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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시감상
조이조수 / 김시습
嘲二釣叟 金時習
風雨蕭蕭拂釣磯(풍우소소불조기) 비바람 쓸쓸하게 낚시터를 스칠 때
渭川魚鳥識忘機(위천어조식망기) 위수의 고기와 새는 망기한 줄 알았네
如何老作風雲將(여하노작풍운장) 어쩌자고 늘그막에 풍운 모는 장수 되어
終使夷齊餓采薇(종사이제아채미) 끝내 백이와 숙제 고사리 캐다 죽게 했나
〈감상〉
이 시는 두 낚시질하는 늙은이 가운데 하나인 강태공(姜太公)을 놀리면서 지은 풍자시(諷刺詩)이다.
쓸쓸히 비바람이 부는 낚시터에 강태공이 낚시하던 위수(渭水) 주변의 물고기와 새들은 강태공이 세속적 욕망을 잊은 줄 알고 강태공 주변에서 노닐고 있다. 그런데 어쩌자고 노년에 용맹한 장수 되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같은 절개를 지키는 사람들을 수양산에서 굶어 죽게 하였는가?
이제신(李濟臣)의 『청강시화(淸江詩話)』에 의하면,
“김시습이 낙척 불우하였으나 시문은 매우 고상하였다. 서거정이 일찍이 그를 맞이하여 강태공이 낚시하는 그림을 보여 주며 제화시를 청하자 곧 다음과 같은 시를 써 주었다. ······서거정이 묵묵히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그대의 시는 곧 나의 죄안을 밝힌 문건이오.’라고 하였다
(金悅卿(김열경) 落拓不遇(낙천불우) 詩文極高(시문극고) 徐達成(서달성) 嘗一邀致(상일요치) 出姜太公釣魚圖(출강태공조어도) 請題(청제) 卽書一絶云(증서일절운) ······達成默然良久曰(달성묵연량구왈) 子之詩(자지시) 吾之罪案也(오지죄인야)).”
라고 하여, 서거정(徐居正)의 요청으로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한명회(韓明澮)가 요청한 것으로 되어 있고, 『병자록(丙子錄)』에는 권람(權擥)의 집을 방문하였다가 만나 보지 못하고 벽에 걸린 조어도를 보고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김시습은 강태공(姜太公)의 발자취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강태공을 한명회(韓明澮)나 서거정(徐居正)에, 백이와 숙제를 세조(世祖)에게 희생당한 사육신(死六臣)과 자신 같은 사람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제화시(題畵詩)이지만 역사적 인물인 강태공을 소재로 사육신(死六臣) 사건을 풍자(諷刺)하고 있는 것이다.
〈주석〉
〖嘲〗 조롱하다 조, 〖二釣叟(이조수)〗 두 낚시하는 늙은이는 강태공(姜太公)과 엄광(嚴光)을 말하는데, 이 시는 강태공에 대한 시임. 〖蕭蕭(소소)〗 적막하고 조용함. 〖拂〗 추어올리다 불, 〖磯〗 물가 기, 〖忘機(망기)〗 세속에 일어나는 욕망(慾望)을 잊는 것. 〖風雲(풍운)〗 응양(鷹揚)으로 된 곳도 있음. 〖薇〗 고비 미
고목 / 김시습
枯木 金時習
長枝蟠屈小枝斜(장지반굴소지사) 긴 가지는 서려 굽고 작은 가지는 비꼈는데
直幹亭亭聳碧霞(직간정정용벽하) 곧은 줄기는 정정하게 푸른 노을에 솟아 있네
幾歲倚巖排雨雪(기세의암배우설) 몇 해나 바위에 기대 비와 눈을 맞으면서
何年趠走化龍蛇(하년탁주화룡사) 어느 해 뛰고 달려 용과 뱀이 되려는가?
