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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0(목) 가스낀 맑음-암릉길이 조금은 위험한 [백두군자]화양구곡단맥 자투리를 마무리하고 화양구곡 이곳저곳 관광을 하다
화양구곡 답사기
글쓴이 : 우리산줄기 연구 및 답사가 자하 신경수
답사에 필요한 5만분의1지형도 도엽명 : 속리
영진5만지도 : 251쪽
답사한날 : 2020. 09. 10(목) 가스낀 맑음
누가 : 신경수
어디를 :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 화양구곡
화양구곡이란?
백두대간 청화산이 발원지인 화양천이 흐르고 흘러 속리산이 발원지인 달천을 만나는 제일 하류의 약6km 구간에 펼쳐지는 바위벼랑 소 담 바위 등 9가지 절경을 말하는 것으로 합수점부터 시작하여 역으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 이름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이곳에 은거하면서 중국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9개의 절경에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지며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 1641∼1721)가 화양구곡(九曲)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제1곡은 기암괴석이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경천벽(擎天壁),
제2곡은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치는 운영담(雲影潭),
제3곡은 송시열이 효종의 죽음을 슬퍼하며 아침마다 통곡하였다는 읍궁암(泣弓巖),
제4곡은 금싸라기 같은 모래가 흐른다는 금사담(金沙潭),
제5곡은 바위의 모습이 층층이 쌓인 듯한 첨성대(瞻星臺),
제6곡은 구름을 찌를 듯한 바위인 능운대(凌雲臺),
제7곡은 넓은 바위가 꿈틀거리는 용을 닮았다는 와룡암(臥龍巖),
제8곡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바위벽 위에 학이 집을 짓고 새끼를 키웠다는 학소대(鶴巢臺),
제9곡은 옥빛물이 흐르는 눈부시도록 새하얀 너러바위 위에서 신선이 모여 술을 마셨다는 파천(巴串)
2014. 8. 28 국가명승110호로 지정되었다
청화산이 발원지인 화양천이 달천을 만나는 합수점에서부터
화양구곡 여행기라고 할수도 있고 아님 답사기라고도 할수 있고
또는 관광일지라고 하는 것이 더 알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150,
화양천 달천 합수점 화양동 야영장 : 15:30
높은 화양1교 밑을 지나 구 화양교 사거리에 이르면
화양1리버스정류장 수많은 음식점 민박집 팬션
각종 레져시설점 등이 즐비한 곳이다
150, 0.4
화양구곡 입구 사거리 : 15:35 15:40출발(5분 휴식)
우측으로 도로따라 가면서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대형 화양구곡 안내판을 보면서 이제는 이런 유명한 곳도 점점 망가져 간다는 것이
조금은 서글퍼지는 것 같다
속리산국립공원 관광안내소를 지나서도 2차선 도로는 계속된다
우측으로 전망데크가 있어 가보니
개울건너 거대한 암벽이 있는데 안내판에 경천벽이라고 한다
(1남) : 경천벽 : 15:42
개울변으로 목조데크길은 계속되고
우측 계곡 안에서 학1마리가 나른한 오후 한때를 조용히 사색을 하는 모양새다
데크길은 계속되고
팔각정 식당이 있는 드너른 주차장에 이른다
우측으로 성황당이 있어
인상적인 고사목도 한그루 사진도 찍고
화양동대형안내판
탐방지원센터를 지나가지만 아무도 없어 안내팜프릿 하나 얻지 못했다
자동차는 여기까지 들어올수 있고 이후는 걸어가야하지만
그 안에서 장사를 하거나 살고 있는 분들은 아마도 자동차로 드나들 수 있는 것 같다
팔각정식당 탐방지원센터 : 15:55 16:00출발(5분 휴식)
왜 화양동이라고 불릴까요 안내판 즉 화양동 유래판을 지나며 읽어본다
화양동의 유래
