이 광 식
<'교보문고' 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국내도서 >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사랑받고 사랑하며 함께한 스승과 제자의 정다운 이야기
스승의 스승은 어떤 분이셨을까? 코앞의 사제 관계에 매여 그런 질문을 품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스승에게도 스승이 있었기에 지금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을 터. 이 책에는 '스승 됨'을 업으로 삼은 대학 교수들의 스승과 제자 이야기가 만판 담겨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도명기외 33인
인물정보
대학/대학원 교수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도명기 외 33인
목차
"내리사랑 치사랑"을 발간하며
1부- 묘목에 어린 손길 열매로 퍼지고
연구실에서 만난 초등학교 은사님| 김성규
친구 같은 선생님 I 변종국
노란 투피스 선생님| 남두현
빨간 맹꽁이 운동화, 검은 몽블랑 만년필|김정숙
가르침 속 숨겨진 스승의 사랑|강용호
사제 간에 맺어진 학문 사랑과 연원淵源|도명기
2부- 스승, 학계에 나를 세우고
나를 나 되게 하신 최종락 교수님|남효덕
故 김종설 교수님을 기리며|신동구
나를 형같이 생각하라|정봉교
현장에서 보고 배운 학문의 길 -최재석 선생님과의 만남|이창기
스승과의 동행을 회고하며 |이청규
신앙과 학문이 일치하신 분| 이상욱
휠 해도 잘할 거야 -가메다 히사오 선생님|김종근
진정한 선비의 모습을 생활 속에서 보여 주신 나의 스승| 윤대식
넌 생각이 너무 많아 -쑤 선생님을 기리며 |이원경
3부- 따르고 싶은 스승께 내 혼을 없고
스승님. 백영 정병욱 -우리의 등방일사 I 이강옥
나는 새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한재숙
35년간을 모산했니 선생 곁에서|홍우홈
사제간의 인연 -42년의 동행|김한곤
인생의 세 가지 길을 터주신 권태준 교수님 |이성근
조순 선생님의 사랑과 가르침-내 인생의 등불| 이효수
4부- 스승의 그림자를 세상에 드리우고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담임선생을 찾아온 엄마I박종갑
언제 만나도 보석 같은 제자. 이명훈 박사|김용식
젊은 한때의 뜨거운 열기|김진삼
뉴밀레니엄, 그맨 그랬었지|류호용
놀라운 사제동행 -김대통 교수와 함께|박정윤
100m 선수와 골프 선수|서길수
교수생할 34년의 감회|장영동
고마운 스승, 고마운 제자 유학생 단상|조무환
고맙고 친구 같은 제자들I 최순돈
나의 학문과 잊지 못할 제자들|최 청
달리고 싶은 제자들과 함께|황 평
5부- 세상 선생님 -스승은 이어지고
겸양해해의 사표|박인수
호박 선생님|오창혁
책속으로
나는 믿는다. 교육은 '희망'이라고. 그리고 조금 더 노력하면 환경이 좋았던 집의 아이처럼 그리워질 수도 있다고. 나아가 남을 상대적으로 더 폭넓게 포용할 수도 있으리라고. 조금만 거들어주면, '상상 이상의 힘'을 창출하는 것이 사제관계인지도 모른다. 참 많이 사랑받고 살았다. --53쪽
이번에는 내가 밥을 사겠다고 했고.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그는 나에 대한 호칭을 과거와 다르게 했다. 박사과정 학생 시절에는 Mr. Yun이라고 불렀지만, Mr.와 나의 성은 빼고 이름first name만 불렀다. 전통적인 미국인들에게 이름만 부르는 것은 가까운 친구를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이제 친구로 지내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157쪽
선생님은 또한 제자들에게 '자기 일은 자기 스스로'를 강조하셨다. 아무리 커도 멍텅구리배는 동력이 없는 배라서 스스로 움직이지를 못한다. 사람을 바라보는 데는 외형에 앞서 자기 동력성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연구하는 제자들에게 늘 주문하셨다. '자기 일은 자기 스스로.' 자주적인 삶, 스스로 주인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 교육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최소한의 덕목이라 생각하신 것 같다.
