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춘>
차이나타운 패루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공화춘이다. 사실 짜장면 효시 1912년 개업한 공화춘과는 관련이 없다는데, 짜장면 맛만은 나무랄 데 없이 이름값을 한다.
1. 식당얼개
상호 : 공화춘
전화 : 032) 765-0571
주소 : 인천시 북성동 3가 5-6(중구 차이나타운로 43) 공화춘 차이나타운1호점
주요음식 : 짜장면
2. 먹은음식 : 공화춘짜장면 10,000원
먹은 날 : 2020.5.13.저녁
3. 맛보기
1)
짜장면 차림새는 여느 중국집과 다를 게 없다. 단무지와 양파와 춘장, 그리고 면과 짜장이 분리되어 각각 담겨 나왔다. 그냥 짜장면이 아니면 간짜장부터는 분리되는 방식이 그대로다.
짜장면 맛은 짜장이 좌우한다. 갖가지 재료가 들어간 짜장 위에 적당히 매운 고추가 고명으로 상당히 얹혀있다. 짜장에 고추? 그런데 많이 맵지는 않은 고추가 새우, 오징어 등 실속 있는 거섶들과 함께 맛을 개운하게 해준다.
새우와 오징어가 잔뜩 들어 있다. 거섶이 고급지고 화려한 만큼 맛도 화려하다. 동네 짜장과는 현격하게 높은 우아한 맛을 낸다. 양념이 어우러진 부드럽고 풍성한 맛이, 춘장맛이 강한 짜장면보다 깊다. 윤기나는 모양새도 입맛에 한몫한다.
면발이 쫄깃거려 좋다. 중국 자장미엔은 수타면이 거의 없다. 면으로 유명한 나라지만 자장미엔에는 별로 공을 들이지 않는 거 같다. 맛이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짜장면은 손으로 쳐서 만든 면발이다. 쫄깃거리고, 노랗게 빛깔도 좋다.
2)
거섶 속에 햇양파가 잔뜩 들어 달근하게 맛을 돋운다. 짜장면은 양파가 있어야 제맛이 난다. 양파는 지금이야 모두 양파라 부르지만 오랫동안 일본어로 다마네기라 불러왔었다. 일제 시대에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개화기에 미국과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본도 미국에서 들여왔다는 설이 있다. 우리가 다마네기, 둥근파를 버리고 양파를 택한 것은 도입 근원지를 밝혀 적은 것이다.
양파 생산이 늘어난 것은 1960년대다. 경남 창녕은 1969년 1,000여 hr를 생산하며 국내 최고산지로 떠오른다. 창녕양파장류연구소가 있어 양파를 전문적으로 연구한다. 양파는 이때부터 대량생산되기 시작하여 짜장면에도 양파 사용이 늘어난다.
양파 사용이 많은 것은 중국과 다른, 한국 짜장면의 특성이다. 짜장면 맛은 양파와 떼놓을 수 없다. 양파는 달착지근한 맛 외에도 짜장면다운 식감을 내주는 것으로도 중요하여 우리의 기억 속에 짜장면의 기본 이미지로 각인된다 .
4. 먹은 후
1)
짜장면은 한국의 음식이다. 산동 중국인들이 가지고 온 중국음식에서 한국식으로 변형되고 발전되어 한국음식이 되었다. 중국의 자장미엔과 한국의 짜장면은 이제 거리가 한참 멀어져 자장미엔이 근원인지조차 의아할 정도로 다른 음식이 되었다. 짜장면은 음식 자체가 다를 뿐만아니라 누구나 어린 시절의 외식 체험의 주연이 될 만큼 추억속에서도 우리 음식이 되었다. 문화적으로도 한국음식으로 정착한 것이다.
한국인이 가는 곳은 어디나 짜장면집이 있다. 불고기나 김치찌개집을 데리고 다니는 것만큼이나 짜장면집도 교포들과 함께 간다. 중국 북경에도 상해에도 태국 방콕에도 있다. 미국 뉴욕, 샌프란시스코, LA에도 보스톤에도 있다. 캐나다 토론토, 벤쿠버에도 심지어 칠레 산티아고에도 있다.
