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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아니라 성령에 취하라 / 잠 23:29-35, 엡 5:15-21
인류 역사를 통해서 술처럼 친근한 것도 없다. 사람들이 술을 먹는 이유는 먼저 온전한 정신으로 행하지 못할 일을 할 때 술의 힘을 빌려 행하려고 먹는다. 다음은 기쁜 일이 있어서 축하주로 먹거나, 괴로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취하려고 먹는다. 또 하나는 윗사람이나 거래처 사람들을 대접하여 사업상 이권을 따내려고 먹는다. 우리나라가 술을 수입하는데 지난 10년간 수입증가율이 세계 1위이며, 수입시장 규모 면에서는 세계 4위이다. 나라 안에서의 술 판매량이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며, 1인당 술 소비량도 세계 으뜸이다. 영국의 한 위스키 회사가 자기 회사의 운명을 한국시장이 좌우한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실려 놀란 적이 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다는 다 이유가 있다. 술 권함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술 권하는 사회이며 술문화 - 술잔 돌리기와 그리고 잔을 안 받으면 의절하겠다느니, 누구 잔은 받고 왜 내 잔은 안 받느냐, 남자가 술 한잔도 못하면 병신이라는 등 온갖 협박성 술 문화 - 때문이다. 술을 마시고 한 행동에 대한 태도 역시 술 마시고 한 일이므로, 취해서 그랬는데’ 등 너그럽게 용서되고 허용하는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20세 이상 국민을 조사해보니 남자가 10명 중 8명이 술을 먹고, 여자는 10명 중 4명으로 나타났다. 술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 천태만상이다. 은근히 자신의 주량을 자랑하는 사람, 다른 것은 못해도 술만큼은 자신있다고 장담하는 사람, 술 많이 마시는 것 자체를 남성다움으로 생각하는 사람, 말술은 지고는 못가도 마시고는 간다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술을 마실 때 자기 절제가 가능하다고 철저히 믿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술로서 망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다. 술은 모든 나쁜 습관의 시작인 것 같다. 술을 먹다보면 머리에서 도덕심을 잡아주는 신경이 느슨해진다. 그러면서 차츰 다른 나쁜 행동으로 빠진다. 술은 자제력을 약하게 하고 마음을 풀어준다. 마음을 뻔뻔하게 한다. 그래서 전에는 할 생각도 안하던 일을 해보려고 시도한다. 긴장을 풀어주고 넉넉한 마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한다.
한국 교회가 고민하는 문제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조상제사 문제와 주초문제이다. 그리스도인은 술을 마실 수 있는가? 또한 마실 수 없다면 왜 그런가? 술자리에 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성경에 술을 마시지 말라거나 또는 죄가 된다는 성구가 어디에 있는가? 술과 담배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기호와 취향의 문제이지, 그것을 신앙과 결부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닌가? 콜라나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담배와 술은 기호식품이 아닌가? 이런 질문들은 그리스도인이라면 한번쯤은 마음 속으로 또는 공개적으로 제기하여 보았을 것이다. 예수 믿으면서 술을 마시는 분들은 흔히 딤전 5:23절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한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아니 ‘성경에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했지 금한다고 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교회 직분을 택할 때도 딤전 3장에 보면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라는 사람을 택하라고 했지, 어디 술을 먹지 말라고 했느냐?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행하신 기적이 가나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포도주를 먹으라고 여섯 항아리나 만들어 주시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마시지 말라고 하느냐?라면서 술 먹는 것을 정당화시킨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것이면 없애버려야 한다고 어거지 같은 말을 한다. 물론 성경을 읽어보면 술을 마시면 지옥간다는 구절은 없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성경의 참된 교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을 주의해서 보자. 29절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모든 문제가 어디서 나오느냐는 말이다. 30절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술을 좋아하고 술에 취하는 자에게 있다는 말이다. 