조선시대 유학자인 우암 송시열선생의 행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화양계곡은 원래 황양나무(黃楊木, 회양목)가 많아 황양동이라고 불렀으나 선생이 거처를 이곳으로 옮겨와서는 중국을 뜻하는 중화의 화(華)와 일양래복(一陽來復)의 양을 따서 이름을 화양동으로 고쳤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이라는 학자가 얼마나 중국 사대주의에 젖어있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대목이다 그때까지 우리나라에서 고래로부터 불리워지던 마을이름을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듯이 단 한인간의 의지대로 바꾸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바로 이런 성리학에 물든 학자들을 중심으로 중국을 종주국으로 인정하고 우리는 스스로 속국으로 치부하고 조선500년 내내 극심한 사대주의에서 헤어나올 생각도 안하고 실학자들을 배척하고 일기니 이기니 하면서 학파를 조성하고 당이 나누어지게 되며 서로 당리당략 모략 음모로 다른 당을 죽고 죽이는 사화를 일으키며 나라의 발전을 방해하고 결국은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의 빌미가 되었고 그로 인해 나라가 피폐해지고 결국은 일본에게 먹히는 사태가 벌어지고 국민은 도탄에 빠지게 되고 외세에 의해서 나라가 나누어져 지금까지도 통일을 못하고 있는 단초가 된 것이다 이참에 우리의 옛 이름이 황양동이니 지금이라도 중국의 때를 이곳에서나마 벗고 사대주의를 탈피한다는 의미로 지명을 황양동으로 바꾸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멋진 고사목도 보면서
흐드러지게 핀 구절초밭도 보고
우측으로 화양2교로 화양천을 건너면서
한가운데 이르러 좌측으로 드너른 화양천을 바라보면
낮은 보가 설치되어 일단은 물을 가두었다가 흘려보내고 있다
여기만 해도 꽤 알려진 하천이고 상당히 긴 거리를 흘러가기 때문에
보설치가 적정한지는 모르되
암튼 보란 이렇게 작은 지천에 설치하여 물흐름을 조절해주어
산사태 등을 예방하고 작물재배를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해야한다
절대로 큰강에서는 보의 설치가 물의 흐름을 방해하고 썩게하며
수중생태계를 교란하기 때문에 보를 설치하면 안된다
암튼 이번에는 화양천 우측 도명산 밑자락으로 도로따라간다
식당 민박 편의점 등이 나오고
좌측 보설치로 너른 천연수영장이 만들어져 있어
개울가에는 사람들이 들어가 물놀이 등을 즐기고들 있다
개울 건너편으로는 운영암이라는 거대한 바위벼랑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아마도 이바위 아래 고여있는 물을 운영담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2북) : 운영담
도로 우측으로 상당히 규모가 큰 절인가 했는데
그게 그 유명한 화양서원이고 안내데크가 있어
“우암 송시열선생 유적”이라는 팜프릿 한 장 얻는 것으로 끝이고
참 별 희안한 프래카드 한장
"화양서원1박2일선비체험" 사람들이 관심이나 있으려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각마을에 강제로 할당해서 무료로 할수밖에 없지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인기리에 잘 운영이 되면 좋은 일이지만 말입니다
들어가서 이런저런 커다란 건물이나
시골 소박한 작은 3칸 기와집도 구경 하다가 다 구경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
돌아나와 도로따라 가면서 좌측으로 각종 비들이 즐비한 너른 개울가 평지가 있어 가보니
읍궁암 안내판이 있고 개울가를 내려다보니
편편한 바위가 있는데
그리 뭐 특별할 것도 없는데 매일 그곳에서 궁을 바라보며 읍을 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개울가에 있는 평범한 너러바위다
(3남) : 읍궁암
다시 식당가가 나오고
커다란 화양구곡비가 서있어
이곳이 그 유명한 화양구곡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금사담 안내판이 나오고
좌측으로 개울건너 고색창연한 사당같은 집이 한동있는데