많은 곳에서 한국처럼 배달도 똑같이 한다. 그런 곳에서는 아예 간판을 한글로 달거나 메뉴에 한글과 현지어 공동 표기를 한다. 미주쪽의 짜장면집은 대개 한국에서 살다 이주한 화교들이 개업한 경우가 많다. 화교는 한국인과 음식에서는 특히 한 몸인 셈이다. 나중 세계 각국에 있는 한국식 짜장면집을 모두 모아 보면 재미있을 거 같다. 한국의 이민사와 짜장면은 같이 갈 거 같다.
문화는 다른 문화와 접촉, 수용하면서 변화한다. 중국음식도 마찬가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광동요리에도 프랑스, 포르투갈 등등 많은 나라음식의 영향을 받고 수용하며 발전하였다. 광저우는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로 지단단타를 든다. 프랑스 에그타르트다. 중국 자장미엔에서 우리 짜장면이 나온 것은 우리 한식의 확산이자 진화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북경에 머물 때는 오랜만에 한국에 오면 반드시 짜장면을 먹었다. 물리게 중국음식을 먹어도 그리운 것은 짜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자장미엔은 짜고 맛이 단순하고 면도 쫄깃거리지 않는다. 고명으로는 오이채 몇 가닥이 전부다. 소스만 다른 것이 아니고 짜장에 들어가는 온갖 채소 양념들이 다 빠져있어 매우 단순하다. 물론 양파도 들어있지 않다. 중국식 된장 텐멘장에 돼지고기를 볶은 되직한 소스를 얹어 비벼서 먹는다. 짜고 깊은 맛이 없다.
산동 반도에서 유입된 화교들이 개항한 인천에 거주하면서 1912년부터 공화춘에서 처음 짜장면을 팔았다. 그때는 지금과 조금 달랐을 것이다. 지금의 짜장은 1948년 화교 왕송산 씨가 텐멘장에 캐러멜을 넣어 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양파 생산이 늘어나면서 양파 거섶을 다량 사용하자 더 많이 달라졌다. 이후 새로운 짜장면들을 개발하면서 맛이 또 진화했다. 전주와 군산에서는 검지 않은 물짜장을 많이 먹었다.
짜장면은 그렇게 널리 깊게 다양하게 퍼져나각며 우리 음식문화가 되었다. 짜장면이 이렇게 다양하게 진화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짜장면, 간짜장, 물짜장, 삼선짜장, 사천짜장, 쟁반짜장, 유슬짜장 등등, 엄청 다양하게 진화했다. 거기다 인스턴트 짜파게티까지 더하면 진화의 폭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
짜장면 진화는 지금도 멈추지 않는다. 쟁반짜장이 나온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2000년대 이후부터이다. 짜장면을 쟁반처럼 큰 그릇에 담아주어서 쟁반짜장이지만, 양념이 더 고급화되어 하나의 요리가 되는 내용상의 변화도 있다. 한국음식으로의 정착에만 만족하지 않고 계속 내용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짜장면이 한국 교민들과 함께 각국으로 보급되고 있는 것은 짜장면의 수용 공간의 진화, 수용층의 국제화이다. 짜장면의 조리와 수용층의 확대는 한국인의 국제화와 더불어 지속될 것이다. 거기다 최근에는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 덕분에 세계화가 한층 가속화되고 있으니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2)
한때 발음은 짜장면으로 하면서 쓰기는 자장면으로 하는 표기법이 원칙인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짜장면이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언중은 발음도 표기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나운서나 관련 전문가들이 자장면이라고 해도, 공식적인 표기를 자장면으로 해도, 언중은 말도 글도 돌아가지 않았다.
