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젠 안개 비가 내렸다. 유학 시절의 빠리가 생각났다. 겨울 내내 이런 비가 내린다. 그래 사람들은 빠리의 '맬랑꼴리(Melancolie, 우울)'라고 한다. 그러나 난 꽉 찬 물(水)요일을 보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공동체를 회복하고, 대전 연구단지의 재생을 꿈꾸고 논의하는 아침 커피 모임("대덕몽")과 동네 분들과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를 통한 인문학적 통찰을 공유하는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어제는 내가 좋아하는 소프라노 임선혜를 만나는 <2018 바로크 뮤직 페스티벌> 마지막 날 연주회까지 즐겼다. 그리고 어제 오후에는 격주로 둔산 도서관에서 <『화엄경』 함께 읽기>하는 모임을 주관했다. 내 삶의 목표는 지금 여기서 보람 있는 일을 하며, 구체적으로는 유교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불교의 '육 바라밀'을 실천하면서 인성(人性)을 고양시켜 우주가,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다가, 자연의 순리(順理)처럼 때가 되면 후회 없이 퇴장하는 것이다. 지난 것은 잊고, 다가올 미래에 두려워 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가진 것에 만족하며 순간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떠나는 가을에 우는 "가을비"가 슬피 울더라도.
가을비/ 조병화(趙炳華)
무슨 전조처럼 온종일
가을비가 구슬프게 주룩주룩 내린다
나뭇잎이 곱게 물들다 시름없이
떨어져서 축축히 무심코
여기 저기 사람들에게 밟힌다
순식간에 형편 없이 찢어져서
꼴사납게 거리에 흩어진다
될 대로 되어라, 하는 듯이
그렇게도 나뭇가지 끝에서
가을을 색깔지어 가던 잎새들도
땅에 떨어지면, 그뿐
흔들이 버리고 간 휴지조각 같다
아, 인간도 그러하려니와
언젠가는 나의 혼도 그렇게 가을비 속에
나를 버리고 어디론지 훌쩍 떠나 버리겠지,
하는 생각에 나를 보니
나도 어느새, 가을비를 시름없이
촉촉히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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