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23일차 걷기, 이번엔 산행이다, 11.74 km
새벽기온 영상 1℃(비로사 입구 기준), 8.20 km(5.08 hr), 3.52 km(1.11 hr)
비로사- 달발골-비로봉- 국망봉-돼지바위-초암사-죽계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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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답답한 마음은 인적드문 곳으로 찾아가서 맑은 공기 속에서 걸으며 땀 흘리고 힐링도 하는 걸 좋아하는 데, 이번에는 모처럼 마음먹고 소백산 비로봉 등정을 목표로 하였다. 일단 비로봉에 가보고 돌아오는 데, 만일체력이 되고 자신있으면 국망봉으로 돌아 오기로 하고 출발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로 통일신라 진정이 창건한 화엄종 절이며, 계단식으로 된 전형적인 산간 사찰 비로사 [毘盧寺]!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소백산에 있는 그 비로사 주차장. 아직은 컴컴한 새벽 6시반. 산행이 시작된다.
비로사에서 달발골로 해서 비탈진 산길을 따라 비로봉으로 향한다. 어둠이 걷혀지고 날이 새오며 멀리 동녘하늘엔 서서히 먼동이 터온다. 올라 갈수록 숨이 턱에 차오르고 다리는 후덜거려 온다. 매일 같이 파워워킹으로 걸었던 이력이 있는데, 멈출 수는 없지. 걷다가 잠시 한숨 돌리고 다시 걸어 올라 가기를 반복하며 타박타박 걸어 올라 가니 메말랐던 산자락이 옅은 상고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멀리 소백의 능선이 하얀 머리를 들어 하늘을 떠 받히고 있다.
겨울철이면 하얀 눈을 머리에 이어 소백산이라고 불린다.
두시간 반 남짓을 걸어 오른 소백의 산자락은 드디어 9부 능선을 허락하였고, 연화봉에서부터의 하얀 능선이 이어진 비로봉이 이제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정상에선 칼바람이 예상되어 잠시 쉬면서 바람막이 옷을 챙기고 벙어리 장갑을 제대로 끼고 나서야 상고대가 가득한 정상으로 난 데크길을 따라 발걸음을 내딛는다. 겨울산이라서인가? 이른 아침시간이라서 인가? 인적도 드물어 맑은 산공기를 마시는 데 거리낌이 없고 자유롭다.
소백산 비로봉 정상(1,439.5m). 소백산 비로봉 정상에서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상고대.
멀리 산아래서 보면 마치 눈이 내려 쌓인 듯이 보였겠지만 이건 눈이 아니라 상고대이다.
상고대는 순수한 우리말로 “대기 중의 수증기가 승화하거나 0℃ 이하로 과냉각 된 안개, 구름 등의 미세한 물방울이 수목이나 지물(地物)의 탁월풍이 부는 측면에 부착되면서 동결하여 순간적으로 생긴 얼음으로 수빙(樹氷)"이라고도 한다. 산을 오르다 보면 이런 환상적인 광경을 볼 때가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넋을 잃을 정도이며 눈이 만들어낸 설화는 가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진에 취미가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가 자연사진 중에서 탑으로 꼽는 사진으로 상고대을 꼽기도 한다. 순간적으로 얼어붙어 만들어진 얼음(서리) 꽃이어서 인지 신비롭기까지 하다.
올라오며 흘린 땀과 힘들었던 걸음의 당연한 대가치곤 너무 과분하고 감사한 소백산 상고대.
매서운 찬바람을 맨몸으로 맞던 앙상한 나뭇가지가 하얀 솜옷을 걸쳤다고나 할까?
너무나도 아름다운 비로봉의 상고대, 하늘을 보면 너무나 맑은 하늘이다. 어디서도 눈은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무의 솜옷은 커져만 간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승화되어 나뭇가지에 들러붙기 때문이다. 상고대의 가장 대표적인 서리상고대의 모습이다. 이는 그것도 시간을 잘 맞추어 올라야만 볼 수 있다. 필자의 경우에는 새벽산행을 시작하여 오른 탓에 온전히 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비로봉에서 국망봉으로 이어진 하얀 능선을 보았고, 안전산행을 위해 아이젠을 찬 걸음으로 그 능선을 따라 걸었다. 마치 아름다운 얼음 왕국의 분위기에서 볼수록 절로 하얗게 나오는 수 없는 탄성 속에서 시린 손 불어가며 순간을 담기 위해 연신 스마트 폰을 눌러댔다. 비록 눈과 마음에 담는 것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남는 게 사진이다. 그 길에서 끝없이 이어진 상고대를 보며 눈과 마음이 호사를 하면서 온 몸이 땀에 푹 젖어 보았다.
상고대는 바람이 약하게 불어야 하고 공기가 안정하고 특히 안개가 끼면 상고대가 생길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상고대는 영하 6도 이하의 기온과 90% 이상의 충분한 상대습도, 여기에 초속 3m 정도의 바람이 불어 주어야 한다고 한다. 기온이 크게 낮지 않을 때는 한밤에 상고대가 피었다가 해가 떠 기온이 올라가면 바로 녹아버리는데 이런 기상현상이 생기는 조건은 이동성고기압권내라 하며 상고대는 이런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도 항상 생기고 유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상고대 능선을 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비로봉 아래 어의곡삼거리에서 능선을 따라 약 3.2Km를 지나며 드디어 국망봉(1,427.7m)에 올랐다. 연화봉과 비로봉으로 이어진 능선은 하얀 설경처럼 가득한 상고대의 물결이 가득 차 있었지만 시간상 이젠 하산해야 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 300 m쯤 지점에 초암사 코스로 하산 길에 들어섰다.
조금 내려가니 정상의 칼바람이 잦아들고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하산 길에서 칼바람이 환한 햇살에 녹을 때 쯤에 나뭇가지에 환하게 피었던 상고대가 슬피 울기 시작한다. 소백의 남쪽방면 하산 길이 비치는 따사로운 햇살에 상고대가 녹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씩 떨어지던 상고대의 조각들이 무더기로 녹아 흩어지며 떨어지기 시작할 땐 하얀 설도(마치 커터칼날 조각 같다)를 뿌려 댈 땐 거의 환상이었다. 하산 길 아래로 이어진 데크 계단 좌우로 그림처럼 피어있던 상고대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경이로운 광경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간밤에 피었던 상고대의 경치를 맘껏 즐기며 그 사이로 걷고 뒹굴어 보았고(사실 이 정도는 산을 타는 이들이 대부분 볼 수 있는 거라 한다) 바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상고대가 녹아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광경은 나뭇가지가 햇살을 받아 따뜻해지는 즉 상고대가 녹을 수 있는 적당한 날씨와 온도, 그리고 그 시각이 맞아야 한다. 오늘 이 시각은 그 모든 조건이 다 맞은 날! 운수대통 한 날이랄까? 내가 다시 산을 찾는다 해도 다시 이 모든 걸 볼 수는 없다. 언제 다시 이런 호사를 다시 누려 볼 수가 있을까?
초암사 코스로 하산 길에 들어 내려오면서 보이는 돼지바위. 바로 아래가 낙동강 발원지이다.
5 km가량의 지루하다 싶은 하산길, 다리가 풀려 내리막길이지만 만만한 길이 아니다. 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들이 계곡을 가득 채워 푸근한 그 길을 따라 초암사와 죽계구곡을 거쳐 내려와 소백산행을 마무리하다.
안정면 소재지의 한 맛집에서 매운탕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고속도로에 오르기 위해 가는 길에서 이른 아침에 보았던 소백의 하얀 능선은 따사로운 햇살 아래로 사라지고 메마른 모습으로 내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