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라 미술 Gandhara art 關陀羅 美術. 대승불법의 상징 불상사상(3).
지명은 '간다라 민족'이라는 뜻도 있지만 산스크리트 어로 '향기(香氣), 토지, 계곡' 등을 뜻한다.
BC 2세기∼AD 5세기, 고대인도 북서부 간다라 지방(現 파키스탄 페샤와르)에서 발달한 그리스ㆍ
로마 풍의 불법 미술양식 그리스 로마 양식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쿠샨 왕조시대에 크게 번성한
것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유파였던 마투라(인도의 우타르프라데시)의 쿠샨 예술과 같은 시대에 생겨났다.
간다라 지방은 오래전부터 문명의 교차로였다. 아쇼카 왕이 통치하던 때(BC 3세기초)에는 불법
선교활동이 활발했고, AD 1세기경 간다라를 포함한 쿠샨 제국의 통치자들은 로마와 계속 접촉을
해왔다. 간다라 유파는 불법 전설을 해석하는 수단으로 소용돌이치는 덩굴무늬, 화관을 쓴 천동
(天童), 반인반어(半人半魚), 반인반마(半人半馬) 등 고전적인 로마 예술에서 많은 제재와
기법들을 흡수했지만 기본적인 조상(彫像)은 인도 고유의 것이었다.
불상은 간다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그때까지 불타(佛陀)는 오직보리수[菩提樹]·스투파·
법륜(法輪)·보좌(寶座) 등 상징적으로만 표현되었을 뿐이다. 그 후 이것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것을 일반적으로 간다라 불상이라고 한다. 간다라 조각의 재료로 초기에는
녹색 천매암(千枚岩)과 청회색 운모편암을 썼고, 3세기 이후부터는 치장 벽토를 많이 썼으며
조각상에는 원래 색을 칠하고 금박을 입혔다. 불상의 변천과정에 기여한 간다라 양식의 역할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논란이 분분했지만, 지금은 1세기경 간다라 양식과 마투라 양식이 독특한
불상을 각기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견해가 확실시되고 있다.
간다라 유파는 로마 종교의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 전통에 따라 부처를 젊은 아폴로 같은
얼굴에 로마 황제 비슷한 옷을 입혀 묘사했지만 좌 불상은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다. 간다라파와
마투라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음이 분명한데 일반적으로 자연주의적 형태에서 벗어나 좀 더
이상화되고 추상적인 형태를 추구했다.
사리탑과 다른 신성한 건축물을 장식했던 간다라 부조(浮彫)는 그 단순성과 정면표현법이 산치
및 마투라와 비슷하지만, 간다라 장인(匠人)들은 부처의 일대기를 여러 장면에 새겨 불법예술에
지속적으로 공헌했다. 간다라의 사리탑은 정교한 장식으로 유명한데, 난간이 없고 설화적이며
장식적인 부조가 탑의 몸체에 직접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 서 문화의 교차로’이자 ‘불상의 탄생지’로 유명한 ‘간다라 지방’은 불법이 인도를 벗어나
북서쪽으로 전파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관문(關門)이다. 오늘날 파키스탄 폐샤와르 지방에
해당되는 ‘간다라’는 본래 인도서북부 지역을 일컫는 오래된 명칭이자, 카불강과 스와트 강이 만나
인더스 강으로 유입되는 부근을 말한다. 인더스 강 서쪽의,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동서 100km·
남북 70km에 이르는 분지가 바로 그 곳이다.
‘간다라 지역’이 불법과 인연을 맺은 것은 마우리아 왕조 아쇼카왕 때다. 호불(好佛)군주
아쇼카왕이 불법에 이바지한 공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각지에 전법사를 파견한 점. 물론 이것은 주로
남전(南傳)의 기록으로, 북전불법 자료에는 보이지 않는다.〈마하밤사〉등에 의하면
목갈리풋타팃사 존자는 아쇼카 왕에게 말해 84,000개의 탑을 건조하게 했다. 특히 마우리아 왕조
수도 파탈리푸트라(현재 인도 파트나)의 쿡쿠다 아라마(한역 鷄園) 상가에 많은 외도 이단자가
들어와 정법(正法)을 손상시키자, 팃사 스님은 1000명의 비구들을 모아 이설을 배척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바로 세웠다. 이것이 소위 ‘제3차 결집’이며, 이때 저술된 것이 ‘논사’(論事)라 한다.
정법을 회복시킨 목갈리풋타팃사 장로는 아쇼카 왕에게 권해 9개 지방에 전법사를 파견했다.
캐시미르와 간다라 지방(북 서인도)에는 맛잔티카(한역 末田地), 요나(그리스인이 거주하는
지방)에는 마하락키타, 히말라야 지방에는 캇사 파고타와 맛자마 등 5인, 싱할라(스리랑카)에는
마힌다 이외 4인 등을 보내 부처님 가르침을 전했다. 이 때가 기원전 2세기 중반 무렵이었다.
그리스인 등 이민족 문화 융합 발전 당시 간다라 지역에 전파된 불법은 설 일체유부 계통일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한다.〈불법사 1-인도·동남아시아〉(민족사에서 ‘인도불법’로 번역)의 저자
나라 야스아키(奈良康明)교수에 의하면 부처님 입적과 바이샬리에서의 제2결집(기원전 3세기
전반) 이후 불법은 서북인도로 전파됐다. 마투라 등 서북지역을 관할했던 부파(部派)가 바로
설 일체유부(說一切有部). 때문에 마투라에서 캐시미르·간다라 등 서북인도로 전파된 불법은
‘설 일체유부 계통’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