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은 중국 원나라 말, 명나라 초기의 혼란기에 생존한 묘협 스님의 ‘보왕삼매염불직지’ 안에 있는 스물 두 편의 글 중 ‘십대애행’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1.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2. 세상살이에 고난 없기를 바라지 말라. 3. 마음공부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4. 수행하는 데 마魔 없기를 바라지 말라. 5.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6. 정을 나누되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7.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하기를 바라지 말라. 8. 덕을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말라. 9.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10. 억울함을 자꾸 밝히려고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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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
念身不求無病身 無病則貪欲易生(일 염신불구무병신 무병즉탐욕이생)
是故聖人設化, 以病苦為良藥(시고성인설화, 이병고위양약)
우리는 누구나 몸에 병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병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고뇌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인 고뇌를 불교에서는 간략하게 네 가지로 표현합니다. 태어나는 고(苦), 늙는 고, 병드는 고, 죽는 고, 바로 생로병사(生老病死)이지요.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태어난 자가 죽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은 죽지 않기를 원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죽지 않기를 원하니 괴로울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이것을 고통으로 보니 고통이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하나의 현상입니다.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 바닷물의 현상인 것처럼 천하 만물은 봄이 되면 싹이 트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는 것은 하나의 자연 현상입니다.
파도가 출렁이는 것이 고통입니까? 잎이 피고 지는 것이 고통입니까?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자연현상 중 하나입니다. 자연현상을 두고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그런데 인간은 자기 생각에 빠져 하나의 자연현상을 잘못 생각해서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자연현상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생명의 원리라 하며 그것을 찬탄합니다. 봄에 움이 트는 것을 찬탄하고 꽃 피는 것을 찬탄하고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찬탄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몸에 대해서만 이 자연현상을 거부하고 싶어 합니다. 나를 떠나서 세상을 본다면 그것은 하나의 자연현상일 뿐인데 나에게 사로잡혀 자연현상을 거부하기 때문에 큰 고통이 됩니다. 그러니 이러한 제 현상, 즉 법의 실상을 안다면 몸에 병이 나지 않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몸에 병이 나는 것은 그냥 하나의 자연현상이지요.
어떤 기계를 만들든지 그 기계가 가끔 고장이 날 때가 있습니다. 고장이 안 나는 기계는 없어요. 기계가 고장 나면 수리하면 됩니다. 고장 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고장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요. 기계가 고장 날 때는 날 수밖에 없는 어떤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니 기계가 고장 났다고 신경질 낼 것이 아니라 고장 나면 고치면 됩니다. 고장이 나면 고쳐 쓰면 되고, 고장이 덜 나도록 사용할 때 유의하면 됩니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경과되면 더 이상 수리할 수 없는 정도가 되고, 수리하는 경비로 많이 듭니다. 이것을 계속 수리해서 유지시키려면 새로 기계를 사는 것보다 훨씬 비쌉니다. 그럴 때는 폐기처분하는 것입니다. 그럼 폐기처분하는 것이 손실인가? 손실이 아니에요. 그동안 충분히 썼으니까요. 우리의 몸도 그와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 몸에 병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죠. 잔고장이 나면 고치고 그 차의 상태를 잘 알아서 조심을 하게 마련입니다. 자동차가 잔고장이 많이 나면 과속을 안 하게 되지요. 그런데 자동차가 아무 고장이 없고 속도도 잘 나면 과속할 위험이 있습니다. 과속을 하면 사고 나되 죽는 수가 있지요. 그래서 몸이 건강한 사람들이 한 번 아파서 병원에 가면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 몸이 전혀 아프지 않았던 사람들이 장수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잔병치레 하는 사람이 오래 산다.’는 옛 말이 있지요. 왜냐면 몸을 조심하거든요. 몸을 조심해서 그때그때 잘 처치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고장이 전혀 안 나면 과신하게 됩니다. 과신하게 되니까 어느 순간에 큰 사고가 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배고픈데 밥 먹으려는 게 탐욕인가? 졸린데 자는 게 탐욕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욕구라고 합니다. 욕구가 지나치면 탐욕이라고 하지요. 중생이 갖는 욕심을 보통 오욕 - 식욕, 색욕, 재욕, 수면욕, 명예욕 - 이라고 합니다. 몸이 건강하고 병이 없으면 이런 것이 더 일어나게 됩니다. 몸에 병이 없으면 여러 가지 탐심이 생겨나서 수명을 단축시키고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육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살면서 연관 맺는 모든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뭐든지 힘이 남아돌게 되면 과욕을 부리게 됩니다. 그런데서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는 것입니다.
만약 몸에 병이 났으면 병의 원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병의 원인을 살펴보면 다 병이 일어날 만한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다만 그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내가 큰 재앙이라도 맞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병고를 통해 자기가 이제껏 살아온 인생을 반성하고 돌이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그저 절에 와서 절 몇 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제법(諸法)이 공(空)한 도리, 욕심을 버리는 행위’가 될 때, 바로 기도가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될 때, 나에게 있는 병이 내 삶의 약이 되고, 내 삶을 반성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병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이 몸은 생로병사(生老病死)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병은 생기는 것이지요. <유마경>을 보면 병이 난 유마거사는 자신의 병을 방편 삼아 설법을 합니다. 병을 고쳐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몸이라는 것은 병들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우치는 방편으로 쓰지요.
이렇게 생로병사는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병이 낫고 안 낫고를 떠나서 병에 구애를 안 받는 것이 근본 가르침이고 그 다음으로는 병의 원인이 이런 과욕으로 생겨난 줄을 알아 그 과욕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병이 낫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고
탐욕이 생겨나면 마침내 파계하여 도에서 물러나게 되느니라.
몸에 병이 없으면 과욕을 하게 되고 과욕은 계율을 깬다.
계율을 깬다는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기본선을 깨뜨리게 되는 것이다.
병의 인연을 살펴서 병의 성품이 공한 것을 알면 병이 나를 어지럽히지 못한다.
설령 병이 있다 하더라도 나를 어지럽히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병에 구애받지 않음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여러분들도 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나치게 민감하지 말고 ‘몸이라는 것은 잘 다스려 써야 하지만 때로는 고장이 날 수도 있다, 고장이 나면 수리해서 쓰면 된다.’ 이런 가벼운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 몸에 고장이 났을 때 원인이 있기 때문에 그 원인을 잘 찾아서 수리해서 쓰면 됩니다. 그런데 원인을 찾아 병원에 가서 어디가 나쁘다하는 결과를 듣고는 그 결과에만 매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현대인 병의 80퍼센트는 정신적 과욕, 스트레스이고 거기에 따른 과식, 따라서 온갖 과욕에서 병이 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돌이켜서 여러분이 마음을 가볍게 가지고 베푸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뭔가를 얻기 위해 나를 고집하고, 뭔가를 움켜쥐기 위해 애를 쓸수록 몸과 마음에 병이 듭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부터 고개를 숙이고 상대에게 “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면서 가정생활부터 가볍게 할 때, 여러분들의 건강도 좋아집니다.
[출처]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강의 : 월간 정토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