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거두고 싶으십니까?
2023. 11. 26(주일낮예배) 갈라디아서 6:7-9
여러분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이 원칙에 동의하는가? 한 시골청년이 취업을 위하여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청년이 고향을 떠나는 그날 아침에 아버지는 청년을 불러 큰 거울 앞에 서게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화를 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아들이 거울 앞에서 화를 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을 때 거울에는 화난 청년이 보였다. 그때 아버지는 활짝 웃으면서 악수하듯 손을 내밀어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아들이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자 이번에는 거울에 활짝 웃는 청년이 보였다. 그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얘야! 이제 너는 객지에 나가서 혼자 살아야 한다. 그렇게 혼자 살 때에 항상 거울보는 마음을 가지기 바란다. 그래서 네 앞의 사람이 너에게 친절을 베풀고 웃고 있으면 네가 친절을 베풀며 살고 있다는 것이고, 또 남이 너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네가 그 사람을 불만스럽게 대하였다는 것을 깨달아 상대방을 통하여 너의 모습을 보거라.
그런데 이것이 오늘 본문 7절에서 말하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서로를 대할 때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대하면 상대방도 나를 부담스럽게 대한다. 그런데 내가 상대방을 향하여 밝은 표정으로 대하면 상대방도 나에 대하여 밝은 표정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도 적용이 되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9장에서 헌금과 구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당시 예루살렘교회는 기근으로 인하여 고통하고 있었다. 그때 바울은 마게도냐 성도들에게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교회를 위하여 헌금을 준비하였노라고 자랑하였다. 그래서 마게도냐교회는 이미 헌금을 하였다. 그리고 이제 바울이 마게도냐 성도와 함께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헌금이 준비되지 않아 수치를 당할까봐 두렵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바울은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 9:6)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더 큰 복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많이 구제하고 헌금해야 한다는 말까지 한다.
무슨 말인가?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헌금이 너무 간절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헌금을 많이 하여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더 큰 복을 받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의 이 주장이 옳은 것인가? 만약 바울의 이 주장이 옳다면 우리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과 또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는 가정의 자녀들은 다 성적표에는 1등만 기록되어져 있고, 좋은 대학에 입학할 것이다. 아니 집안에 염려와 근심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헌금많이 하고, 또 교회 봉사 열심히 하여도 집안에 걱정거리는 늘 있다.
왜 그런가? 고린도후서 9장 7절을 함께 읽기 바란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헌금할 때 손에 잡히는 데로 하지 말고, 먼저 마음에 얼마의 헌금을 할 것인지를 정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헌금을 할 때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한다.
여기서 인색함이나 억지로 헌금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 우리 시찰에 한 목사님이 임직식 순서를 맡아서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헌금순서가 되었다. 헌금순서가 없는 줄 알았다가 갑자기 헌금을 하게 된 목사님은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5만원권 한 장이 잡혔다. 그때 목사님은 잠깐이지만 크게 고민하다 어쩔 수 없이 헌금함에 헌금을 하였다. 그런데 지금도 생각하면 그때 5만원이 아깝다고 하였다.
이것이 인색함으로, 또 억지로 헌금하는 것이다. 인색하다는 단어는 슬퍼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억지로는 필요에 의하여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구제헌금을 하면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없고, 자신의 체면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헌금하는 것은 인색함으로 억지로 헌금을 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렇게 인색함으로 억지로 헌금하지 말라고 하였다.
왜 인색함이나 억지로 헌금을 하지 말라고 하였겠는가? 열매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정한 대로 인색함이나 억지로가 아니라 사랑하고 긍휼의 마음으로 헌금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자녀의 복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지 못한 복을 주고 싶어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무엇인가? 바울은 고린도후서 9장 9절에서 시편 112편 9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시편 112편 9절을 읽기 바란다.
(시 112;9)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부와 재물을 가득하게 하여 주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그 부와 재물을 자신이 아니라, 빈궁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부자다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은혜 베푸시는 분입니다는 것을 드러내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심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의를 열매로 허락하여 주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삶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 있는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지금 그 의를 바라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여수 애양원교회에 양재평 장로님이 있었다. 신안군 지도면 면장의 아들로 태어난 양재평 장로님은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에서 법을 공부하여 법조인이 되려고 서울에 올라가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병에 걸려 공부를 중단하고 여수 애양원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런데 15살에 나병이 걸린 장로님은 설상가상으로 눈까지 실명하여 앞을 보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손양원 목사님을 만나 예수님을 믿은 양재평 장로님은 나병환자들을 모아 성경암송반을 만들었는데, 그 성경공부반을 통하여 신약성경을 다 암송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천여명의 나병환자를 섬기며 살다가 84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있었던 양재평 장로님은 이런 고백을 한다.
한센병에 걸린 것은 하나님이 나를 구체적으로 사랑하시는 은혜였습니다. 이런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쉽게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았을 사람입니다. 만약 내가 한센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혹시 누구를 벌주고 재판하는 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센병에 걸리는 바람에 남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 수 있으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제가 이 병에 걸린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으니 병든 우리까지도 귀하게 보실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으로 행복합니다.
어떻게 나병에 걸린 것이 감사할 조건이 되겠는가? 양재평 장로님은 예수님을 믿어 열심히 교회를 섬겼다. 그런데 결과는 나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명이었다. 그런데 양재평 장로님은 낙심하지 않고, 성경암송반을 만들어 교인들과 함께 성경을 암송하고, 또 그들을 섬겼던 것이다. 그렇게 살아간 양재평 장로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영원한 의를 열매로 맺게 된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도 영원한 의를 거두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갈 6:8)고 하였다.
여기서 육체로 심고, 성령으로 심는다는 말은 우리는 심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한다. 그래서 1등이라는 열매를 거두고, 또 그 1등이라는 스펙으로 더 좋은 회사에 다니고, 그 회사의 연봉으로 좋은 집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를 위하여 심어서 썩어질 열매를 거두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심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하고, 섬기고, 베풀고, 이해하는 삶을 살아서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를 맺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우리 교회 안에 이해, 용서, 섬김이 가득하여서 사랑이 풍성하고, 기쁨이 가득하고, 자비와 충성이 가득한 공동체가 되었다. 만약 우리 교회가 이런 공동체가 되었다면 교회에 나오는 우리는 모두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결국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쉬운 일인가? 그래서 오늘 본문 9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여기서 낙심하다는 단어는 격투기 용어이다. 1세기 목숨을 걸고 싸움하는 격투기 선수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격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드를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공격에 대하여 방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싸우면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이다. 그렇게 힘이 빠지면 자신도 모르게 가드가 내려가는 것이다. 이렇게 가드가 내려가는 것을 낙심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령으로 심는 자는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거둘 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참고 또 참으면서 베풀고, 섬기고, 용서하고, 또 이해하면서 살아갈 때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통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세워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반드시 열매가 맺힌다는 이 사실을 믿고 있는가? 바울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갈 6:7)고 하였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인 자신의 부와 안위와 명예를 위하여 세상 것을 심어 그 열매를 거두어 기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의와 영광이 가득한 나라를 위하여 은혜와 사랑을 심는 것이다. 그래서 이해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저와 여러분은 무엇을 심고 있는가? 아니 무엇을 거두기를 원하는가? 참고로 말씀드리면 오늘 설교 중에 제가 말한 헌금은 헌신의 한 부분이다. 그래서 크게 말씀드리면 지금 저와 여러분이 드리는 그 헌신은 세상의 것을 더 얻기 위함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이 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