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44 ㅡ
호모 루덴스 (유희하는 인간 ) (사소)
고대로부터 인간은 비가 많이 오거나 가뭄이 들면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농사에 풍요를 빌거나 수확에 감사하는 축제를 열어왔다. 특히 웃음으로 눈물을 닦는 낙천성과, 공동체 유희를 즐기는 우리 민족은, 위기 앞에서는 '강강술래' 등의 놀이로 수세를 극복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잔혹함을 해결하는 것은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세계적인 조명을 받은 영화 '오징어 게임' 은 우리 근대의 놀이를 모티브로 해서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
세 살 터울인 아들과 딸은 서로, 어릴 적부터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한 지구상의 치열한 첫 경쟁자였다. 유독 엄마랑 노는 걸 좋아했던 두 아이는 놀이가 마냥 신났던지 글자 놀이를 하기 위해 새벽부터 엄마를 깨우곤 했다. 음악을 듣고 춤도 추고 요리도 놀이처럼 했다. 그렇게 호기심과 즐거운 유희 사이에서 하루 종일 놀고 난 아이들은 밤이 되면, 종일 육아로 지친 엄마에게 마지막 미션, 동화책 읽어주기 숙제를 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녀석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면, 다른 아이가 자기가 고른 책도 어서 읽어주라며 다투어 보챈 덕분에, 잠이 들 때까지 무한 반복으로 책을 읽어줘야 했다. 그러다 보면 엄마는 자주 목이 쉬고, 성대 결절을 겪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이들이 사랑의 갈구를 이야기로 충족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지 싶다. 하지만 이때 읽어준 동화책 덕분에 아이들은 저마다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마음 쿠션을 조금이나마 생성한 것 같다. 엄마는 동화 책을 외우다시피 반복해서 읽어준 덕분에, 나중에 퀴즈 대회 우승자가 되어 거금을 쥐게 된 해프닝도 있다.
아이들이 한창 자라면서 엄마는 너무 바빠 겨우 밥만 차려줄 수 있을 때, 인생 최대의 생존 경쟁자 둘은 서로 싸우는 대신, 고독한 시기를 함께 견디며 노는 유일한 동지가 되는듯 했다. 처음 아이들과 유희를 발견 한 것은 언어로부터였다.
어느 날 여섯 살 아들은 현관 앞에서 유치원에 갈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걸터 앉아 신발 한 짝을 신고 다른 짝을 마저 신으며, 가을이 되니 여우가 고독하고 쓸쓸할 것 같다고 혼잣말을 하는 게 아닌가? 그때 지켜보던 엄마는 여섯 살 인생이 조금 웃겨서 고독하고 쓸쓸한 게 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떠돌이 개가 혼자 돌아다니는 느낌이라고 했던 것 같다. 아이는 동화책 친구들의 기분을 이해하려던 것이었고, 엄마는 그 후 자꾸 아이에게 그 느낌을 되묻곤하다가 말놀이로 이어졌다. 아들은 그즈음 동네에서 조리 있게 말 잘하는 아이가 되어 슈퍼 아저씨까지 팬층으로 확보하고 젤리 박스를 상납 받기도 했었다.
갓 말을 배우는 서너 살 여자아이의 어눌하고 혀짧은 말 배우기는 앙증맞기까지 했다. 딸은 어느 날 무슨 말 끝에 "참! 망신했어" 하는 거다. 오빠는 주변 정황으로 봤을 때 "참! 실망했어"를 혼동해서 하는 말이라고 알려줬다. 그럴 때면 엄마랑 오빠는 아이의 말을 흉내 내며 웃곤 했다.
오빠가 초등 저학년, 동생은 유치원을 다닐 때쯤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침대 위에서 둘이는 어떤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둘이 뭔가 의식을 치르는 모습은 너무 진지해서 기묘하게까지 보였다. 평소 녀석들은 토끼 인형을 좋아했다. 그래서 토끼 인형들이 각자 두세 개씩 있었고 하얀 토끼 애착 인형들은 거의 회색이 되어가곤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애들 방을 지나가다 언뜻 보니 침대 위에서 아들이 그중 한 토끼를 머리 높이 쳐들고 경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딸은 그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중얼중얼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아들이 토끼를 서서히 하강시키자 딸이 토끼를 향해 칼같은 걸 높이 쳐들더니 푹! 내리꽂는 것이 아닌가? 순간, 애들을 지네들끼리만 놔둬서 드디어 걱정하던 잔혹한 그 무언가가 일어나는가 싶었다. 뭘 하느냐? 서둘러 달려가서 물었다. 그랬더니 둘은 진지한 얼굴로 신께 제사를 모신다는 것이었다.
아마 아이들이 어릴 때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나 성경에서 힌트를 얻어, 신께 재물을 바치며 평화와 풍요를 비는 의식의 어디쯤이었으라고 짐작됐다. 그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두아이에 대한 걱정보다는 이해와 감사의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아이들은 외롭고 힘든 시기를 그렇게 놀이를 해오면서 성장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때를 얘기하면 둘은 피식 웃곤 한다.
오빠와 여동생은 지금은 각자의 세상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살아간다. 피아노를 치며 게임 유튜브를 즐겨 보는 군인 아저씨, 엄마가 무슨 얘길 할 때마다 멋쩍은지 "야~옹" 새끼 고양이 소릴 내는 웹툰을 좋아하는 꼬마 아가씨.
다 자라 어느새 곧 품을 떠날 때가 오겠지만, 선선 한 날 자전거를 타던 아이들, 겨울밤 동화책을 들고 품에 안기던 아이들, 냄비나 양푼을 엎어놓고 드럼을 치던 아이들, 밀가루 범벅으로 행위 예술을 하던 악동들... 가끔 어린 때가 떠오르고 그때의 기억들은 아이들이 성년이 된 지금도 내 가슴속에서 동심으로 살아 숨 쉰다.
첫댓글 아이들이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궁금해집니다. ^^
저도 궁금해요. 저보다는 잘 살거라고 애들한테 얘기한답니다. ^^
너무나 이상적인 엄마시군요. ^^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늘 부족한 엄마였어요. 철부지 엄마의 흑역사도 많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