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문을 열다
박하영
2025년 문학캠프는 유난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 듯 느껴질 만큼 알차고 탄탄하게 준비된 행사였다. 비록 본 행사는 8월에 열렸지만, 김준철 회장을 비롯한 16인의 임원진은 이미 1월부터 줌 회의와 대면 미팅을 통해 세세한 부분까지 철저히 준비해 왔다. 특히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 은희경, 시인 박준을 초청하여 참가자들에게 깊이 있는 강연을 선사했으며, 강연 교재까지 별도로 마련해 문학의 길을 더욱 의미 있게 제시했다.
행사의 서막은 8월 22일(금) 저녁 아로마센터 ‘더 원’에서의 상견례로 올랐다. 미주한국문인협회를 설립하고 이끌어오신 원로 작가들이 참석하여 협회를 위한 덕담과 애정을 아끼지 않으셨다. 한편 올해도 문협 회원들과 신인상 수상자들이 알래스카, 하와이, 앨라배마, 텍사스, 애리조나, 워싱턴, 북가주 등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해 주셔서 더욱 넓어진 미주문협의 네트워킹을 실감케 했다. 한 사람씩 자기소개와 더불어 캠프 참여 소감을 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미주문협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높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이어진 가라오케에서 문인귀 시인의 노래가 울려 퍼지자, 노래는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시던 이윤홍(KALA 회장, 미주문협 한영문학분과위원장) 시인의 노래로 이어졌다. “스승님께서 노래하는데, 제자가 가만있으면 되겠습니까”라고 해서 모두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미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스승님을 깍듯이 공경하는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학의 길에는 기쁨과 고통이 함께하지만, 존경하는 선배 문인들의 발자취를 성실히 따라가며, 서로를 사랑하고 격려하는 문학인으로 살아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캠프 행사는 몇 달 전부터 준비가 시작되었지만, 임원들의 솔선수범과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장소와 준비물 셋업이 차질 없이 제시간에 마무리될 수 있었다. 김향미 부회장의 친절한 안내로 모든 예약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120여 명의 참가자가 모인 행사장은 활기로 가득 찼다. 1부 행사는 토요일 오전 10시에 같은 장소의 웨딩홀에서 박하영 사무국장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시상식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무대 위에는 꽃다발과 상패로 가득 찼다. 특히 여느 단체에서도 보기 힘든 신상 모델 꽃다발이 준비되어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난 상쾌한 분위기를 선사했다.
이날 미주문협의 두 고문, 김호길 시인과 문인귀 시인이 직접 참석해 뜻깊은 자리를 빛내주었으며, 이어 미주문협 이사장과 여러 문학단체 대표, 그리고 이해돈 LA한국문화원 원장의 축사(대독)가 더해져 행사의 격을 높였다. 『미주문학』 봄호와 여름호 신인상 시상식이 뒤를 이었는데, 신인상 수상자들의 소감은 ‘신인’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깊이와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 참가자들의 박수와 호응을 이끌어냈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한 문학공모전에서는 이한비 학생(영문소설)과 이웅희 씨(시)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한비 학생은 멀리 동부에 거주하여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해 동영상으로 진솔하고 기특하다 여겨질 만큼의 깊이 있는 수상소감을 보내왔다. 공모전 수상자는 등단 작가로 간주하니 앞으로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시길 기원한다.
제31회 미주문학상은 정국희 시인에게 돌아갔다. 수상작은 「한 권의 바다」 외 6편이었다. 심사를 맡은 홍용희 문학평론가는 “문학의 본령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며 “정 시인의 작품은 관습적 상상을 넘어 ‘갇힌 너를 열쇠로 꺼내어’ 새롭게 보여주는 시적 미의식을 고르게 성취하고 있다”라고 평했다.
