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에 큰 소동이 일어납니다. 아데미(아르테미스) 우상을 만드는 이들이 경제적 풍요를 유지하려고 벌인 소란에 군중이 분별없이 동원되지만, 서기장의 지혜로 종결됩니다.
35-41절 세속의 제도와 공직자를 통해 제자들을 보호하십니다. 에베소의 서기장은 무리를 설득하여 해산시킵니다. 서기장은 바울 일행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신전을 약탈하거나 신성모독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이들에게 법적인 문제가 있다면 고소하여 정식 재판 절차를 거치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지금의 소동은 불법 집회이기 때문에 로마 정부로부터 문책을 받을 소지가 있다고 합니다. 서기장의 합리적인 설득에 무리가 흩어지면서 바울 일행은 위기를 모면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표면에 등장하시지 않지만, 상식적인 로마법과 이성적인 공직자를 통해 그분의 일꾼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승리와 확장을 위해 정의롭고 공정한 세속의 법과 제도를 마련하십니다.
21,22절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제국의 중심인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로 선교계획을 세웁니다. 이 계획은 자의로 세운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작정하다를 직역하면 성령 안에서 결심하다) 결정한 것입니다. 충분히 했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며 안주할 수 있었지만, 성령께 붙들린 바울은 육체의 소욕을 억제하고 성령의 비전을 따라 사역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무 작은 성취에 만족하고 너무 일찍 안주하지 않습니까? 아직은 성령의 원함을 따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더 도전하고 시도할 때입니다.
23-34절 에베소의 소동은 기독교와 이방의 다신교 간의 종교전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현실적 이익에 대한 문제입니다. 에베소의 많은 사람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오자 수익이 줄어들어 화가 난 우상 제조업자(은장색) 데메드리오가 직공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소란입니다. 그럴듯한 종교적 명분을 내세웠지만, 감춰진 동기는 결국 돈입니다. 에베소에는 믿음을 위해 은 5만을 버린 사람도 있었지만, 이익을 위해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내게 경제적, 혹은 사회적 불이익이 생긴다고 복음의 요구를 저버리면 소동을 일으킨 에베소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복음은 탐심과 충돌하며, 믿음은 욕심을 버린 자리에 채워집니다. (매일성경, 2024.05/06, p.130-131,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 사도행전 19:21-41에서 인용).
① 에베소에 큰 소동이 일어납니다. 아데미(아르테미스) 우상을 만드는 이들이 경제적 풍요를 유지하려고 벌인 소란에 군중이 분별없이 동원되지만, 서기장의 지혜로 종결됩니다. 세속의 제도와 공직자를 통해 제자들을 보호하십니다. 에베소의 서기장은 무리를 설득하여 해산시킵니다. 서기장은 바울 일행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신전을 약탈하거나 신성모독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이들에게 법적인 문제가 있다면 고소하여 정식 재판 절차를 거치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지금의 소동은 불법 집회이기 때문에 로마 정부로부터 문책을 받을 소지가 있다고 합니다. 서기장의 합리적인 설득에 무리가 흩어지면서 바울 일행은 위기를 모면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표면에 등장하시지 않지만, 상식적인 로마법과 이성적인 공직자를 통해 그분의 일꾼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승리와 확장을 위해 정의롭고 공정한 세속의 법과 제도를 마련하십니다.
②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제국의 중심인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로 선교계획을 세웁니다. 이 계획은 자의로 세운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작정하다를 직역하면 성령 안에서 결심하다) 결정한 것입니다. 충분히 했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며 안주할 수 있었지만, 성령께 붙들린 바울은 육체의 소욕을 억제하고 성령의 비전을 따라 사역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무 작은 성취에 만족하고 너무 일찍 안주하지 않습니까? 아직은 성령의 원함을 따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더 도전하고 시도할 때입니다.
③ 에베소의 소동은 기독교와 이방의 다신교 간의 종교전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현실적 이익에 대한 문제입니다. 에베소의 많은 사람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오자 수익이 줄어들어 화가 난 우상 제조업자(은장색) 데메드리오가 직공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소란입니다. 그럴듯한 종교적 명분을 내세웠지만, 감춰진 동기는 결국 돈입니다. 에베소에는 믿음을 위해 은 5만을 버린 사람도 있었지만, 이익을 위해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내게 경제적, 혹은 사회적 불이익이 생긴다고 복음의 요구를 저버리면 소동을 일으킨 에베소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복음은 탐심과 충돌하며, 믿음은 욕심을 버린 자리에 채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