瘤皮臃腫莊生木(유피옹종장생목) 혹이 난 껍질 울퉁불퉁 장자 나무인 듯한데
奇狀巃嵷漢使槎(기상롱종한사사) 기이한 모습 우뚝우뚝 한대 사절 뗏목일세
春至無心天亦惜(춘지무심천역석) 봄이 와도 무심하니 하늘마저 애석한데
敎藤爲葉蘇爲花(교등위엽소위화) 등나무로 잎 만들고 이끼로 꽃 피웠네
〈감상〉
이 시는 마른 나무를 읊은 영물시(詠物詩)로, 고목(枯木)에 자신을 의탁(依託)하고 있다.
고목(枯木)의 긴 가지는 서려서 굽어 있고 작은 가지는 기울어졌는데, 곧은 줄기는 푸른 하늘로 꼿꼿하게 솟아 있다. 고목은 바위에 기댄 채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비바람의 풍상을 겪었으며, 어느 때 멀리 달려 용과 뱀처럼 될 수 있을 것인가? 장자(莊子)가 산속을 지나다 본 무용(無用)한 나무가 유용(有用)하듯 울퉁불퉁 껍질에 혹이 나 있고, 월씨국(月氏國)으로 사신 가다가 흉노족에 사로잡혀 10여 년간 포로 생활을 하였던 장건(張騫)이 타고 가던 뗏목인 양 하늘 높이 솟아 있다. 봄이 와도 나뭇잎을 피우지 못하는 고목을 하늘도 애석하게 여겼던지 등나무로 잎을 만들고 이끼로 대신 꽃을 피웠다.
김시습(金時習)은 지금은 고목(枯木)이 되어 하늘마저도 애석하게 여기는 처지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길게 뻗은 가지와 곧은 줄기가 하늘 높이 솟아 있던 고목(高木)이었다. 고목에 자신의 삶을 기탁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호학군주(好學君主)였던 정조(正祖)가
“매월당은 절개만 기이한 것이 아니라 그 시도 매우 기이하다. 내가 반드시 모아 오래도록 전하려고 하는 것은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다
(梅月堂非但節槩殊異(매월당비단절개수이) 其詩絶奇(기시절기) 予之必收輯裒梓(여지필수집부재) 俾壽其傳者(비수기전자) 非偶爾也(비우이야)『홍재전서(弘齋全書)』).”
라고 언급한 것은 위의 시와 같은 경우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주석〉
〖蟠〗 두르다 반, 〖幹〗 줄기 간, 〖亭亭(정정)〗 곧게 선 모양. 〖聳〗 솟다 용, 〖排〗 밀치다 배, 〖趠〗 뛰다 탁, 〖龍蛇(룡사)〗 용과 뱀으로, 걸출한 인물에 비유. 〖瘤〗 혹 류(유), 〖臃腫(옹종)〗 구조물이 큰 것을 비유함.
〖巃嵷(롱종)〗 산세가 높고 험한 모양. 〖槎〗 뗏목 사, 〖藤〗 등나무 등, 〖蘇〗 풀 소
석서 / 김시습
碩鼠 金時習
碩鼠復碩鼠(석서부석서) 큰 쥐야, 큰 쥐야
無食我場粟(무식아장속) 우리 마당의 곡식을 먹지 마라
三歲已慣汝(삼세이관여) 삼 년째 벌써 너를 알고 지냈는데
則莫我肯穀(칙막아긍곡) 나를 살려 주지 않으려면
逝將去汝土(서장거여토) 떠나서 장차 너의 땅을 버리고
適彼娛樂國(적피오락국) 저 즐거운 나라로 가리라
碩鼠復碩鼠(석서부석서) 큰 쥐야, 큰 쥐야
有牙如利刃(유아여이인) 날카로운 칼날 같은 어금니가 있어서
旣害我耘耔(기해아운자) 이미 내 농사를 망쳐 놓았고
又囓我車軔(우설아거인) 또 내 수레의 바퀴굄목마저 먹어
使我不得行(사아부득행) 내가 가지도 못하게 해 놓고
亦復不得進(역부부득진) 또한 다시 나아갈 수도 없게 해 놓았네
碩鼠復碩鼠(석서부석서) 큰 쥐야, 큰 쥐야
有聲常喞喞(유성상즉즉) 소리도 늘 찍찍거리면서
佞言巧害人(영언교해인) 간사한 말로 교묘하게 사람을 해쳐
使人心怵怵(사인심출출) 사람의 마음을 두렵게 하네
安得不仁貓(안득불인묘) 어디서 사나운 고양이를 얻어
一捕無有孑(일포무유혈) 한 번에 잡아 씨도 없게 할까?
