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2(2:1~7, 3:2~5)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다
다윗은 사울이 죽은 후에도 시글락에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다윗은 그가 사울로 부터 쫓기는 생활을 할 때 사울 몰래 경제적으로 도와준 고마운 은인들을 기억하며 그 사람들에게 아말렉으로 부터 탈취한 탈취물을 조금씩 선물로 보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때 까지 다윗은 시글락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며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선지자 갓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다윗에게 헤브론으로 올라가라고 말씀을 하셨으므로 다윗은 그의 아내와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을 모두 데리고 헤브론으로 올라갔다. 헤브론 성에서 다윗은 유다 족장과 장로들에 의해서 기름부음을 받고 유다의 왕으로 책봉이 되었다. 다윗이 왕이 되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들의 이야기는 3장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너무 짧아서 여기에 포함을 시켰다. 그 시대에는 피임 방법이 없었으므로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이나 갈멜 여인 아비가일의 경우 시글락이나 십 광야에서 자녀를 출산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관한 기록은 없다. 다윗이 왕이 될 때 그의 나이는 30 세였으므로 사울과의 인연은 13~15 년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다윗은 20 세가 되기 전 부터 사울의 미움을 받았으며 20 세 초반 부터는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삶과 죽음과의 경계 선상에서 약 10 년 정도를 살았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지도자였다. 다윗이 왕이 될 때 그의 수하에 용감한 장수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군사를 훈련 시키고 군대를 이끄는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유다 각 지역과 헤브론에 그를 따르고 도왔던 장로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인재를 등용해서 정책을 맡기는 일에도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어찌보면 다윗이 사울로 부터 고난을 당하고 억울하게 쫓기는 생활을 했던 것만 같지만 그 기간 동안에 다윗은 1)인내심을 배웠고 2)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체험했으며 3) 많은 용사들과 능력있는 인재들을 곁에 둘 수 있었다. 4) 다윗은 가난에 처할 줄도 알고 부에 처할 줄도 아는 지혜를 체득했으며 5)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6) 모든 권세와 힘은 하나님께로 부터 오며 하나님이 주신 능력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귀하게 사용해야함을 알게 되었다. 7) 다윗은 젊은 나이에 가난하게 쫓기는 생활을 하면서 지도자로서의 덕망과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자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삼하2:1)
다윗은 사울의 전사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이 계실 때 까지 몇 개월 동안 시글락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다윗은 사울이 죽었으므로 유다 땅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께서 선지자 갓을 통해서 말씀을 주셨다.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서쪽 약 40km 지점에 있는 성읍으로유다 지파의 중심부에 있는 성읍이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윗은 헤브론으로 올라갔다.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또 자기와 함께 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삼하2:2~3)
다윗의 두 아내가 소개 되는데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이 먼저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 다윗이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하기 전에 아히노암을 먼저 아내로 맞이하였던 것 같다. 다윗은 두 아내를 데리고 헤브론으로 올라 갔으며, 다윗을 추종하는 600 명의 용사들과 그의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헤브론으로 올라갔다. 다윗이 시글락에서 헤브론으로 가는 길은 600 명의 용사들과 그들의 가족 약 2,000 명과 수많은 소와 양과 염소와 낙타와 나귀가 있었으므로 매우 웅장한 행렬이었을 것 같다. 헤브론은 해발 약 927m의 비교적 높은 요새화된 성읍이었다.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삼았음이니라 하니라"(삼하2:4~7)
다윗은 그의 가족들 앞에서 사무엘로 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일이 있다.(삼상16:13) 다윗은 동족인 유다 지파의 장로들로 부터 공개적인 기름부음을 받으며 공식적으로 유다의 왕으로 취임을 하였다. 이로서 다윗은 두 번의 기름부음을 받았다. 헤브론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취임을 할 때 까지 유다의 수도가 되었으며 왕이 거하는 왕도가 되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시신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매우 궁금했으므로 알아보도록 명령을 내렸던 것 같다.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수습하여 장사를 치뤄졌다는 보고를 받게 되었다.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로 전령을 보내어 그들이 한 일을 치하를 해주고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 주실 것이라는 말을 전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유다의 왕이 되었으니 나를 도와서 블레셋에게 원수를 갚는 일을 하자는 뜻을 전했던 것 같다.
다윗의 아들들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넷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아들이요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들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들이더라"(삼하3:2~5)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으로 있을 때 낳은 아들들이 소개되고 있다. 맏아들 암논은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이 낳은 아들인데 이복 여동생 다말과 강제로 동침을 하고 버렸으므로 압살룸에 의해 살해를 당했다.(삼하13장) 둘 째는 길르압인데 아비가일의 아들이다. 그에 대한 기록이 없으므로 그가 일찍 죽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길르압은 선하게 살면서 정치에 욕심을 두지 않고 살았으므로 그에 대한 기록이 없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셋 째는 압살룸인데 자기 동생 다말의 일로 이복 형 압논을 살해하고 반역을 일으켰다가 요압의 손에 비참하게 죽은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술은 요르단 강 상류 동쪽 지경에 있던 작은 독립국인데(수13:13) 다윗 왕이 도피생활을 할 때 도움을 주었다. 그로인하여 다윗 왕은 그술 왕의 딸 달매와 정략적인 결혼을 하고 그 사이에서 압살룸을 낳았다. 넷 째는 아도니아인데 훗날 솔로몬과 왕위 다툼을 벌이다가 비참하게 죽게 되는 인물이다.(왕상1:5~2:25) 그의 모친 학깃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다. 다섯 째는 스바댜인데 그의 모친 아비달과 함께 알려진 정보가 없다. 엿섯 째는 이드르암인데 그의 모친의 이름에만 아내 에글라라는 호칭이 붙는다. 따라서 에글라가 첫 아내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다윗의 아내였던 사울의 딸 미갈은 발디엘에게 재혼한 바가 되었으나 헤브론에 있을 때 다윗이 다시 데려왔다.(삼하3:14~16) 미갈은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였다.
첫댓글 아멘
다윗은 어려운 시절을 자기의 삶의 질을
높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더욱 거듭나 하나님의 역사에 큰일을 하신것 같습니다 다윗의 삶은 우리의 삶의 선배로서 신앙의 선배로서 존경합니다
다윗이 겪은 환난을 통해서 다윗이 지도자로서의 덕목을 갖추게 되었다는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겪는 시련과 환난을 통해서 우리도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되겠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며 10 년 동안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을까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다윗이 드디어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을 환난에서 지켜주시고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