세상에 재앙을 당하지 않고 근심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그러나 그 중에서도 술에 빠진 사람, 술주정뱅이는 재앙과 슬픔 그리고 근심을 스스로 끌어당긴다. 분쟁 역시 그렇다. 술에 취하면 사람위 뇌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에 남과 싸우려는 경향이 있다. 술에 취하면 어리석게 대담해진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마음에 있어도 주변 환경을 생각해서 말 한마디 못하던 사람이 술에 취하면 소위 주정을 부린다.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해서 그런 것은 정신없이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술 취한다고 정신이 나간 것은 아니다. 취중진담이라고 술기운으로 할 말을 다 하는 것이다 물론 너무 많이 마시면 술 때문에 거의 마비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주정도 못한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술주정을 하는 사람은 평소에는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하고 눌려 살다가 술이 들어가 흥분이 되면 용감해져서 ‘꽥꽥’ 큰소리내며 호통을 친다. 세상에 무서운 사람이 없어 보일 정도로 용감해 진다. 이것을 소위 만용이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못난 사람은 술먹고 주정하는 사람이다. 오죽 못났으면 제 힘으로 말 못하고 술의 힘을 빌어서 말을 하고 행패를 부리겠나? 가만히 살펴보면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자기 책임을 바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술 주정을 한다. 뿐만 아니라 술 취하면 원망이 나온다. 중얼거리고 말다툼이 생기고 욕설을 주고받는다. 이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술 취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그러므로 무슨 일의 원인이나 이유를 알 필요도 없이 화부터 내고 주먹을 휘두르다 보니까 상대방도 여기에 응수하여 결국은 부상을 당한다. 조국을 위해 입은 부상은 영광스럽지만, 술먹고 싸우다가 난 상처는 부끄러운 뿐이다.
그뿐인가? 술을 마시면 눈이 붉어진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분노의 증상이다. 술먹은 사람, 성난 사람, 그리고 미친 사람은 눈이 붉어지는 공통점이 있다. 이 세종류의 사람은 모습도 비슷하다. 볼품없는 사람들이다. 왜 그렇게 되나? 본문 30절에 ‘술에 잠긴 자’라고 했다. 그 뜻은 술 때문에 오래 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술 마시는 분들은 마시다 보면 1차, 2차, 3차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내일 일이 어떻게 되는 것을 상관않고 마시게 되니까 밤 늦게 자정이 넘어서까지 마신다. 그리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라고 했다. 이것을 칵테일이라고 부르는데, 자기 구미에 맞게 섞어서 마신다. 이 혼합주는 아주 입에는 맞지만, 더 잘 취하고 뇌신경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러니까 자기의 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기 입맛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31절을 보면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라고 하였다. 포도주의 품질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특징 중에도 그 빛깔로서 포도주의 품질을 판단한다고 한다. 어떤 포도주는 너무 아름답게 보이고 모양이나 색깔이 그럴듯해서 ‘와서 나를 만져주세요’하는 것 같은 유혹을 느낀다고 한다. 이것이 포도주의 매력이다.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음직도 하다. 뿐만 아니라 아주 순하게 내려간다고 한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원하게 한다. 이것이 문제이다. 절제할 수 없는 사람이 포도주를 마시게 되면 점점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포도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수백 가지의 종류를 모은다. 그것으로 그치면 그래도 다행이다. 사람이 어디 포도주로 그칠 수 있는가? 반드시 다른 술도 먹게 마련이다. 그래서 점점 더 술에 절어가게 된다. 술은 마실수록 그 양이 많아지고 삶의 기준이나 방법도 역시 그렇게 변한다. 어디 포도주뿐이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좋아 보여도 결국에는 절제하는 문제에 걸리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도박이요, 이성교제요, 경마요, 마약이다. 주어진 시간을 모두 헛된 일에 다 보내고 만다.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유혹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유혹을 받지 않으려면 될 수 있는대로 보지 말아야 한다. 옛말에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유혹의 사정거리 안에서 벗어나야 한다. 낚시질을 하면 낚시에는 꼭 미끼를 사용한다. 그리고 미끼 안에는 바늘이 숨어있다. 그런데 미끼 근처를 빙빙도는 고기는 꼭 물리고야 만다.
