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7편 동서남북 구속 찬양 조동연 전도사 24.2.6
107: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07: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107:3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107:4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107:5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107: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107: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107: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107: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07: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107:12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107:13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07:14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107:15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새벽을 깨워 하나님께 예배하기로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고등부 전도사로 부임한지 한달이 되었는지 그 때도 설교를 했지만 지금이 떨리는 것 같습니다 시편이 총 5권 150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요 우리가 읽은 말씀은 시편 5권의 첫 시입니다 어제 시편 106편을 보면서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는 찬양시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107편에서도 반복되어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입니다
시인이 8절과 15절 21절과 31절에서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구절들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 인생의 모든 것에 있어 기적이 필요한 상황에서라고 하나님이 구원하여 주실 것이니 하나님을 찬송하라 라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시인은 바벨론 포로 이후 회복에 관한 역사에 대해서 다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노예라는 것은 하나의 재산에 속했습니다
그렇기에 노예가 많으면 부를 많이 축적한 것이고 노예를 한명 잃으면 재산을 잃은 것과 같았습니다
재산을 잃지 않고 증식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당연히 노예를 놓아주지 않고 계속해서 일을 시켜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된 노역과 핍박 수모와 고통 이런 것들이 반복되며 지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에 바로왕이 완악한 마음을 품으면서 그들을 놓지 않았던 이유도 아마 그들을 잃게 되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지 아니하였을까 라고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 해방되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아무런 빛도 소망도 희망도 보이지 않아 기적이 일어나야만 해방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당시 바벨론의 왕이었던 다리오가 칙령을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해방하게 된 것이지요
앞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포로를 해방하게 되면 국가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이들을 놓아주는 것은 하고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밖에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게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압니까?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찌 하나님을 찬송하지 그들은 애굽에서 400년이 넌는 기간 핍박을 받았고 블리셋 미디안 암몬 모압 앗수르등 많은 이방인들에게 시달려 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을 경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07: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고 목이 마르고 피곤하고 근심하고 고통속에서 부르짖을 때에 여호와께서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셨고 성읍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또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 앉아 있었고 곤고와 쇠사슬에 메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지존자를 멸시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을 올가미에서 끊으셨습니다
그 외에도 질병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하는 것 바다의 큰 광풍 속에서도 살아남게 하신 구원을 체험하는 것이 시편 107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고통과 시련들 인간으로서 넘을 수 없는 벽이 가로 막고 있을 때 내가 죄인이 되어 기도할 수 없을 것 같았을 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은 영원하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일 때 우리를 건져주신다라는 것이지요
이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많은 삶의 힘듦이 있으시지요 서로 힘듦과 아픔이 같지는 않지만 저마다 고충이 있을 것입니다 누구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들기도 하고 또 누구는 질병으로 아파서 힘이 들기도 하고 때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힘이 들기도 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 인해서 내 속이 많이 상하여 힘들기도 할 것입니다
이럴 때에 혹시 힘들다는 생각만 하지는 않으셨습니까? 혹시 불평과 불만의 목소리만 내지는 않으셨습니까? 혹은 낙심하여 절망하며 우울감에 빠져 있지는 않으셨습니까?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절실한 마음으로 부르짖으며 구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을 맛보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이 나오는데요
이들을 대적의 손에서 여호와께서 속량하여 주셨다라고 증언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방인으로부터 압제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서 남북 사방에서 주님께서 모아오신 사람들아 모두 주님께 감사드려라
주님께서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주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때 그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앞으로 압제를 당하지 않아도 되고 힘든 노역을 하지 않아도 되고 핍박을 당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흩어졌던 가족 친구 이웃 동역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일하심에 그들에게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누군가가 시켜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대에서 아무리 감사하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그게 정말 감사가될까 내가 정말 감사가 될까 라고 의심을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처음에 자주 인사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옆에 앉아 주셔서 감사하고 같이 예배 드려서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감사하다라고 고백하기는 하지만 평상적으로는 감사하는 것은 자의 적이지 평상적으로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항상 감사를 받으실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메달리게 하는 것 심지어 피플시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십자가 사건으로 우리의 죄는 사하여졌고 하나님께서 세상과 화해하였습니다 이로써 구원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평생토록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하나님께 감사해야만 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모든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복음을 증거합니다 죄가 있는 사람이든 죄가 없는 사람이든 그 누구인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는 것이지요
디모데전서 1장 13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라고 고백합니다
이를 통해 손가락질 받을 수 있었으나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뒤에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자신이 하나님 밖에 있을 때는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 였던 것은 알지 못했고 자신은 죄인중에 괴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끝까지 참으주시고 은혜를 부어 주셨고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 하셨다 또 자비를 베풀아 주셔서 자신을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에게 본보기로 삼으셨다고 라고 고백 합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도 바울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그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이방인 사도가 되었습니다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도 사용하여 주신 하나님께 어찌 우리는 기도하지 아니할 수 있고 감사하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15장 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 회회개할 것 없는 의인 99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의인 99의 회개보다 죄인 한 사람의 회개를 더 기뻐하실 것이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가 죄인이라도 심지어 기독교를 비방했을지라고 너무 힘들어서 기도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라도 하나님께 구한다면 영원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통해 우리를 건지시고 기뻐하신다는 라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감사하실 수 있는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들의 삶이 팍팍하고 힘들 때에라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픔으로 몸져 누워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말미암아 우리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롤 우리의 삶 전반에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하실 하나님을 기대하시기를 소망 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간혹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합니다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은 것 같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이기에 할 수 있지만 이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을 구했는지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혹시 지금까지 내가 보기에 좋은 것만 구하고 있지는 않으셨습니까?
나를 위한 기도 내 부족함을 채우는 기도 내 연약함을 위한 기도도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보기에 좋은 기도만 한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기도는 언제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 내 소원 소망 그것이 아닌 나를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원하시는 기도가 아닐까요
내 삶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고백하는 기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는 기도를 드릴 때에 우리의 삶 속에서 영원토록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며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본문 마지막절 43절에서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107:43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지혜자는 이러한 일들을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지혜 있는 자가 이 시간에 이 말씀을 들은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귀로 들어와서 반대편 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삶으로 살아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