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5일 토요일 (흙날) 날씨는 맑았으나 미세먼지가 많고 바람이 매우 거세게 붊
제목 : 공룡의 고장 고성을 다녀오다. (옥천사)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아침 8시 30분에 섬진강 휴게소에서 예비사위와 딸이 만나기로 한 시각이다. 7시 30분 경에 출발해서 김밥을 사고는 바로 이순신대교를 통해 섬진강 휴게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강풍이 불어서인지 이순신대교 지나가기가 영 껄끄러웠다. 지난번 강풍으로 이순신대교가 휘청하여 차들이 중간에 선 일이 있었다는 뉴스를 예전에 접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녁에 돌아올 때는 순천으로 돌아왔다. 그게 훨씬 안전한 길이며 편한 길이다. 그들과 헤어진후 우리는 그곳에서 김밥을 먹고 천년 고찰이라고 홍보된 고성 옥천사로 향했다. 옥천사 자방루 앞에 세워진 설명서에 의하면 고성 옥천사는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 16년 (676년)에 지은 절로 당나라의 지엄 법사에게 화엄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화엄경을 강론하기 위해 지었다고 했다. 의상대사는 국내의 신령스러운 땅을 찾아 그곳에 사찰을 세워 그 사찰을 의상화엄전교십찰(義湘華嚴傳敎十刹)이라고하였는데 고성 옥천사도 의상화엄전교십찰(義湘華嚴傳敎十刹)이 포함된다. 옥천사라는 이름은 대웅전 왼쪽에서 샘 솟는 달고 맛있는 샘물인 감로수(甘露水)가 나오는 샘을 옥천이라고 부르는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옥천사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일주문인데 일주문에는 연화산 옥천사라는 현판이 보였다. 내려오면서 일주문을 촬영하려고 쉬지 않고 좁은 길을 달렸다. 옥천사 뒷산이 연화산인 모양이다. 주차를 하는 곳에는 사천왕상이 있는 전각이다. 사천왕상은 모든 절마다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절에는 사천왕상이 있다. 사천왕을 사백과사전에 찾아보니 사천왕상을 사대천왕·사왕·호세사왕이라고도 한단다. 인도신화에 나오는 야차를 기원으로 보고 있으며 인도의 사천왕상은 고대 인도의 귀인 모습을 하고 있으나 중국화되면서 무인형으로 변했다고 설명한다. 지국천은 수미산의 동쪽을 지키는 동방천왕이다. 대개 몸에 갑옷을 걸치고 칼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에 보주를 들고 있는 것도 있다. 광목천은 서방천왕이다. 갑옷을 입고 새끼줄과 삼차극을 가지고 있다. 증장천은 남방천왕으로, 갑옷을 입고 왼손은 주먹을 쥐어 허리에 두고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다문천은 북방천왕이며, 갑옷을 입고 오른손에는 창·막대기·보서를, 왼손에는 항상 보탑을 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통일신라시대에 크게 유행했으며, 사천왕사지의 녹유사천왕상전, 감은사지 3층석탑 금동사리기에 부착된 사천왕상, 석굴암의 사천왕상 등이 있다 (출처 : 다음백과사전) 우리는 사천왕상을 지나 조금 가니 조그만한 이름이 없는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은 매우 낡아 곧 허물어질 것처럼 보였다. 담장에도 이끼가 가득차서 오래된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 건물 끝에는 석비가 하나 서있는데 오랜 세월 그곳을 지키고 있었을 것이고 보인 하마비가 있었다. 하마비는 그곳은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라는 것이다. 옥천사로 가려면 누구든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것이다. 임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양반이 곧 법이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야 말이 없기에 그냥 걸어서 옥천사로 갔다. 제일 먼저 만난 건물이 자방루다. 설명서에 의하면 자방루는 옥천사에 있은 누각으로 일반 사찰에 있는 누각보다 더 크다고 했다. 자방루라는 뜻은 꽃향기가 점점 불어나 멀리 퍼져나가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꽃향기처럼 멀리 퍼져 나가 많은 중생을 제도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부처님의 향기가 나의 몸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진다. 더구나 옥천사는 1920년대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활동했다는 설명판도 읽어 보았다. 여러모로 역사가 깊은 곳이라 생각된다. 자방루를 지나 대웅전으로 갔다. 대웅전은 비록 큰 규모는 아니었고, 안에를 들여다 보지는 않했지만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모시는 사찰의 중심 건물이니만큼 더 화려할 줄 알았으나 건물이 매우 소박했다. 단청도 많이 벗겨지기도 했으나 서까래 부근에는 부처님의 그림이 몇 점 붙어있었다. 옥천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몇 번이나 복구되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니 옥천사의 수난을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옥천사에는 여러 건물들이 있었다. 참 신기한 것은 산신각이라는 건물인데 매우 조그만했다. 왜 산신각은 조그맣게 지었을까? 궁금하다. 옥천사를 탐사하고 우리는 적멸보궁을 향했다. 그런데 산길이 가도가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다시 돌아갈까 생각했으나 간 것만큼 아쉬워 기어이 찾아 갔다. 산길을 빠져 나오니 큰 도로가 나왔다. 그래서 다시 큰길을 따라 갔더니 다시 산길이 나왔다. 마침 주차장이 있어서 그곳 사람인 모양인데 물어보니 약 100m 정도 가면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적멸보궁으로 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