여러분, 하와를 알지요? 하와가 처음 어떻게 범죄하게 되나요? 뱀이 하와를 유혹한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로 시작해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그래서 하와가 그 나무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금한 것을 아예 처음부터 보지 않았으면 될 것인데, 보니까 자꾸 마음이 움직이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도 의심하게 되고, 그래서 결국 범죄하게 되었다.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예 멀리 하는 것이 좋다. 왜 그런가? 32절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처음에는 안 그렇지만 마침내는 술에게 물린다. 그러기에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고 그 다음엔 술이 술을 먹고, 마침내는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매우 뜻있는 말이다.
어느 날 악마의 신이 한 청년에게 나타났다. ‘흐흐, 이제 너는 나와 함께 죽음의 세계로 가야만 한다. 하지만 살 수 잇는 방법이 있긴 하지. 네 재산을 모두 나에게 바치든지, 네 누이를 팔든지, 아니면 큰 술잔으로 술 열잔을 마시든지, 이 셋 중에 하나를 행하면 너를 살려주겠다.’ 이 말을 들은 청년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다. ‘어떻게 내 손으로 다정한 누이를 팔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인간의 도리로서 차마 할 수 없는 것이다. 애써 모은 나의 귀한 재물 또한 어찌 네게 줄 수 있겠느냐? 차라리 술 열잔을 마시겠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술 열잔을 단숨에 들이마시고 휘청거리며 집에 돌아갔다. 그는 그후로도 술 생각이 간절해서 계속 술을 마셨다. 늘 술에 취해 살던 그는 결국 재산도 모두 탕진해 버리고 급기야는 가장 사랑하는 누이를 팔아 넘기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뱀에게 물린 꼴이고 독사에게 쏘인 꼴 아닌가?
33절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여기서 ‘괴이한 것’은 비정상적이고 헛된 것을 말하며, ‘구부러진’은 비이성적이며 반도덕적인 행동을 하고자 하는 욕망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술이 취하면 남자인 경우 이상한 여자가 보일 것이고, 여자인 경우 이상한 남자가 보인다는 말이다. 술은 욕정의 불꽃에 대한 기름이다. 그러므로 술과 음탕은 따라 다닌다. 술 잘하는 사람치고 음탕하지 않은 사람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술을 많이 마시면 혀도 제멋대로 되어 엉뚱한 말을 많이 한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말을 마구한다. 술은 이렇게 사람을 마비시킨다.
34-35절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바다 가운데에, 돛대 위에’는 매우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음을 말한다. ‘누운 자’는 일어나 활동하는 것과 반대되는 상황으로 위험에서 빠져나가거나 그 위험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함을 나타낸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며,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여러분, 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해가 얼마나 큰가? 술먹고 음란한 일하고, 술먹으면서 뇌물 주고 받는다. 술 먹고 교통사고 낸다. 술 먹고 죄없는 아내 때린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아내를 때려 도망갔다. 어린 자식을 세탁기에 거꾸로 집어 넣고 나간 사람도 있었다. 이 아기는 이틀 뒤에 구조되었지만 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것이 술먹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35절하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술 취하는 행동에 따르는 또 한가지의 치명적인 위험은 판단력의 상실과 아울러 방탕하고 타락한 생활을 습관적으로 일삼음으로서 자신의 생활을 돌보지 않는데 있다. 어떤 가정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남편이 술 취하고 집에 들어와서 잠을 잤다. 그런데 그 부인이 TV를 틀어놓고 연속극을 보고 있었는데, 연속극에서 ‘오늘 수고들 했는데 자, 우리 술이나 한잔하러 갈까?’ 하는 대사가 나오니까 술 취해 자던 사람이 그 말은 어떻게 들었는지 ‘그래? 그럼 가서 한잔 해야지’ 하고는 벌덕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갔다고 한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노아의 홍수 후에 노아가 포도원을 만들었다. 그때 마귀가 와서 포도나무 밑에다 양과 사자, 돼지, 그리고 원숭이의 피를 비료로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양처럼 순하고, 다음에는, 사자같이 포악하여지고, 그 다음에는 돼지같이 미련하여지고, 마지막에는 원숭이처럼 춤을 추며 별의별 짓을 다 한다고 한다. 그래서 성경은 단호히 말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다.’
