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 박선애
진도 일주 3일째다. 남도국립국악원 앞에서 출발해 오전 목표인 20킬로미터를 채우니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뽕할머니 동상 앞에 도착했다. 이틀하고 한나절을 걸으니 우리 동네 가까이 왔다. 진도 대교에서 출발해 군내면, 진도읍, 지산면, 임회면, 의신면을 둘러 92킬로미터를 밟았다. 여름의 한복판이라 지켜보는 사람들의 걱정이 크다. 가족들은 일기예보를 전하며 일사병 걸린다고 호들갑이다. 동생 친구 목사님은 언제, 어디든지 달려올 수 있게 기다리고 있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늘에서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견딜 만하다. 안에서 내다보면 눈부시게 따가운 햇볕과 숨 막히게 뜨거운 공기만 있는 줄 안다. 나와 보면 산 옆에는 그늘이 있다. 또 바다, 논, 저수지 등 물가는 제법 시원하다. 나무와 풀을 지나온 바람은 잠시라도 상쾌하게 기분을 풀어준다.
이틀째 오후부터는 발이 말썽이다. 처음 오른쪽 새끼발가락에 잡힌 물집은 신기하고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이어서 엄지발가락 옆과 그 뒤쪽에 또 생겨 오른발에 세 개 왼발에 한 개가 되었다. 거기에 왼쪽 발 바깥쪽 옆면이 디딜 때마다 아프다. 오늘은 발 상태가 엉망이다. 운동화에 발을 끼워 넣는 것이 망설여진다. 한 발 한 발 떼는 것이 고역이다. 그래도 그만둘 수는 없다. 나와 동생은 발이 닮았는지 거의 같은 부위에 물집이 잡혔다. 일흔을 바라보는 언니는 발도 멀쩡하고 제일 씩씩해서 계속 앞장서서 이끈다. 몇십 년 수영과 등산, 걷기로 다져온 덕인 것 같다.
점심시간에 집에서 오래 쉬고 오후 다섯 시부터 다시 걸었다. 이번에 걸을 가계, 용호, 모사, 벌포로 이어지는 바닷가 마을은 우리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이 살던 곳이므로 한 동네나 마찬가지다. 잘 아는 곳이라 새로운 기대는 덜하지만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바닷길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나섰다. 내가 어렸을 때 가계 바다는 고기 잡고 겨울에는 손으로 김 양식 조금씩 하는 곳이었다. 신비의 바닷길이 알려지면서 연계해서 관광 단지를 조성하려고 해수욕장으로 정비했다. 여러 가지 편의 시설도 갖추고 큰 건물도 생겨서 다른 곳처럼 낯설다. 해수욕장을 지나 바닷가 길을 돌아가면 용호리가 나온다. 길 오른쪽에는 바다, 왼쪽으로는 마을이 있다. 길가에는 전복 치패 양식장이 줄지어 있다. 양식장에 물을 대느라고 바다로 연결한 어른 팔뚝만큼 굵은 고무관 수십 개, 어쩌면 수백 개가 줄지어 길게 뻗쳐 모래사장을 까맣게 덮고 있다. 있어야 할 것 대신 느닷없는 것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으니 흉물스럽다. 전복 덕분에 젊은이가 돌아와 마을이 크고 화려해졌다. 선착장에는 김 양식장 관리선들이 때를 기다리며 쉬고 있다.
산기슭을 따라 난 길을 한참 걸어가면 앞개가 나온다. 우리 동네 중심으로 앞산을 넘어가면 있는 갯가라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소리재 넘어 들길 산길을 걸어서 고동 잡고 톳 뜯으러 다녔던 곳이다. 바다는 위험하다고 못 가게 하는 할머니 앞에서 한나절쯤 울고 떼쓰면서까지 허락을 얻어 낼 만큼 그것은 매력 있는 일이었다. 오후내 작은 바위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시나브로 가까이 온 물을 보면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집으로 향하면 짧은 겨울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별 볼 일 없는 수확물을 머리에 이고 좁은 길을 한 줄로 서서 걸어오면 배도 고프고 손도 시렸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재밌었다. 어른처럼 물때를 아는 친구의 말에 다음을 약속하곤 했다.
위치로는 앞개가 맞은데 그 옛날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졌다. 내려가려면 늘 아슬아슬했던 높은 언덕 위의 밭에서 바다로 이어지던 미끄러운 흙길은 흔적도 없어졌다. 바다 위로는 산이나 밭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사이를 뚝 잘라 넓은 길을 만들어 매끈하게 포장했다. 언덕에는 펜션도 생겼다. 구불구불 정겹던 그곳을 반듯하게 펴놓으면서 추억의 장소는 사라져 버렸다. 고둥, 게, 굴, 톳, 파래 등 많은 생명체를 키우던 크고 작은 갯바위들도 그 수가 줄어들었다. 이제 거기에는 잡을 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욕심껏 벌여놓은 양식으로 바다가 다 죽었다.
