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공동체♡
24.11.24(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전서13:4~7)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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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랑 공동체의 사람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사랑을 온 힘을 다해 지켜나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는 그리스도인들이면 힘써 지켜 나아가야 할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을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의 편지입니다. 그 내용의 대부분은 신앙적 교훈과 권면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린도라는 지방은 헬라 시대에 항구 도시였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매우 발달해 있었으며 물질문명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많은 우상을 섬기는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곳에 고린도 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은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연고로 고린도 교회는 그 당시 여러 지방의 교회 중에서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서신 내용 중에는 그리스도인들 간의 소송 문제나 독신생활과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와 성만찬과 성도의 죽음과 부활 등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궁금히 여기는 문제들의 답이 기록되어있다고 할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베풀며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에 기록된 모든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고 그 당시 고린도 교회가 처해있었던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는 해상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여러 나라의 우상들이 집결되어 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곳에는 아프로디테라는 여신을 섬기는 신전도 있었는데 이 여신은 우리가 아는 비너스(Venus)라는 이름의 신상과 동일 것입니다.
아프로디테는 그리스 신화의 신이었지만,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후에는 '베누스'라는 이름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신전에는 신전 여사제들이 있어서 온갖 음행이 자행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였기 때문에 성도들이 기독교적인 거룩함을 이어가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학문적으로는 헬레니즘 사상이 퍼져있었고, 그 외에도 유대주의와 또 다른 학파를 추구하는 파벌들이 난무하여서 고린도에 거주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여러 사상으로 혼합된 정신을 가졌습니다.
고린도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에 침투되어 분란을 일으켰었습니다. 예언이나, 계시, 방언, 병 고침과 황홀경(Extasis)에 빠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 성경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영지주의자들에 의해서 교회가 분리되기도 하였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병 고치는 사람,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 요술을 하는 사람, 예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그들을 동경하며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신의 아들이라고 하며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복음 사역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에서 활동하는 요술쟁이의 하나라고도 하였던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도 정말 육체가 못 박힌 것이 아니라 가상으로 못 박힌 것이었고, 예수님의 죽음도 부활도 부인하였던 자들이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렇게 혼란한 가운데에서 은사에 치우친 신앙을 가졌던 것입니다.
분쟁도 자주 일어났었는데, 그 분쟁은 서로 파벌로 이어져서 베르도파, 요한파, 바울파, 바나바파, 예수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시비하고 비판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해 주었던 바울까지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울서신 중에는 은사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바울서신보다 후에 써진 것으로 알려진 복음서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에는 은사에 대한 말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비추어 볼 때 바울이 목회를 하였던 여러 교회와 고린도 교회는 예수님의 사도들이 주축이 되었던 유대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 곧 예루살렘을 주축으로 하는 교회들과는 복음적인 면에서는 일치하지 않았던 바도 있었고 대립하였던 모습도 있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사도바울을 주축으로 하는 그리스도인들 속에는 영지주의를 표방하는 세력들이 상당하였다는 것이 정설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은사와 황홀경에 빠지는 것이 신앙생활의 최고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예수님의 출생과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쓴 많은 서신중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서 사도바울도 영지주의자라고는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의 서신 들 중에서도 오해받을만한 소지가 많이 보이고는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은사에 치우쳐있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다양한 은사들은 택함을 받은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되는 선물일 뿐이지 그 자체가 복음의 본질은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는 방언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여러 나라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는 능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이 하는 것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했습니다.
신령한 은사에 치우쳐있던 고린도 교회에는 성령의 은사로 말미암아 시끄러운 문제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절제할 줄 모르는 은사 자들이 뜻 모르는 방언을 대중들 앞에서 아무 때나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아무리 여러 나라 방언을 능통하게 잘하고, 혹 천사의 말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지라도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은사는 아무것에도 쓸데없는 꽹과리 소리와 같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 영지주의적 성향이 많은 고린도인 교인들에게는 성령의 은사가 자랑거리였을 듯도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2절에는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고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하는 은사가 있어서 하늘의 비밀을 아는 능력이 있을지라도 정작 사랑으로 행하여지지 않으면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파벌로 찢어진, 고린도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 된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이루려고 하는데, 설혹 성령의 은사일지라도 방해가 되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시끄러운 현상일 뿐이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참으로 교회 공동체는 사랑으로 뭉쳐진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자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이 나타나는 은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수십만이 모여지는 교회들도 여럿 있어서 사회에도 모범이 될만한 일들을 보여주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교회부터 시작해서 여러 교회에서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다툼과 분쟁이 일어났었고, 목회자들이 교회 재정을 횡령하고, 여자 성도들과 불륜을 맺으며 온갖 파렴치한 행동을 저지르고 있기도 합니다. 그들은 선교를 목적으로 시작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도적이요 강도가 되었으며, 소리 내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였던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근본이 되어야 하고 그 사랑이 목적이어야 합니다. 사랑의 반대되는 말은 미움이 아니라 욕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욕심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이 모여진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교회는 사회에 해로운 단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진 자는 온유해야만 하고, 시기하지도 않아야 한답니다. 그 사랑은 자랑하거나 교만하게 굴지도 않습니다. 다만 진리와 함께 기뻐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것을 믿음 속에서 바라며 견딘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사랑의 속성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던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이기도 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5절에도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너희 사랑을 더하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때가 악하여질수록 더욱 그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전서13:4~7)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13:13)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시며 사랑이심을 고백합니다.
지금도 말씀으로 역사하시고 말씀대로 믿고 의지하는 성도들에게 믿음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주의 몸된 교회임을 고백하며 날마다 주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주님 사랑과 주의 향기나는 삶으로 살아가오니 우리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형통한 은혜로 우리와 함께 하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
#설교/이경준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