그러면 그 대신에 무엇을 할 것인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으로 취하라는 것이다. 성령으로 취하면 술 취한 것과 비교가 안되게 기분이 좋다. 마약이나 이성이나 도박보다 훨씬 신난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후유증도 없다. 돈을 잃거나 몸이 망가지는 경우도 없다. 오히려 더 좋아진다. 술먹고 싸우고 돈잃고 행패 부리다가 매맞는 그런 불상사는 전혀 없다. 중독 증세도 없다. 술처럼 지저분하지도 않다. 너무도 아름답고 깨끗해 보인다. 정신은 맑아지고 몸도 건강해진다. 술 먹었을 때보다 더 용기가 생긴다. 삶의 의욕이 일어난다. 얼굴 빛은 아름다워진다. 주위 사람 모두가 다 좋아한다. 그러기에 성령에 취하라고 한다. 술 먹은 사람도 노래한다. 하지만 성령에 취하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한다. 늘 감사하고 기뻐한다. 술뿐 아니라 좋지 못하다고 말하는 모든 악한 습관을 끊어야 한다. 끊기 위해서 성령에 취하는 단계를 가져야 한다. 어둠을 물리친 뒤에 빛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다. 빛이 들어가면 어둠은 그냥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말씀 앞에 엎드려 은혜를 받기 바란다. 이렇게 성령에 취하면 악한 것은 저절로 물러간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국민이 술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소원한다. 이 길만이 이 민족이 살 길이다. 우리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이다. 독한 술은 우리의 정신과 생활 뿐아니라 이 몸을 상하게 한다. 또 술주정뱅이의 자녀치고 잘 된 예가 거의 없다.
알콜중독자의 친척 가운데는 알콜중독자와 범죄자가 많다. 미국의 여자 음주가인 마틴 카라카크의 후손 7대에 걸쳐 800여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살인자 7명, 강도 60명, 각종 범죄자 224명, 거지와 극빈자 150명, 양로원 거주자 160명, 매음부 199명, 정당한 직업 소유자 20명(그중 10명은 감옥에서 기술 습득)으로 나타났다. 알콜중독자의 자녀 4-60%가 알콜중독자가 된다는 통계도 있다.
술은 사람의 마음을 느긋하게 한다. 술의 양이 늘어갈수록 느긋함을 지나쳐서 뻔뻔해져 간다. 술을 자주 먹다 보면 먹지 않았는데도 도덕의 수준이 낮아져 버린 다. 그러면서 모든 나쁜 문제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반대로 기도를 좋아하고 성경읽기를 좋아한다면 어떻겠나? 모든 면에서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 그런데 좋은 일은 절대로 쉽지가 않다. 한참을 해도 여전히 어려운 것이 좋은 습관이다. 운동이 그렇고, 성경읽기가 그렇다. 성령이 기뻐하시는 일을 내가 하고 있는가? 바울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한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 당시 에베소에는 포도농사를 지어 포도주를 많이 만들어 먹고 술이 취해 무감각해지고 쾌락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방탕한 생활을 하다보면 결국 죄의 자리로 갈 수밖에 없지만, 성령충만을 받으면 그런 죄를 물리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주님 뜻에 순종하여 성령충만을 사모하며, 성령충만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200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