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않아도존재하고있습니다
#김범준교수
읽다가 몇번이고 “응?”을 육성으로 외치거나 머리를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최선을 다해 지식의 실타래를 풀고 풀어 쉽게 쓰려는 의도가 진하게 보이는 글들이었지만 문송하였다. 몇번은 수차례 다시 읽거나, 몇 번은 그냥 포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담긴 과학적 철학을 정성껏 오려낸 책의 구성이 멋있었던 까닭에 꽤 오래 붙잡고 놓지 못했다.
공명(p.183)
목 놓아 불러도 당신이 돌아보지 않는 이유는 내가 당신의 진동수를 아직 못 찾았기 때문이다.
아이 손잡고 놀이터에 가서 그네를 밀어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네는 앞으로 움직였다가 내가 서 있는 그네의 뒤쪽으로 다시 돌아온다. 나에게 돌아온 그네가 다시 앞으로 막 움직이려는 바로 그때 그네를 미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렇게 밀어주는 것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면 그네는 점점 더 큰 진폭으로 움직인다.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곧이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아이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네 타는 아이보다 내가 더 즐거웠던 시간이다. 이렇게 그네를 밀어주는 것은 물리학의 공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자로 함께 울린다는 뜻이어서 우리말로 ‘껴울림’이라 한다.
[사견]
과학이 이렇게 시적일 일인가. 과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따뜻함을 내비출때는 대게 깊고 간결하다라는 느낌을 받는데, 그럴 때마다 ‘귀엽다’라는 단어가 떠오르곤한다. 전공이 문과인지라 이과를 전공하신 분들에 대한 낯섦에서 비롯한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무튼 나는 이 포장지 없는 다정한 귀여움을 가지신 학자분들을 존경하곤 한다. 이분들의 진동수를 내가 혹은 나의 진동수를 이분들이 우연찮게 찾아 껴울림 현상이 일어났나보다.
인연(p.112)
우주 곳곳을 돌아다니다 태양의 중력에 어쩌다 묶여서 함께 뭉친 원자들이 모여 지구가 되고, 지구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원자가 어쩌다 모여 내가 되었다. 내가 죽고 나면 이들 원자는 또 곳곳으로 흩어진다. 지금 내 몸을 이루는 원자들의 모임에서 시작해 시선을 과거로 돌려도 미래로 돌려도, 원자들은 공간에 널리 흩어진다. 나는 우연으로 모인 많은 것이 다시 흩어지기 전 잠시 머무는 시공간의 한 점이다.
내 몸을 이루는 수 많은 세포, 그리고 어떨 때는 서로 돕고 어떨 때는 서로 나쁜 영양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수 많은 세균도 내 몸을 이루는 그물의 그물코다. 내 몸이라는 그물망은 꼭 생명만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숨쉬는 공기, 내가 먹는 음식들이 이 모두가 나라는 그물망과 연결된, 나의 밖 그물망의 그물코다.
세상을 연결하는 그물망을 확대해나가면, 결국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 모든 존재가 우주 안의 다른 모든 존재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이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으로 규모를 좁혀보아도 마찬가지다. 나의 삶은 지구 위 모든 이의 삶에 의존하고, 우리 모두의 삶은 지구 위 모든 것과도 연결되어 있다. 결국 우주 전체를 구성하는 그물코 하나인 나는, 나를 제외한 모든 그물코가 없다면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내가 관계의 총합이라면, 우주에서 나를 뺀 모든 것도 결국은 나다. 지금까지의 모든 만남이 바로 지금의 나고, 앞으로 이어질 내 삶의 모든 만남이 미래의 나다. 모두 마찬가지다. 나도 그리고 당신도.
[사견]
물리학의 문맥을 타고 가다 보면 가끔 불교철학과 길이 겹치곤 한다. 이번 챕터가 그러했다. 나는 너고, 너는 나고 너의 경계도 나의 경계도 없는 우리 모두 연결된 하나라는 생각은 물리학과 불교철학을 한 데 묶는다.
가끔 아집이 생기거나, 어떤 괴로움을 느낄때 이 사실을 상기하려고 나는 노력한다. 보잘것 없는 내가 꽤나 자주 보잘 것 없는 감정을 풍선마냥 크게 불어 실로 끈을 묶은 채 놓아주지 못하는 까닭이다.
세상과 나의 거대한 연결성 그리고 나라는 사소함, 흩어지기전 잠시 모인 하나의 작은점에 불가한 인생이라는 장소. 머리로는 다 아는 데 말이다. 가끔은 두려움이라는 뿌연 연기가 시야를 가리는 까닭에 현자들 처럼 위대하게 초연하진 못하다. 내가 나에게 가장 쥐어주고 싶은 가장 1순위의 선물이 초연함인데. 여즉 선물을 주지 못했다. 자꾸 이렇게 지식이라도 쌓아서 한올한올이라도 모으고싶나 보다 초연함을.
[출처] [독서]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김범준|작성자 그냥놔두라그랫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