나는 그때부터 정말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 학생은 여러 가지로 모범적이었지만, 학기말에 가서 최종 성적이 나왔을 때 비진학 학생중 1등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만일 1등이 아니면 당연히 추천할 수 없을 터인데, 그 엄마와의 짧은 만남에서 느낀 절박함과 간절함, 애처로움을 어떻게 삭일 수 있을까. 격정이 태산이었다. --291쪽
구청 도서관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수필 교실 안내문을 보았다. 접수를 시작하는 날이었고, 정원이 삼십 명이나 되었다. 인기 좋은 수업일 거라는 생각에 휴대폰을 꺼내 접수하고 수강료를 납부하였다. 날쌔게 기회를 잡았다는 사실에 뿌듯해졌다. 등록하고 나니 격정이 생겼다. 수업에서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 408쪽
출판사 서평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각각의 인생 도정에서 맺은 소중한 사제 간 인연을 소개한다.
책의 1부에는 어려운 시절을 무사히 건너도록 인도해 주신 은사의 이야기를 실였다. 진학은 커녕 먹고사는 일도 가혹했던 시절, 피상적인 의무와 책임의 범위를 넘어 제자의 삶을 보살펴 주신 웅숭깊은 젊은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폐어가 된 듯한 '스승의 은혜'라는 어구를 소환한다.
2부에는 필자들을 교수로 다시 태어나도록 해 선배 교수님들과의 일화를 담았다. 학문과 교육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게 되기까지 쌓아야 했던 경험은 저 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방황하는 길목에서 방향을 짚어 준 손길이 없었더라면. 상하의 경직된 관계를 훼철하고 동료 교수로서 나란히 걸기를 허용한 마음이 없었더라면. 후학의 길은 지금보다 월산 험난하지 않았을까.
3부에는 교수로서의 삶과 인생 전반에 모범을 보여주신 선생님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당신의 인생관과 그 실천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정도. 사제 관계의 본보기가 되신 스승의 자취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제자의 삶에 규준이 되었다.
4부에는 교수가 된 후 인연을 맺게 된 제자들과의 에피소드를 수록했다. 여기에는 제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스승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완연하다. 완강해 보이기만 했던 스승의 여린 속내가 정겨운 문장 사이사이에는 제자를 향한 애정과 자부심이 깊이 배어 있다.
5부에는 동료로서 만난 인생의 사표(師表)와 퇴임 후의 세상을 살아가는 작은 도전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선의와 신망으로 지역감정이라는 망령을 무력화하고, 이러한 환경에서 다른 어려운 이에게 힘이 되어주고자 하는 마음이 자라났다는 체험담은 상처 많은 우리 사회에 희망을 전해 준다. 한편, 퇴임 후 교수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는 다른 의미에서 인상적이다.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새로 시작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버거운 일이다. 저자는 퇴임한 교수로서 초등학교 시절에 겪은 글쓰기에 관한 트라우마를 안고 학교 밖 수필 교실의 학생이 되었다. 저자의 글은 도전의 결실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성과가 어떠했는가는 독자의 관단에 맡긴다.
배움은 학제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학교에 다니든 아니든 항상 누군가의 스승이요 제자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다만 보다 공식적인 스승-제자 관계 안에서 경험된 삶의 이야기는 그 '스승 됨', '제자 됨'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돌이켜보면 스승이 스승일 수 있었던 것은 학식이나 지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결국은 사랑과 믿음으로 제자의 가능성을 지켜 주었기 때문이며, 청렴과 성실함으로 귀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자 역시 제자라는 신분 때문이 아니라 기꺼이 배우려는 마음으로 스승을 대했기에 비로소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사제 간의 감사와 사랑이 담북 담긴 이 책이 스승-제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다정함과 용기를 전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사제가 동행하는 이 길이 서로에게 고운 꽃길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