선비들이 모여 시문을 논하던 암서제(巖棲齊)라는 당호를 가진 건물이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건너갈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바로 그 건물 밑 물이 고여있는 곳이
금사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4북) : 금사담
다시 민박집들이 나오고
도로 좌측 개울가로 거대한 느티나무2그루가 있는데
바로 그곳으로 자연적으로 징검다리 모양으로 되어있는 돌들을 밟고 건너가야할 것 같다
내 생각일 뿐이다
잠시 바위벼랑 밑으로 길을 이어가다가
다시 좌측 개울가로 화양3교를 건너가기 직전
우측으로 들어가는 목조아취문을 통과해 목조데크길로 가는 길은
바로 도명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첨성대 안내판
바로 그리로 어느 정도 오르면
거대 바위들이 겹겹이 쌓여서 마치 첨성대와 같다 해서
이곳 바위를 첨성대라고 부른다
(5남) : 첨성대입구(도명산 등산로 입구) : 16:30
화양3교를 건너며 좌측 너른 개울을 바라보면
\집채만한 바윗돌들로 마치 수석전시장 같은데
험상굳어서 그런지 무슨 이름이 없다
이번에는 개울 좌측가로 도로따라가며
채운암 올라가는 길목에 거대한 바위가 있는데
안내판에 능운암이라 하고
120M 오르면 채운암이라고 한다
(6북) : 능운암(채운암 입구)
식당가를 지나
와룡암이라는 안내판이 있어서
개울가를 두리번거리며
사진과 닮은 바위를 찾고보니
그저 그렇고 그런 개울가 바위들인데 묘하게 찢어지긴 찢어졌는데
그게 엎드린 용을 닮았다 해서 와룡암이라 하는데
나는 아무리 보아도 그게 용을 일도 닮지 않았으니 이를 어쩌리요^^
(7북) : 와룡암
잠시 가면
이런저런 안내판들이 즐비한 곳에
이정목이 있다
지나온 주차장2.5, 직진하면 자연학습원2, 우측으로 철교를 건너면 학소대
학소대에서 계속 산으로 오르면 도명산2.8
학소대 안내판
가령산 무영봉 도명산 등산로 안내판
이래서 지나온 도명산입구로 올라 이곳으로 내려와
도로따라 도명산입구로 가면 도명산환종주코스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철교 앞으로 가
확소대를 바라보면 개울가 남측으로 거대한 바위벼랑인데
글쎄요 그런 곳을 학이 둥지를 틀고 살고 있을까 ^^
190, 4.4
(8남) 학소대 입구 : 16:50 16:55출발(5분 휴식)
개울가로 이어지던 도로가 점점 북측 사면으로 올라가더니 벼랑가로 이어지다가
절벽을 타고 내려가는 거북바위 안내판과
거북바위를 보고 잠깐 가면
파천 안내판
우측 돌길로 내려가면 파천(巴串)가는 길 안내판이 있다
쓰기는 串이라 쓰고 보통은 곶이라 읽는데 여기서는 꿰미천이라 읽는다
그 외 익힐관 꼬챙이찬으로 읽히기도 한다
곶이란 바다로 길게 돌출한 육지의 끝을 보통 곶이라 한다
호미곶, 장산곶 등이 그 예다
그런데 이곳은 바다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런 지형이 아닌데도
왜 굳이 串자를 썼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마도 그런 지형이 아니라 너른 암반위에 무슨 꼬챙이로 뚫어서
꿰맨자국이 있어서 꿰미천串자를 쓴듯하다
실제로 드너른 개울가로 내려가보면 하얀너러바위들이 개울 이쪽 저쪽으로 즐비한데
그중에서도 이곳에서 내려간 북쪽 개울가로 있는 새하얀 눈부신 너러바위 위에는
신선들이 술한잔 마시며 잔을 놓았던 자리가 흡사 공룡발자국처럼 즐비한데
아마도 그 생긴 모습이 잔으로 바위를 뚫고 놓았다가 들고 마시고
또 술잔을 따라받아 다른 구멍을 뚫고 놓았다가 마시는 것을 반복하면서
수많은 구멍을 뚫어서 궤미에 꿴 상태를 닮았다고 해서 파천이라고 한 것 같다
내 나름대로의 해석이니 좀 어거지가 섞여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해석을 할수도 있다고 이해하고 지나가시길 바라고
정말로 그렇게 쓰ㅜ고 일은 연유를 아시는 분이 계시면 댓글로 조언 부탁드립니다^^
파천입구 : 17:10
우측으로 너른 돌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사방에서 물이나와 길을 적시고 있다
우측으로 크게 한번꺾여서 내려가면 드너른 개울가로
건너편이고 이곳이고 백옥같은 하얀 너러바위들이 즐비하다
전부 파천이다
그리고 물길은 전부 옥빛이라 신비를 머금은 듯하다
