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과 허생전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요, 하나의 책이다.
얼굴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발자크>
박지원의 <허생전>을 보면 허생이 변부자 집에 돈을 빌리러 갑니다.
이때 허생은 거두 절미하고 변 부자에게 만 냥을 빌려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변 부자는 이유도 묻지 않고 선뜻 만 냥이라는 거금을 빌려줍니다.
허생이 집을 나서자 변 부자의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버님은 저 사람을 아십니까?”,
“아니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 이유도 묻지 않고 신분도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만 냥이란 거금을 빌려주셨습니까?”
“저 사람은 비록 남루한 옷을 입었어도 눈빛이 살아있었고, 돈을 빌리면서도 전혀 비굴하지 않았고, 또한 이런저런 말을 꾸미지 않은 것으로 보아 충분히 믿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 속 이야기지만 허생은 보기 좋게 변 부자의 믿음에 보답을 합니다.
그 돈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서 열 배 이상으로 변 부자에게 빚을 갚았기 때문입니다.
변 부자의 입장에서는 사람을 보는 안목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 사람은 그릇이 작아!”,
“저 사람은 그릇이 됐어!”,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그릇이 작은 걸 어떡해!”
우리는 사람을 평가하면서 그릇을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릇이 작다는 것은 부정적인 평가이고, 그릇이 됐다는 것은 긍정적인 평가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그릇은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사람의 그릇됨은 흔히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관상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얼굴 하나에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관상에서는 얼굴의 골격과 색깔, 주름살, 점, 모발 등을 세밀하게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얼굴에 나타나 있는 그 사람의 마음상입니다.
이 마음상은 결코 숨길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오로지 환하게 웃는 방법뿐입니다.
‘웃는 얼굴에 침을 못 뱉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환하게 웃는 사람의 얼굴이야말로 가장 좋은 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