碩鼠一產兒(석서일산아) 큰 쥐가 한 번 새끼를 낳으면
乳哺滿我屋(유포만아옥) 젖먹이 새끼들이 내 집에 가득하리
我非永某氏(아비영모씨) 나는 영모씨가 아니니
付之張湯獄(부지장탕옥) 장탕의 감옥에 너를 넣고서는
塡汝深窟穴(전여심굴혈) 너의 깊은 소굴을 메워 버려
使之滅蹤跡(사지멸종적) 너의 발자취를 없애리라
〈감상〉
이 시는 큰 쥐를 소재로 한 『시경(詩經)』 「위풍(魏風)」 「석서(碩鼠)」의 시를 모방하여 지은 것으로, 큰 쥐의 모습을 통해 백성들을 괴롭히는 탐관오리(貪官汚吏)나 아전들의 횡포를 비유적으로 그려 낸 시이다.
『시경』에 있는 주희(朱熹)의 주(註)에 의하면, “「석서」는 과중하게 세금을 거두는 것을 풍자한 시이다. 나라 사람들이, 그 군주가 과중하게 세금을 거두어 백성들을 잠식하여 그 정사를 닦지 않고 탐욕스러우며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큰 쥐와 같음을 풍자한 것이다(碩鼠(석서) 刺重斂也(자중렴야) 國人刺其君重斂(국인자기군중렴) 蠶食於民(잠식어민) 不修其政(불수기정) 貪而畏人(탐이외인) 若大鼠也(약대서야)).”라고 하였다. 매월당은 백성을 해치는 탐관오리나 아전들을 우의(寓意)한 큰 쥐를 종적도 없이 멸망시켜 버리겠다고 하여, 탐관오리들에 의해 힘겹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삶의 형상에 분개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진지한 모습 이면에는 장난기 넘치는 시구(詩句)를 짓기도 하였다. 홍만종의 『소화시평』에 의하면,
“동봉 김시습이 다음 시를 지었다.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함은 꼭 옳지는 않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고 옳은 것을 옳다 함은 꼭 그르지는 않네.’ 또 다음 시를 지었다. ‘같은 것이 다르고 다른 것이 같으니 같고 다름이 다르고, 다른 것이 같고 같은 것이 다르니 다름과 같음이 같네.’ ······두 분(김시습(金時習)과 기준(奇遵))은 이러한 어구 쓰기를 좋아했으나, 이것은 장난거리에 매우 가깝다.
백운거사 이규보는 「한거」를 지었는데, ‘루루(이어져 끊어지지 않은 모습)와 약약(길게 드리워진 모습)에 대해 묻지 마라! 시시도 따지지 않거늘 하물며 비비를 따지랴.’ 비로소 백운거사가 이러한 시체를 만들어 냈음을 알았다
(金東峯詩曰(김동봉시왈) 是是非非非是是(시시비비비시시) 非非是是是非非(비비시시시비비) 又曰(우왈) 同異異同同異異(동이이동동이이) 異同同異異同同(이동동이이동동) 豈兩公喜用此等詩句(기량공희용차등시구) 頗近戱劇(파근희극) 李白雲閑居詩曰(이백운한거시왈) 莫問累累兼若若(막문루루겸약약) 不曾是是況非非(부증시시황비비) 始知此老始刱此體(시지차로시창차체)).”