축하 무대는 저명한 테너 이규영과 메조소프라노 김우영의 축가로 한층 뜨겁게 달아올랐고,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부른 가곡을 들으며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2부는 은희경 소설가의 2시간 강연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로 이어졌다. 은희경 소설가의 강의를 들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깊이 있는 통찰력이 그대로 전해졌다는 것이었다. 작품 속에서 느껴오던 예리한 문장력과 인간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이 강의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나, 단순한 문학 해설을 넘어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었다. 특히 글을 쓰는 과정에서의 실제 경험을 솔직하게 나누어 주셔서 큰 울림이 있었다. 작가도 글을 쓸 때 끊임없는 고민과 방황을 거친다는 이야기는, 글쓰기를 어렵게만 생각하던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또한 강의는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청중이 함께 생각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질문을 열어두는 방식이어서, 마치 대화를 나누듯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은희경 작가의 따뜻하면서도 명료한 언어 덕분에 어려운 문학적 개념도 쉽게 다가올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문학이 단순히 책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과 깊게 맞닿아 있다는 점을 다시 느끼게 해주어, 강의를 마친 후에도 여운이 오래 남았다. 은희경 소설가의 강의는 한 마디로, 깊이 있으면서도 따뜻하고, 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경험이었다.
박준 시인의 강연 “생각을 쓰다, 마음을 읽다”는 시라는 장르가 가진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힘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그는 시를 거창한 언어의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순간과 감정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다른 방식의 호흡”이라고 이야기했다. 강연 내내 인상 깊었던 것은 시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는 상실과 고독, 사랑과 그리움 같은 보편적인 정서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면서도 그 속에서 여전히 희망과 위로를 건져 올리는 과정을 들려주었다. 마치 우리가 잊고 있던 감각들을 다시 꺼내 보여주는 듯했다. 일상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감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길어 올려 독자와 나누는 과정이야말로 시가 가진 힘이라는 설명이 마음을 울렸다. 강연을 들으며, 시는 단순히 문학적 장르를 넘어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타인을 이해하게 만드는 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힌 감정에 숨을 불어넣고 상처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며 무엇보다 “내가 살아있다”라는 감각을 되찾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박준 시인이 전해준 시의 의미였다.
강의 중간에는 미주문협 임원들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시극 작품 〈문〉(연출: 김준철)이 무대에 올랐다. 여섯 명의 임원이 각자의 시나리오와 소재를 바탕으로 ‘문’이라는 주제를 풀어내며 관객과 호흡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세계 속에서 하나가 된 듯했다. 나 역시 처음 경험하는 형식의 공연이라 놀라웠고, 문학이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한 참가자는 “문학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듯, 놀라움과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내년에는 꼭 무대에 함께하고 싶다고 밝힐 만큼, 이번 시도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저녁 만찬 자리에서는 따뜻한 대화와 웃음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열린 7080 콘서트는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며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즐거운 마무리가 되었다.
셋째 날인 일요일 오전에는 김향미 부회장의 사회로 각 문학 단체장의 소개와 광고, 타주에서 온 작가와 특별 후원자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이후 두 강사와의 질의응답 시간이 마련되어 참가자들이 궁금했던 부분을 나누며 더욱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개인적으로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글을 쓰고 싶을 만큼 강한 자극을 받았고, 내 글쓰기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번 문학캠프는 문학과 예술이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행사를 빛내주신 은희경 소설가와 박준 시인, 그리고 헌신적으로 준비한 임원진, 회원, 참가자 여러분 모두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박하영 『한국수필』 신인상, 미주한국일보 문예작품공모전 입상, 『미주문학』 소설 신인상, 『해외문학』 소설 작품상, 시카고 모자이크 기독창작문예 공모전 수필문학상 수상. 미주한국문인협회 사무국장, 충현글사랑 회장. 에세이집 『바나나도 씨가 있다』. 단편창작집 『위험한 사랑』. 공저 『천년 숲 서정에 홀리다』, 『비밀의 문』. elenapark3@gmail.com ☏ 714-588-8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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