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대적을 이기는 신앙
02/23금(金)벧전 5:8~12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벧전 5:8).
우리에게는 대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적은 하나님의 원수인 동시에 성도의 원수입니다.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덤빕니다. 사자는 배고플 때 먹이가 필요하면 웁니다. 우는 사자는 강력한 표현입니다. 사단은 성도를 무너트려야 배가 부릅니다. 그래서 삼킬 자를 찾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 부정적인 자는 사단의 먹이입니다.
대적을 이기는 일반적인 신앙 자세입니다.
▣신적 겸손입니다.
삶에 예수님을 주인의 위치에 모신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 아래로 자기를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벧전 5:6). 겸손의 바로미터는 염려를 주님께 맡겼는가? 입니다. 염려를 주께 맡기면 평안합니다. 짜증, 혈기, 우울함은 자기가 주인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자신이 주인 된 상태가 교만입니다. 자기가 주인 되면 사단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에게는 사단이 덤비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능력은 예수님이 주인일 때만 나타납니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악마를 맞서 싸우십시오. 여러분도 아는 대로 세상에 있는 여러분의 형제자매들도 다 같은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벧전 5:9). 감정이나 기분은 진짜 내가 아닙니다. 감정은 느낌이나 상태가 바뀌면 달라집니다. 사단이 주는 부정적 기분과 상황을 예수 이름으로 물리칩니다. 순간 느끼는 감정을 발로 차 버려야 합니다. 기분을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기분을 신앙의 의지로 물리쳐야 합니다. 성경은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요셉의 상황은 늘 부정적이지만 기분을 이기고 있습니다.
나만 고난을 겪고 있다고 생각할 때 부정적 감정이 들어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종류가 다를 뿐 다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모두가 동일한 고난을 받습니다. 단 믿음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인간의 행복이나 불행은 누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행복하고, 마귀 때문에 불행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행복합니다.
사랑은 영적이고, 좋아하는 것은 감정입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반대로 미운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반드시 싫어질 때가 옵니다. 그러나 좋아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죄가 되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면 변화됩니다. 성경은 좋아하라고 말하지 않고 사랑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미 이겼다는 믿음을 가집니다.
“모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불러들이신 분께서”(벧전 5:10).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미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을 때 다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상황의 상태를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일어난 상황은 나와 관계없이 일어납니다. 이미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인내를 키웁니다.
“잠시동안 고난을 받은 여러분을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게 세워 주시고, 강하게 하시고, 기초를 튼튼하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벧전 5:10). 믿음의 그릇을 키워야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믿음으로 대적하여 인내를 키워야 합니다. 고난은 잠시 있다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섭니다.
“내가 신실한 형제로 여기는 실루아노의 손을 빌려서 나는 여러분에게 몇 마디 썼습니다. 이로써 나는 여러분을 격려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여러분은 이 은혜 안에 든든히 서십시오”(벧전 5:12). 실루아노(실라)는 증언의 말씀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많은 사람입니다. 말씀을 굳게 붙잡을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And...
“몇 년 전, 나는 원수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는 주님을 굳게 붙잡고 있었는데도 싸움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고, 빠져나올 길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묵상하다가 마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작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편지는 내게 놀라운 승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마귀에게, 너는 나보고 약하다고 자꾸만 나를 깎아내리고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다. 너는 내가 혼자 있기에 아무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세상을 변혁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오직 한 사람을 선택하신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너는 설교하는 일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복음 전파의 우둔한 것으로, 모든 인생을 바꾸어놓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참소하고 비난하고 시험하고, 그리고 절망에 빠뜨리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들이 있다.…(성경말씀) …. ○○○(서명).”
나는 이 편지를 통하여 나를 절망하게 만드는 사탄의 공격에 대항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같은 사단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쓸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토마스 E. 트라스크·웨이드 I. 굿달 공저
그리스 신화에 바다 요정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다에 사는 요정들은 배가 지나갈 때마다 노래를 불러서 뱃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신묘한 요정들의 노랫소리에 홀린 뱃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바다에 뛰어들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요정의 노래를 피할 수 없었고 아무도 바다를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요정의 바다를 무사히 항해한 배가 하나 있었습니다. 요정들의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뱃사람들은 한목소리로 뱃노래를 불렀습니다. 요정들의 노랫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뱃사람들도 더욱 크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하여 마침내 그들은 요정의 바다를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거센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처음부터 세파를 거슬러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요정의 노래에 귀를 막아 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더 크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불의의 파도 앞에서 정의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절망의 탄식 앞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크고 힘차게, 요정들의 노래보다 더 크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살려고 하는데 왜 어려운 일이 자꾸만 생기는 것일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이 세상을 사단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우리의 삶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늘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은 인간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사단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정상적인 삶을 파괴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사단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충격적인 사건들을 그 누구도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깨어 기도하는 것이 충격을 막는 일입니다.
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그의 삶에 밀려옵니다. 자식 열 명이 갑자기 죽거나 재산이 전부 불에 타버리는 일 등 이런 예기치 않은 일은 우리 모두에게도 올 수 있는 일입니다. 성경은 악과 맞서 싸우되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밖에 없습니다. 악을 악으로 맞서면 이미 악과 같은 편이 된 것입니다. 어둠을 이기는 것은 오직 빛입니다. 어둠을 묵상하면 어둠에 묶이게 됩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묵상할 때 어둠에 걷힙니다. 빛 되신 주님 안으로 들어가면 어둠은 소리 없이 사라집니다. 빛으로 어둠을 이기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
https://youtu.be/0EeuTcryqmU?si=AUsSY9liWf5nSNG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