라 언급하고 있다.
〈주석〉
〖碩〗 크다 석, 〖慣〗 익숙해지다 관, 〖穀〗 살다 곡, 〖耘〗 김매다 운, 〖耔〗 북돋우다 자, 〖囓〗 갉아먹다 설, 〖軔〗 바퀴굄목 인, 〖喞喞(즉즉)〗 쥐가 우는 소리. 〖佞〗 바르지 못함 녕, 〖怵〗 두려워하다 출, 〖猫〗 고양이 묘, 〖孑〗 나머지 혈, 〖哺〗 물다 포, 〖付〗 주다 부, 〖永某氏〗 영주(永州)에 모씨(某氏)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쥐를 좋아하여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다고 함.
〖張湯(장탕)〗 장탕은 한(漢)나라 때의 옥관(獄官)이다. 그가 어렸을 적에 집을 보다가 쥐에게 고기를 도둑맞은 일이 있었는데, 외출했다가 돌아온 아버지에게 심한 꾸중을 듣고서는 쥐구멍을 파헤쳐 쥐를 잡고 먹다 남은 고기도 꺼내어 뜰에다 감옥의 모양을 갖추어 놓고 핵문(劾文)을 지어 쥐를 신문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그 글을 보니 노련한 옥리(獄吏)보다 나았으므로 크게 기이하게 여겼다 함(『한서(漢書)』 권(卷)59). 〖塡〗 메우다 전, 〖窟〗 굴 굴, 〖蹤跡(종적)〗 발자취.
사청사우 / 김시습
乍晴乍雨 金時習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잠깐 갰다 잠깐 비 오고 비 오다 다시 개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천도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세상의 정이야
譽我便應還毁我(예아편응환훼아) 나를 칭찬하는가 했더니 곧 다시 나를 비방하고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이름을 피하는가 하면 도리어 이름을 구하네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 꽃이 피고 꽃이 진들 봄이 무슨 상관이며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부쟁) 구름 가고 구름 옴을 산은 다투지 않도다
寄語世上須記憶(기어세상수기억) 세상에 말하노니 모름지기 기억하라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어디서나 즐겨함은 평생 득이 되느니라
〈감상〉
이 시는 잠깐 갰다가 잠깐 비가 오는 날씨를 보고 지은 것으로, 자연 현상에 비추어 인정(人情) 세태(世態)가 변함을 풍자한 시이다.
비가 잠깐 내렸다가 다시 개고 개는 듯싶더니 다시 비가 온다. 이처럼 하늘의 도도 변화가 많은데, 하물며 인정(人情)에 있어서는 더 많은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칭찬하는가 했더니 어느새 나를 비방하고 있고, 명성을 피한다고 하더니 어느덧 명성을 구하고 있다. 하지만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은 상관하지 않고 구름이 가고 오는 것을 산은 다투지 않는다. 그러니 어디서든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것이 평생의 득이 될 것이다.
이렇듯 김시습(金時習)은 세상의 그릇됨을 달관의 경지에서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주석〉
〖乍〗 잠깐 사, 〖謝〗 시들다 사, 〖管〗 주관하다 관
서민 육수 / 김시습
敍悶 六首 金時習
其一(기일)
心與事相反(심여사상반) 마음과 일이 서로 반대가 되어
除詩無以娛(제시무이오) 시를 제외하면 즐길 수 없네
醉鄕如瞬息(취향여순식) 취한 기분도 순식간 같고
睡味只須臾(수미지수유) 잠의 맛도 다만 잠깐이네
切齒爭錐賈(절치쟁추가) 송곳 끝을 다투는 장사치 이가 갈리고
寒心牧馬胡(한심목마호) 말이나 먹일 오랑캐 한심하다네
無因獻明薦(무인현명천) 밝은 천거에 몸 바칠 인연 없으니
抆淚永嗚呼(문투영오호) 눈물 닦으며 길이 탄식하네
〈감상〉
이 시는 답답한 마음을 펼치며 지은 시로, 세계(사(事))에 대하여 상반된 자아(自我, 심(心))를 시(詩)를 통해서 표출하고 있다.