모사 마을로 들어가니 용호리보다도 전복 치패 양식장이 더 빼곡히 들어서 있다. 바닷가 가까운 논밭도 양식장으로 바뀌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저만치 산 아래 들판이었던 곳에 현대식으로 멋지게 지은 집들로 새 동네를 이루었다. 바다에서는 대량으로 김 양식을 한다. 부산물인 스티로폼, 나이론 줄 등이 한쪽에 잔뜩 쌓여 있다. 전복 양식장으로 이어진 고무관과 쓰레기로 지저분한 모래사장을 보면서 우리는 한탄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모사 바닷가는 꽤나 알아주던 해수욕장이었다. 모래도 곱고 소나무 숲이 좋았다. 여름이면 제법 관광객들이 많이 왔다. 우리 동네 남자애들은 2킬로미터쯤 되는 이곳으로 날마다 수영을 하러 다니기도 했다. 한쪽에 있던 쩍 공장(모래를 긁어서 정제해서 팔던 공장)에서 모래를 지나치게 파낸 바람에 끝내는 해수욕장으로 쓸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소나무가 있던 곳, 띄엄띄엄 집이 있던 자리까지도 좁은 길만 남기고 ‘**수산’이라는 같은 모양의 간판을 줄줄이 단 양식장으로 꽉 차 있다. 마치 공장 단지 같이 삭막하다. 요즘 들어 전복값이 폭락했다고 하더니 비어 있는 곳도 몇 군데 보인다. 자칫하다가는 치패를 넣어 기르는 시멘트 칸막이들이 또 하나의 흉물이 될 것 같아 불길하다. 차 타고 몇 번 지나면서 모사가 변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천천히 걸으며 자세히 보니 그 훼손 정도가 훨씬 심하다.
언니는 이제 전복을 안 먹겠다고 한다. 양식 덕분에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만 좋아했지 그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을 잃어야 하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더 많이 먹고, 가지려는 욕심이 창조 질서를 깨뜨리고 있는 현장을 보면서 씁쓸했다. 벌써 우리 눈앞에 나타난 자연의 역습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 같다.
이틀 동안 지나오면서 아름다운 바다와 그 위에 뜬 정다운 섬, 또 바다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해를 보면서 자연이 주는 은혜를 마음껏 누렸다. 정다웠던 내 어릴 적 놀이터였던 이곳을 지나며 오늘은 마음이 아프다. 물집 자리는 더 쓰리고 발은 유난히 무겁다.
첫댓글 일흔을 바라보는 언니의 체력이 대단하네요. 평소 운동을 부지런히 하시나봅니다. 걷다가 병원(의원)보이면 다리 물리치료, 발 점검하며 걸으시기.
친구도 아닌 형제분들끼리 함께 걷는 걸음마다 안전하기를 기도 드립니다.
걸어서 진도여행 하시는 것고 대단하고, 변화하는 풍경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감성에도 눈길이 갑니다. 저는 감성이 좀 메마른 편인데 글쓰기 하면 감성도 풍부해질까요?
대단한 결심이네요.
이왕이면 철 좋은 주말에 하시지는.
모든 게 변한다는 게 글에서 느껴집니다.
아름다운 진도도 그리 많이 변하고 있군요.
'아름다운 바다와 그 위에 뜬 정다운 섬' 기가 막히네요. 하하.
저도 이렇게 쓰고 싶습니다.
아푸지 마세요. 어떻게 완주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반창고, 신발 사가꼬 갈까요?
<발가락이 닮았다>가 생각 나는군요.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큰일 하셨어요. 진도를 걸어서완주했다니 대단하세요.
모사해수육장도 지나갔내요. 모래가 좋은 곳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곳으로 저녁에 낙시질 따라 갔는데 동료가 큰 장어를 낚아서 즐거워 했던 일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네요.
'앞개'라는 이름이 참 귀여워요. 어떤 곳인지 궁금하네요. 선생님의 추억까지 재밌게 읽었습니다.
드디어 진도 여행기가 나왔네요. 걷지 못하고 절뚝거리던 모습도 선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끝내 해 낸 장하도다 진도의 딸!
와! 멋지네요. 선생님 글따라 진도 순례길 만들면 좋겠어요.
뜨거운 계절에 큰일 하셨네요. 하하
덕분에 저도 진도 한 바퀴 돈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진도를 사랑하시는 선생님의 마음 또한 잔잔하게 다가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