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관문서자고
- 박지원
글이란,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내면 그만일 뿐이다. 제목을 놓고 붓을 잡고는 문득 옛 사람이 쓴 어구를 생각해 내고 억지로 고전의
지취를 찾아 내며, 생각을 근엄하게 꾸미고 글자마다 장중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것은, 비유하자면 화공을 불러 초상화를 그릴 적에
용모가 고쳐져 나오는 것과 같다. 눈동자는 구르지 않고 옷은 주름살도 잡히지 않아서 그 평상시의 모습을 상실하고 보니 아무리
훌륭한 화가라 하더라도 그 참모습을 그려 낼 수는 없는 것이다. 글을 짓는 것 또한 이와 무엇이 다르랴.
말은
꼭 거창한 것만 골라 해야 맛이 아니다. 한 푼, 한 호, 한 리만 한 것도 다 말할 만한 것이다. 기왓조각 따위 같은 것이라고
해서 버릴 것인가? 그래서 도올( 兀)은 몹쓸 짐승이지만 초나라 역사는 그 이름을 가져다 썼고, 사마천이나 반고 같은 역사가도
사람을 때려 죽이는 일을 예사로 하는 흉악한 도적의 사적을 서술했던 것이다. 글을 쓰는 데에는 오직 진실해야 하는 것이다.
- 좋은 글의 요건
이로써
본다면 글을 잘 쓰고 못 쓰는 것은 나에게 있고, 헐뜯거나 칭찬하는 일은 남에게 있다. 비유하자면 저 이명과 코골기와 같은
것이다. 조그만 아이가 뜰에서 놀고 있는 중 그 귀가 앵 하고 울자 그 아이는 그만 혼자서 신이 났다. 그래서 그 동무에게 가만히
이렇게 속삭였다. "얘, 너 이 소리 좀 들어 봐. 내 귀에서 앵 소리가 나네. 피리 부는 소리, 생황 부는 소리가 다 들린다.
마치 별처럼 동그랗게 들린다." 그 동무가 귀를 가져다 맞대고, 아무리 들어 보아도 아무것도 들리는 것이 없다고 하니, 그
아이는 딱하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남이 들어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한번은
어떤 시골 사람과 같이 자는데, 그는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았다. 마치 숨이 막히듯, 휘파람을 부는 듯, 탄식을 하는 듯, 한숨을
쉬는 듯, 불을 부는 듯, 물이 끓는 듯, 빈 수레가 덜컥거리는 듯한데 들이쉴 때는 톱을 켜는 듯하다가 내쉴 때는 돼지가
씨끈거리는 듯했다. 같이 자던 사람이 흔들어 깨우자, 그는 불끈 화를 내면서 말했다. "내가 언제 골았단 말이오?"
아하!
자기 혼자만 아는 것은 남이 몰라 주어서 늘 걱정이요, 자기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남이 일깨워 주는 것은 마땅찮다. 어찌
코나 귀에만 이런 병통이 있겠는가? 글을 쓰는 데에는 이보다 더욱 심한 바가 있다. 이명은 병이다. 그런데도 남이 들어 주지
못하는 것을 딱하게 여긴다. 그러나 하물며 병도 아니 것을 몰라 줄 때에야. 코를 고는 것은 병도 아니다. 그런데도 남이 흔들어
깨우는 것에 골을 낸다. 그러니 하물며 그 병통을 일깨워 줄 때에야.
- 다른 사람들에 의한 비평
그러므로
이 문고를 보는 사람이 기왓조각이라 해서 버리지만 않는다면, 화가의 붓끝에서 흉악한 도적의 구레나룻이 뻗친 험상궂은 꼬락서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명은 들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코를 고는 것만 일깨워 준다면 거의 각자의 본의가 될 것이다.
- 글쓴이가 자기 문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자기의 글이 거칠고 보잘 것없지만 독자들이 읽고 비평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
작자 : 박지원
형식 : 수필
성격 : 비유적, 설명적,
주제 : 글의 표현과 비평에 대한 올바른 이해
푼 : 비율을 나타내는 단위. 1푼은 전체 수량의 100분의 1로, 1할의 10분의 1이다.
호 : 길이의 단위. 1호는 1리(釐)의 10분의 1로 약 0.333mm에 해당한다.
리 : 비율을 나타내는 단위. 1리는 전체 수량의 1,000분의 1로 1푼의 10분의 1이다.
지취 : 어떤 일에 대한 깊은 맛, 또는 오묘한 뜻.
이명 : 청신경에 병적 자극이 생겨 어떤 소리가 잇달아 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
이
글에서 글쓴이는 자기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내는 진실한 글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글을 꾸미려고 하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드러내기 어렵고 드러내더라도 가식적으로 되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이란 잘 쓴 것이건 못 쓴 것이건 간에 오직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그렇게 쓴 글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몫이라는 점을 이명과 코골기의 비유로써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