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에 놓인 큰 과제 / 최종호
“퇴직하고 등산 다니기 시작하면 인생 끝나 버려야.” 2주 전, 친구 셋이서 영광으로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나온 말이다. 은퇴하면 등산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자주 산을 찾으려고 마음먹었기에 귀에 거슬렸다. 하지만 무슨 근거가 있냐고 따지기도 마뜩잖은 상황이었다. 그도 퇴직 후에 무엇을 하고 지낼 것인지 고심한 끝에 한 말 같아서다.
그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사립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일을 그만두고 지인과 동업하다 여의치 않자 서울로 가서 입시 강사를 꽤 오래 했다. 그러다 다시 내려와 한동안 식당을 운영하다 접었다. 그 후에 매형의 건축 사업(신축 아파트 외벽 공사)을 돕더니, 수년 전에 태양광 회사 대표로 갔다. 그 당시에는 70세까지 할 것 같다고 하여 부러움을 샀는데 이삼년 안에 그만둘 생각이란다. 사장이 운영 방법을 터득해서 자기 역할이 줄어들어 회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후 이제 무엇을 할지 걱정이라면서 내던진 말이다.
그가 한 말의 뜻은 퇴직 후 별다른 일없이 등산을 피난처로 삼으면 더이상 어떤 일에 도전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길 텐데 그렇게 지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퇴직하기 전에 공인 중개사 시험에 도전해 볼 거라는 뜻도 내비쳤다. 옆에 앉은 친구도 경비지도사 자격증을 따볼 생각이란다. 그는 퇴직을 1년 앞둔 경찰공무원이라 직업과 연관된 일을 찾으면 좋겠다고 했다.
은퇴 시기가 되어가니 너나 할 것 없이 고민이 많은 듯했다. 나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몇 년 전부터 퇴직 후에 ‘무얼 하며 살아야 할까?’ 골몰해 보지만, 뚜렷한 방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막연할 뿐이다. 처음에는 숲 해설사 자격증을 따서 환경과 관련한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해 볼 요량이었다. 그쪽에 관심이 많은 데다 가르치는 일이 직업이어서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텔레비전에서 광산구에 있는 고려인 마을을 소개하는데 그곳 사람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나자 마음이 바뀌었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에 조국을 떠나 연해주에서 살다가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옮긴 동포의 후손이었다.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으나 말은 잘하지 못하며, 이곳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데에도 어려운 점이 많았다. 말과 글을 가르치고, 아이들의 부족한 공부를 도울 수 있다면 이만한 곳도 없을 듯했다.
외국인이나 이주민을 대상으로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려면 자격증이 필요했다.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원격 연수 사이트를 찾아보니 120시간의 연수가 개설된 곳이 있어 등록했다. 이 과정을 이수하고 국립국어원에서 주관하는 ‘한국어 교육 능력 검정 시험’에 통과하면 ‘한국어 교원 3급 자격증’을 얻을 수 있어서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을 채우는 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수업 동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마지막 과정을 두고 있었는데 지인한테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들었다. 온라인으로 3학기 48학점을 이수하면 시험도 보지 않고 2급 자격증을 딸 수 있다는 것이다. 3급 검정 시험을 통과하기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잘되었다 싶었다. 같이 문해력을 공부하는 회원들에게 권했다. 둘이 흔쾌히 해 보겠단다. 한 분은 지인까지 끌어들여 다섯 명이 함께하게 되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시간을 이수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과목도 많고 과제도 만만치 않았다. 시간마다 출석 체크도 하고 중간고사도 치러야 한다. 맨 마지막 수강은 한 학기 동안 실습 과정이었는데 나주 동신대에서 매주 토요일을 바쳐야 했다. 같이 했기에 망정이지 혼자였더라면 해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마친 결과여서 그랬을까! 문화관광부장관 직인이 찍힌 자격증을 받고 보람이 크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반가운 마음에 고려인 마을의 달라진 사정도 알고, 찾아가 보고 싶어 검색해 보았다. 예상하지 못한 홈페이지가 떴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후원단체가 결성되어 있어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이왕에 외국인을 가르치는 자격증을 땄으니 난독아 지도 자격증을 따보기로 했다. 외국인 자녀를 가르치는 데 유리할 것 같았다.
대부분 지역에 다문화지원센터가 있기 마련이다. 그곳에서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문향회 회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권유했더니 흔쾌히 승낙했다. 나를 포함하여 여섯 명이 도전했다. 이제 1년 동안 가르쳤던 난독 아이 지도 사례 최종 발표만 남겨두고 있다. 세 명의 ‘슈퍼 바이져 심사’를 통과하면 된다. 자격증을 따더라도 원하는 대로 될 것인지 미지수다. 설령 바라는 대로 되더라도 고작 일주일에 두세 번일 것이다. 남는 시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퇴직 후에 함께 놀 친구는 있다. 그렇더라도 날마다 놀 수는 없지 않는가? 이래저래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 읽었던 스코트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의 지속』이 생각난다. 교수였던 그는 반전운동으로 해직되어 19년 동안 농사지으며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 농사일하고, 지역사회 시민들과 연대하며, 오롯이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 데 각각 네 시간을 할애한다. 이른바 ‘4 4 4 규칙’을 지키며 살아간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조화롭게 생활했던 것이다. 나도 한 주의 계획과 하루의 생활 규칙을 세우면 될 것도 같다. 읽고 싶은 책, 가 보고 싶은 여행지, 하고 싶은 일 등 이른 바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여 하나씩 성취해 나가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아직은 이 모든 것이 풀어야 할 큰 과제다.
첫댓글 전원주택도 마련해 두신 선배님도 이런 고민을 하는데 아무 준비도 없는 저는 ㅎㅎ
선배님이 힘들여 받은 자격으로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고 제2의 인생도 빛을 발하길 기원할게요.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나름 재미는 있습니다. 필요한 곳에 쓰이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의미는 있지요. 응원 고맙습니다.
앞서가는 발자국 따라가렵니다. 기다리는 후배들 많으니 힘들어도 전진하셔야지요. 응원합니다!
힘들어도 전진하라고 하니 어깨가 무거워져요. 편히 즐겁게 지내렵니다.ㅎ
정년을 앞두고 고민이 많으시죠? 나도 그랬답입니다. 문해교사 자격증을 땄는데 한 번도 쓰지 못했습니다.
정말 잘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육아때문에 어쩔수 없었네요. 그러나 손주들에게서 더한 기쁨을 얻고 있기에
미련는 적습니다. 스코트 니어링의 자서전, 그의 부인이 쓴 책도 읽었거든요. 감명 깊게 읽어서 지금도
가끔 펼쳐보곤합니다. 너무 많은 계획하지 마시고 소일거리한다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글쓰기 공부만도
평생할 수 있고 작은 농사짓기도 해보시면 어떨까요? 최선생님의 능력이면 퇴근 후를 잘 설계할 것 같네요.
선배님 말씀대로 많은 것을 계획하지는 않으렵니다. 조언 고맙습니다.
퇴직을 앞 두시고 하나둘씩 목표를 달성해 나가시는 교장선생님! 퇴직 이후가 더 기대되네요. 나중에 코로나 19 종식되면 목포 회원들과 전원주택에서 놀러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