김시습은 다른 글에서,
“또 선비의 몸은 세상이 모순되면 물러나 살면서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이 대개 그의 본디 분수인데, 어찌 남의 비웃음과 비방을 받아 가며 억지로 인간 세상에 머물러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且士之身世矛盾(차사지신세모순) 退居自樂(퇴거자락) 蓋其素分耳(개기소분이) 安得受人嗤謗(안득수인치방) 而強留人世乎(이상류인세호) 「상류양양진정서(上柳襄陽陳情書, 자한(自漢))」)?”
라고 하여, 방외적 삶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조선조 사대부층(士大夫層)은 그 기본 성격이 중앙의 관료이면서 지방의 지주이므로 이 양면의 생활환경으로부터 관료로의 현달을 지향하는 ‘관인형(官人型)’과 강호의 은둔을 지향하는 ‘처사형(處士型)’, 이 두 가지 형태로 인간자세가 구분되었던 것이다.
‘방외형(方外型)’은 관인(官人)으로 나아가는 것도 탐탁지 않지만 처사적(處士的)인 권위와 규범을 지키는 생활도 바라지 않은 특이한 존재이다. 방외형은 부당한 사회현실에 굴종하거나 체념하지 아니하고 저항적인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궁극적으로 중세기적 권위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인간의 양심·자아를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김시습(金時習)은 이 세 가지 유형 가운데 방외형(方外型)에 속하는 인물로, 홍유손(洪裕孫)·정희량(鄭希良) 등이 이에 속한 인물들이다.
〈주석〉
〖悶〗 번민하다 민, 〖醉鄕(취향)〗 술 취한 때의 기분을 말함. 〖瞬〗 눈 깜짝하다 순, 〖睡〗 잠 수, 〖錐〗 송곳 추, 〖明薦(명천)〗 제사 때나 진헌(進獻)할 때의 물건으로, 여기서는 ‘임금에게 자신을 바친다’는 의미임. 〖抆〗 닦다 문
제금오신화 이수 / 김시습
題金鰲新話 二首
其二(기이)
玉堂揮翰已無心(옥당휘한이무심) 옥당에서 붓을 휘두를 마음 이미 없고
端坐松窓夜正深(단좌송창야정심) 단정히 송창에 앉았으니 밤이 정히 깊구나
香揷銅甁烏几淨(향삽동병오궤정) 구리 병에 향 꽂히고 책상이 깨끗한데
風流奇話細搜尋(풍류기화세수심) 풍류기화를 자세히 찾아보노라
〈감상〉
이 시는 『금오신화』에 대해 쓴 시이다.
옥당에서 붓을 잡을 마음이 진작 사라졌으니(관인으로 벼슬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함을 이름), 그 결과로 소나무가 내려다보이는 서재(書齋)에 앉아 있노라니 밤이 매우 깊다. 방 안을 돌아보니, 구리 병에 향이 꽂혀 향불을 피우고 책상은 아무것도 없어 조촐한데, 그런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 풍류기화인 『금오신화』를 본다(정치권력으로부터 멀어진 뒤에 쓰인 것이 『금오신화』이다).
〈주석〉
〖玉堂(옥당)〗 홍문관(弘文館)의 별칭. 〖揮〗 휘두르다 휘, 〖翰〗 붓 한, 〖松窓(송창)〗 소나무가 내려다보이는 창으로, 별장이나 서재를 일컬음. 〖烏几(오궤)〗 오피궤(烏皮几)로, 검은 양가죽으로 싼 작은 책상임. 옛날 앉을 때 몸을 기대는 것으로 사용함. 〖搜〗 찾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