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의 최고의 가치된 임마누엘의 하나님
2024. 12. 22(주일낮예배) 이사야 7:14
작년 12월 19일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에 실린 기사이다. 알랭(88세)과 그의 아내 콜레트(81세)는 2021년 9월에 다락방을 정리하다가 나무로 만든 가면을 발견하였다. 알랭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쓸모없는 부적인 줄 알고 중고상에게 150유로(약21만원)에 팔았다. 그리고 2023년 3월에 알랭 할아버지는 피가로 신문에서 그 가면을 다시 보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 가면은 아프리카 가봉의 팡족이 만든 희귀한 은길가면(Ngil Mask)으로 경매장에서 420만 유로(약 60억원)에 낙찰되었다는 기사가 있었기 때문이다.<스크린1> 특이한 것은 이 가면은 피카소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 거장에게 영감을 준 아프리카 부족의 가면으로 전 세계에 10개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는 희귀한 가면이었다. 알랭 할아버지 부부는 이 사실을 알고 중고상이 가면의 가치를 알고도 자신들을 속여서 헐값에 사 갔다고 낙찰된 금액의 일부를 돌려달라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법원은 알랭 할아버지 부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때 법원이 판결한 기준을 이렇게 말한다.
중고상이 노부부에게 사기를 친 것이 아니며, 부부가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
알랭 할아버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면의 가치를 몰라서 60억 가면은 21만에 팔아버린 세계에서 제일 안목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왜 알랭 할아버지가 세계에서 제일 안목이 없는 사람이 되었겠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은 신흥강대국인 앗수르의 남하정책을 배경으로 한다. 앗수르는 아람을 공격하고, 그 후에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그 후에는 유다도 공격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람과 이스라엘은 동맹을 맺어 앗수르와의 전쟁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유다왕 아하스에게도 동맹을 제안하였다. 그때 유다왕 아하스는 ① 아람과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어 앗수르와 싸우는 것, ② 앗수르와 동맹을 맺어 평화를 지키는 것, ③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라의 평안을 지키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스크린2>
여러분이 만약 아하스였다면 어느 것을 선택하였겠는가? 유다의 아하스는 앗수르와의 동맹을 맺어 유다의 평화를 지키려 하였다. 그런데 유다의 아하스가 앗수르와 동맹을 결정하였을 때 북이스라엘과 아람은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해 온 것이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배경이다.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하려 할 때 이사야는 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이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고 그 징조를 구하라고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네가 구하는대로 다 이루어 줄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아하스는 징조를 구하지 않는다.
왜 아하스가 징조를 구하지 않는지 함께 이사야 7장 12절을 읽기 바란다.
(사 7: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이 말씀만 보면 아하스가 굉장히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다는 말은 앗수르를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충격적이지 않는가?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내가 너를 도와줄께! 그것을 믿지 못할 것같으면 징조를 구해봐! 내가 들어줄께.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앗수르를 의지하는 아하수는 필요없습니다. 하고 대답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하스 왕이 지혜로와 보이는가? 오래 전 미국 남부에 살던 한 청년이 성공을 위하여 뉴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10년동안 열심히 살았지만, 청년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빈털털이가 되었다. 이제 청년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기차역으로 갔지만 기차표를 살 돈이 없어서 무임승차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차표를 검사하는 차장이 와서 기차표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차장의 말에 청년은 엉겁결에 뉴욕 타임즈 기자라고 말해 버렸다. 당시는 신문기자는 무임으로 기차를 탈 수 있었기에 청년은 기자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차장은 기자증을 보여달라고 하는데, 청년은 옷을 갈아입고 급하게 나오다가 기자증을 두고 왔다고 대답했다. 청년은 이 말을 하면서 이제 그냥 넘어가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차장은 마침 잘 되었다고 기차 특등실에 뉴욕 타임즈 편집국장이 타고 계신데, 가서 확인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제 청년은 자신이 무임승차한 것만이 아니라, 뉴욕 타임즈 신문기자라고 속인 것까지 다 들통이 나게 되었다. 그러나 기차 안에서 도망할 수 있는 곳도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차장을 따라 특등실로 갔다. 그리고 차장은 편집국장에서 이 청년이 뉴욕 타임즈 기자가 맞는지를 물었는데, 편집국장은 자네도 출장중이구먼 같이가지!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위기를 면한 청년은 편집국장에게 위기를 넘기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때 편집국장은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나도 가짜여! 차장은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무임승차한 사람을 특등실에서 갈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유다의 아하스 왕이 이와같지 않은가? 아하스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최고를 결정하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하스는 최악의 결정을 하였다. 