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대운 교장선생님 정년퇴임 축사
- 전 대덕남초등학교 재직 -
비포장 신작로의 흙먼지,
차에서 내뱉는 가솔린 연기조차
생소하고 고소한 남도의 끝자락.
초가집 처마에선 누우런 빗물이 흐르고,
질컥이는 골목길마다에 두엄 냄새가 사철 스며있는 동네,
아이들의 닳아 헤진 무르팍 실밥사이로 찢긴 상처 딱쟁이가 검정 고무신에 기운 헝겊같은 곳, 번듯할 것이라곤 도무지 귀한 그 남도의 끝자락에서
막 보급된 테리비에서나 볼 듯한 잘생긴 서양 배우를 닮은 청년 선생님.
그때, 그곳에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낡은 교정에서도 잎이 푸르고 무성한 한 그루 느티나무였습니다.
바라보라 장엄하다 공성산 아래, 창세의 정기서린 문화의 전당, 간직하라
높은 뜻을 태양과 같이!
대덕남초등학교, 78년 봄날,
선생님과 우리는 5학년 1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어리고 연약한 묘목이었습니다.
봄부터 여름한철 내내 질긴 농사일과, 삼동(三冬) 내내 김 양식으로
아이들이 생업으로 내몰리던 곳에서 우리는 선생님의 영양분을 흡입 받으며 자란 난 행운아였습니다.
우리는 선생님께, 국어, 산수, 사회, 자연, 실과과목을 배웠을 것입니다.
바른생활과 음악과 미술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선생님께 배운 것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휴머니즘 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묘목하나 하나에 빠뜨리지 않고 치우침 없이 고르게 양분을 주셨습니다.
축구에 재능이 있는 희에게 축구공을 선물하셨습니다.
경숙아, ‘초록빛 바다’는 네가 최고로 잘 부르는구나!
수영을 잘하는 오남이를 물개라고 치켜세워 주셨습니다.
어느 실과 시간엔, “이것이 프렌치토스트란다” 손수 자비로 식빵과 마아가린을 구입하시곤, 지글지글 고소한 냄새가 온 학교에 퍼지게 하여 촌놈들의 입안에 침 꽤나 고여들게 하셨습니다.
처음으로 도시의 느끼한 부드러움을 맛보는 문화충격!!
신비스러운 culture shock 그 자체였습니다.
산 속으로 식물채집을 다녔으며, 오성금 앞바다로 여름수련회도 갔습니다.
염전바닥을 쿠션매트삼아 가을 운동회에 선뵈일 덤블링과 기마전 훈련도
너끈히 소화할 수 있었지요.
흥미진지한 이야기와 수수께끼로 호기심과 탐구를 유도하셨던 선생님도,
때로는 준엄하게 우리를 야단치기도 하셨으니, 세상을 구정물로 흐리는 못된 녀석으로 자라날까 봐, 오만하고 경솔한 사람으로 웃자라날까 봐,
아프고 고민스러운 마음으로 따끔하게 훈육하셨을 것 입니다.
선생님의 순수하고 젊은 열정으로 모험과 파격스러움이 동반된 번잡한 학습과정이 인간의 행동을 계획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라는 교육의 큰 틀 안에 녹아들었습니다.
선생님의 눈은 자상한 인도자의 선견이었으며, 친구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촌놈들, 주눅 든 마음도 활짝 펴지고, 상상력과 창의력이 억압받지 않고,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며,
맑고 푸르게 자라났습니다.
사십 성상 동안, 선생님은 전라도에서 경기도에서 쉼 없이 많은 묘목을 기르셨습니다. 크신 경륜과 더 많은 열정으로 더 많은 묘목을 식수하시기에
그 젊음이 다하지 않았는데, 세상의 시간은, 이제 정규교단 생활을 청산하라고 규정합니다.
선생님은,
어쩌면 그 옛날 초임지 신리 초등학교에 미처 졸업하지 못하고 남겨 둔 우리를 떠나갈 적 마음으로 오늘 정년퇴임식에 즈음하여 눈물을 참고 계실지 모릅니다. 지내왔던 시간들, 남아 있는 시간들이 감사하고 아쉽고 또 소중할 것입니다.
이제 사모님과 멋진 시간을 다시 가질 시간인가 봅니다.
그 옛날, 우리 꼬맹이들의 놀림을 즐거운 환대로 받으며, 사모님과 손을 맞잡고, 신혼을 차리신 신리에서 하분 갯둑을 걸쳐 마량으로 가는 길목이 아련히 생각납니다. 한편의 느리고 아름다운 흑백필름입니다.
마음 가면서도, 미처 시간 내지 못했던 고향의 친구, 친지 분들과의 여유있는 친분도 즐기시기에 충분한 소일거리가 되실 것입니다.
이미 자란 제자들과의 편한 자리도 즐기십시오.
우리 제자들은 형식적으로 선생님을 그리워하지 않았습니다.
사제지간의 따스한 정을 감히 주고받자는 손익계산으로 어찌 따질 수 있었겠습니까?
선생님의 제자 되어, 누구하나 어긋남 없이, 다침 없이, 마음 상함 없이,
개선문을 통과한 장군처럼, 수수하게 원숙한 가을 국화처럼, 그 어린이가
어른이 되었으니, 교육자로서 선생님께서는 과연 그 존함처럼이나 대운
(大運)이 있으십니다.
선생님께 배운 ‘석별의 정’이라는 노래가 쓸쓸히 회상되지만, 여름이 아직 저만치 남아있고, 포도를 달게 익히는 가을날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에게 선생님은 영원히 젊어 계십니다.
이제 학교에서 세상으로 나오셔도 선생님의 그 젊음은 어디서든 밝은 빛이 될 것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2014년 8월 29일 제자 대표 김문태 올림.
(기사제공 : 홍윤자/신리/대덕중29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