우측으로 길이 이어지며 개울가로는 금줄이 쳐져있어 더 이상 들어가지 말라 하고
거대한 언더바의 밑에는 향불을 피운 흔적들이 있고
더 진행해
지금은 운영을 중단한 이동지원센터 작은 건물 한동이 썪어가고 있다
옥색물이 흰 포말을 일으키는 하얀바위 위에 앉아서
우렁찬 물소리를 들으며 하늘나라 신선님들에게 고시레도 하고
술잔자리에다 내술잔을 놓아보니 고목나무 매미보다 작더라^^
꿈결같은 정지된 시간들이 흐르고 술도 떨어지고 일어나야지
(9북) : 파천 : 17:20 17:40출발(20분 휴식)
내려간길 그대로 돌길로 올라
다시 파천입구 도로에 이른다
230, 6.2
파천입구 : 17:50
다시 도로따라가는데 세상에 죽었다 깨어나도 낙석이 떨어지지 않을 자리에
“낙석주의” 안내판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는다 ^^
도로변 거대한 얼굴바위 : 17:55
낙석위험지역 안내판이 붙은 도로 변을 차단한
철울타리에는 철대문이 있고 번호잠글통(자물쇠)이 채워져 있고
길은 우측 벼랑가로 목조대ㅔ크길로 이어진다
낙석의험지역 목조데크우회길 : 18:00
우측 계곡으로는 불빛이 옥색이라 이곳이 천상이나 천국이냐 도솔천이냐^^
무슨 조화속이냐^^
좌측 산사면 사방에서는 깨끗한 물이 콸콸콸
마스크한 얼굴바위 지나
사람없는 탐방지원센터 계수기 지나
18:10
충북자연학습장 지나
32번국지도 삼거리에 이르면
우측으로 거대한 화양구곡 안내판이 있고
그리로 화양천을 건너 가령산 등산로가 있지만 지금은 물이 많아서 입산금지란다
삼거리 길건너편에는 목하 영업을 하고 있는 자연식당겸 민박집이라고 한다
7.5
32번국지도 충북자연학습원 삼거리 : 18:20
그후
진즉에 불러놓은 택시가 오거나 와 있어야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는다
그러고보니 헨폰 밧데리가 0이 되어 통화를 할 수가 없다
보조밧데리를 장착하고 기다렸다가 조금 충전이 될 때 전화를 해보니
중간에 전화를 받지않아 버스나 다른 차로 간줄 알고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이런 지기럴 뭐 이런 경우가 다있나 싶지만 어쩌누←
그런데 웬녀러 괴산 시내버스가 상판리를 향해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이런 택시를 다시 불러놓았으니 취소를 할수도 없구
기분 좋으려면 그 버스가 종점에서 다시 나오기 전에 택시가 도착하면 좋은데
다시 버스가 괴산으로 갈 때 타지 못하고 택시를 더 기다리면
그때 속터지는 것을 경험 안해본 사람들은 그 심정을 모른다
무려 1시간이나 기다려 다행히도 버스보다 일찍 도착해
괴산 동진파크에 도착하니 19:50분이다
그 시간에 영업할 식당은 별루일 것 같아
그 쟁반돼지밥막국수 집으로 가다가 아성교통 가기전
민들레칼국수 집이 있어 들어가 저녁을 했는데
맛은 그저 그렇다 두 번 다시 갈 집은 못되더라
시외버스터미널 앞 길건너 24시편의점에서
내일 아침용 도시락과 오뎅 그리고 고시래용 소주와 생맥주를 챙겨
모텔로 돌아가 젖은 빨래 전부 다시 빨아서 널어놓고
내일 복수혈전으로 답사할 [백두]칠보단맥 도상훈련하면서
밤을 지세운다
더 자세한 화양구곡에 대해서 궁금하신분은
카페 "독립군의 산이야기"회장님이신 범솥말님이 작성하신 화양구곡이야기를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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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화양계곡은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엄청 다녔던 곳이고요,
사진상으로 보니 눈에 익은 곳이 여럿 보이는데,
국립공원으로 편입되면서 바뀐것도 꽤 있네요.
오래전 추억을 되살려 주심에 감사의 말씀 드리고요,
긴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네요,
마무리 잘 하시고요,
또 답사의 길, 자~알 이어 가시길 기원 합니다!!!
기억에 없는 것을 보니 저는 처음 가본 곳 같았지요
바쁘게 주마간산격으로 둘러보아 깊은 것까지는 못느꼈지만
그런대로 한두번 정도는 다닐만 한 곳이란 생각은 들었지요
추석연휴 활발한 산길 보기 좋았구요
우리산하사랑 계속 죽 이어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