언중의 힘은 바로 언어 권력이다. 2011년 언어 권력은 결국 짜장면을 공식적으로 부활시켰다. 이름에서 짜장면을 찾아서 중국음식과의 거리를 더 확실히 넓혔다. 중국어 작장면(자장미엔) 때문에'자장면'으로 정했지만, 이미 맛도 모양새도 종류도 우리것으로 변해버려 자장면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짜장면 맛은 전국 어디나 큰 차이가 없다. 대량생산되는 춘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중국식 텐멘장에 캐러멜을 넣어 생산된 사자표 춘장 등은 대표적 대량생산 제품이다.
타지에 가서 식사를 해야 할 때, 식사를 망치지 않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중국집 짜장면이다. 여럿이서 모두의 음식 기호를 다 맞추기 어려울 때 찾는 것도 짜장면이다. 배달을 해먹을 때 가장 많이 시키는 것도 짜장면이다. 어디서 언제 짜장면을 시켜도 맛이 보장되며, 빨리 나오기는 데다가 값까지 싸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깊숙히 한국음식문화 속에 확실하게 안착했다.
그러다 보니 한인 교민들이 중국에서까지 한인타운에 짜장면중국집을 불러내었다. 중국에 한국식 중국집이 들어간 것이다. 이거 이이제이라고 해야 하나. 파리바게트가 프랑스 파리에 빵집을 차린 것과 같은 경우다.
음식에서 문화적 융합이 가장 다양하고도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사람들의 경직된 인식과는 달리 음식은 아무 저항없이 다른 음식문화와 주고 받으며 스스로 최상을 모색한다. 중국에서 받았으니 이제 돌려줄 차례인가 보다. 그러다 또 한 단계 진화할지도 모른다.
3) 지금 이 공화춘은 옛날 공화춘이 아니다. 원래 공화춘은 1912년에서 1983년까지 영업을 하고 그 건물은 5분 거리에 차이나타운 안에 짜장면박물관이 되어 있다. 공화춘의 후손들은 역시 차이나타운 안에 패루 가까운 곳에 있는 <신승반점>을 열어 공화춘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의 이 사진 속 공화춘은 이름만 사용한 것이고 이전 공화춘과는 관련이 없다. 공화춘이라는 이름의 중국 짜장면집은 전국적으로 몇 십 개가 있다. 바야흐로 공화춘은 짜장면집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1911년 신해혁명 뒤 1912년 1월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건국되었다. 공화춘은 공화국의 성립을 기념하여 공화국의 봄이란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화교들이 고향을 그리고 위하는 마음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 이름이 이제 한국 짜장면집의 대명사가 되었다. 화교와 중국음식을 포용하는 한국음식이 된 셈이다.
더 상세한 내용은 짜장면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는 중국의 자장미엔에서 어떻게 한국의 짜장면이 되어나갔는지, 초창기의 짜장면 문화는 어떠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차이나타운 입구 패루
짜장면박물관
<공화춘> 건물에 만들어진 짜장면박물관
짜장면 먹는 문화와 만드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박물관 내부.
#공화춘 #짜장면 #인천차이나타운맛집 #짜장면박물관
첫댓글 인천에 들리셨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짜장면 생각이 나면 우리 동네(연수구 청학동)에 있는 '상챠이'에 들릅니다. 이틀 전에도 '상챠이'에 들러 삼선간짜장을 시켜 먹었습니다. 장사가 잘되어 송도에 분점까지 냈습니다. '상챠이'가 생기기 전엔 연수구 동춘동 대우삼환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만강홍'에 곧잘 다녔지요. 월미도나 자유공원에 놀러갈 땐 차이나타운 아랫쪽에 자리잡은 '진흥각'에 들를 때가 많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기억해뒀다가 다음 기회에는 한번 가봐야겠네요. 인천 간 김에 들렀는데, 이번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곳이더군요. 요소요소 정성들여 꾸며놓은 동네가 얼마나 허전하던지, 이름값과 짜장면 기리는 의지를 높게 사서 들렀지요. 덕분에 다음 인연은 선생님 추천 맛집이 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