왜냐하면 지난 동부시찰여전도회 총회 때도 말씀드린 것처럼 다윗을 한번 보기 바란다. 사무엘상 21장을 보면 사울왕을 피하여 도망한 다윗은 놉땅으로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난다. 그래서 다윗은 제사장이 먹는 진설병을 먹고, 또 골리앗의 칼을 받았다. 아마 다윗은 골리앗의 칼이 있으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그 칼을 가지고도 더 이상 도망할 곳이 없어서 가드로 간다. 그리고 가드왕 앞에 섰을 때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들은 이스라엘 무리가 춤추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한 자가 아니냐? 고 말한다. 그 말에 다윗은 아기스 왕이 두려워져서 대문짝을 긁적거리고 침을 수염에 흘린다. 그래서 누가 저 미친 놈을 데려왔느냐?는 아기스왕의 고함소리에 다윗은 쫓겨남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쫓겨난 다윗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니 다윗이 왕이 된 후 압살롬의 반란이 일어났다. 그래서 아들을 피하여 도망하는데, 므비보셋의 종인 시바가 떡과 건포도와 포도주를 가지고 온다. 그래서 므비보셋은 어디있는가?를 물었을 때 시바는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라고 말하였다고 거짓을 말한다. 므비보셋은 다리를 절었기 때문에 도망하는 다윗에게 방해가 될 것같아 함께하지 못하였는데, 다윗에게 거짓을 말하며 므비보셋을 모함한 것이다. 그리고 다윗이 만난 사람은 시므이이다. 사울 집안의 아들이었던 시므이는 다윗을 향하여 돌을 던지면서 피 흘린 자여 가거라 사악한 자여 가거라 라고 하면서 저주하는 것이다.
이것이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하는 다윗의 모습이다. 다윗이 도망할 때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하여 다가왔고, 또 어떤 사람은 다윗을 저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던 다윗은 자신은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KJV 성경은 I shall not want 로 번역한다.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다윗은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는가? 그 답은 1절 초반에 나온다. 다윗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또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져 있었지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The Lord is my shepherd)라고 고백한 것이다. 그래서 목자되신 여호와와 함께 할 때 하나님이 나를 안위하여 주셨고, 또 안위하여 주실 것이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다시 이사야 7장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하나님은 앗수르의 남하정책 앞에 동맹을 맺은 이스라엘과 아람이 유다를 공격하려 하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앗수르가 아니라, 나의 손을 잡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앗수르의 손을 굳게 붙잡고 있었던 아하스는 하나님 앞에 징조조차 구하지 않았다. 그러한 아하스에게 하나님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있을 수 없는 역사를 통하여 함께하심을 이루어 놓으실 것이다는 약속인 것이다. 그리고 역대하 28장을 보면 이스라엘과 아람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성을 에워싼다. 그런데 그 많은 병력으로 이스라엘과 아람은 유다를 이길 수가 없었다.
왜 이기지 못했겠는가?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사야서가 기록되고 700년이 지났을 때 의로운 사람 요셉은 자기 아내 마리아가 잉태한 것을 보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그때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고 하면서 마태복음 1장 23절로 이야기 한다.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주의 사자는 요셉에게 마리아가 잉태한 것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 하나님은 악한 마귀가 아무리 득세하여도 이제 우리에게 승리가 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임마누엘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18세기 찬송가 작곡가 중에 사무엘 스텐넷(Samuel Stennett)이라는 분이 있었다. 이 사람은 에버딘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당시 왕이었던 조지 3세와 친분이 깊어서 마음만 먹으면 정치적으로도 출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치적 기회를 거부하고 아버지가 사역하던 작은 교회의 목회자가 되어 교회를 섬기고, 약 39곡의 찬송가를 작곡하였다. 그 사무엘 스텐넷이 요한계시록 1장 16-17절을 읽는 가운데 해같이 빛난 예수님의 얼굴과 그 앞에 엎드린 요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라 는 환상을 보았다. 그리고 사무엘 스텐넷은 자기 속에서 찬양이 터져 나와서 이렇게 노래하였다.(찬송 27장 자막)
빛나고 높은 보좌와 (Majestic sweetness sits enthroned)
그 위에 앉으신 (Upon the Savior's brow)
주 예수 얼굴 영광이(His head with radiant glories crowned),
해같이 빛나네(His lips with grace o'erflow),
해같이 빛나네(His lips with grace o'erflow).
첫 소절인 Majestic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권세를 가진 모습이다. 그리고 Sweetness 모든 사람을 다 품어줄 수 있는 부드러운 모습을 말한다. 사무엘 스텐넷은 세상의 모든 권세를 다 가져서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그 예수님이 우리를 안아 주시는 그 영광을 본 것이다.
사무엘 스텐넷이 얼마나 감격하였겠는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우리와 함께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죄악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사망권세 깨뜨리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그 임마누엘 하나님 오심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기쁨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주님 오심을 기뻐하는 복된 성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